[스토리텔링 2016] 청송 국가지질공원 Geo-tourism <8> 주왕산국립공원 주방천 계곡 지구 ‘기암 단애’

  • 류혜숙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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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6-07   |  발행일 2016-06-07 제13면   |  수정 2021-06-17 17:24
쌓이고 쌓인 화산재 더미, 세월에 깎여 ‘7폭 병풍’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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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으로 촬영한 주왕산 기암단애. 수직 방향의 침식으로 인해 크게 7개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손가락을 모아 하늘을 가리키는 모양새가 절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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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암단애 벽면에서 관찰되는 다양한 형태의 절리. 주상절리가 주를 이루고 지표와 평행한 판상절리도 부분적으로 발달해 있다.

 

그들이 온다. 신들의 행차시다. 살랑대는 큰 키의 가로수들과 조각을 이어 붙인 긴 띠 같은 사하촌의 가겟집들 저 너머에서부터 둥둥 구름 탄 듯 오고 있다. 선조 때 사람 운천(雲川) 김용(金涌)은 저들을 보고 ‘은하수 가운데 옥경을 열었네’라고 했다는데, 아예 옥경을 열고 나와 위풍당당히 다가오신다. “등산 잘 하고 오세요.” 식당 아주머니의 선드러진 음성에 화들짝 정신을 차린다. 신들은 금세 일곱 개의 바윗덩어리로 변신해 있다.

 

#1. 단애의 탄생

일대는 호수였다. 그때가 약 1억 년 전. 이후 호수 바닥에 잠겨 있던 고생대와 중생대의 시간 위로 천천히 퇴적물들이 흘러들어와 쌓이고 쌓였다. 시간이 흘러 그 퇴적층이 무려 600m에 다다른 어느 날, 지반은 융기하여 육지가 되었다. 그리고 중생대의 끝 무렵에 이르러 퇴적층의 약한 틈을 뚫고 격렬한 화산 폭발과 함께 용암과 화산재가 쏟아져 나왔다.


용결 회류응회암이 비·바람에 침식
수직절리 따라 거대 암봉으로 분리

손가락 모아 하늘 가리키는 모양새
세상 모든 근심·걱정 없애주는 듯



용암은 불의 강으로 흘렀고 그 위로 엄청난 양의 화산재가 덮쳤다. 300℃에서 800℃에 이르는 고온에 점성이 강한 화산재였다. 그것은 공중으로 흩어지지 못한 채 지표면을 따라 흘러내려 저지대를 메웠다. 그 높이는 최고 350m에 달했고, 쌓인 화산재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식어 굳어졌다. 날지 못한 뜨거운 화산재는 점점 식어가는 동안 응어리처럼 치밀하고 단단해졌다. 이것이 용결 회류응회암이다. 그 동안 몸에는 생채기와 같은 세로로 긴 틈이 생겼다. 이것이 절리다.

이후는 비와 바람의 몫이었다. 수직의 절리를 따라 침식이 이루어졌고, 약한 부분은 조각되었으며 강한 부분은 남아 웅장한 봉우리들과 절벽으로 이루어진 산이 되었다. 바로, 주왕산(周王山)이다. 산을 이룬 그 절벽들 중 하나, 폭 150m에 달하는 거대한 바위는 6개의 수직 절리를 따라 7개의 암봉으로 분리되어 무더기로 펼쳐졌다. 그것이 ‘기암 단애’다.

#2. 깃발 휘날리던 자리엔 소나무가

주왕산. 청송에서 가장 이름난 산이다. 옛날에는 바위로 병풍을 친 것 같다하여 석병산(石屛山)이라 했고, 골 깊어 숨어살기 좋다 하여 대둔산(大遯山)이라고도 했으며, 신라의 왕족 김주원(金周元)이 머물렀다 하여 주방산(周房山)이라고도 했다. 옛 지도에 빠짐없이 표시되어 있는 이름은 주방산이다. 그러나 현재 이름(주왕산)을 갖게 된 연유는 진(晉)나라의 후예 주왕(周王)의 전설 때문에 붙여졌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중국 당나라 시대에 주도(周鍍)라는 사람이 스스로 후주천왕(後周天王)이라 칭하고 진나라의 재건에 나선다. 주왕은 곧바로 반역을 일으키지만 실패해 이곳으로 숨어들어왔다. 주왕을 잡아달라는 당의 요청에 신라는 마일성(馬一聲) 장군과 그의 형제들로 하여금 주왕을 토벌케 한다. 신라군은 산 깊은 굴 속에 숨어 있던 주왕을 찾아내었고 이에 마 장군은 산의 첫 봉우리에 깃발을 꽂는다. 가장 도드라진 봉우리, 가장 잘 보이는 봉우리, 바로 기암(旗岩)이다. 대개 ‘기암’이라고 하면 ‘기이하게 생긴 바위(奇巖)’를 떠올리지만, 기암단애의 기(旗)는 깃발을 의미한다. 일설에는 주왕이 전투를 시작할 때 깃발을 꽂아둔 곳이라고도 한다.

기암은 주왕산의 초입에서부터 사하촌을 지나오는 동안 내내 시선을 압도한다. 그 풍경이 장엄하다. 주왕산의 얼굴이고 상징이며 항구적인 위용이다. 그 옛날 마 장군의 선택에는 머뭇거림이 없었을 것이다.

기암의 봉우리들은 둥그스름하다. 그 자리가 응회암이 흐르던 표면이거나 분출 시기가 서로 다른 응회암 간의 경계이기 때문이라 한다. 이는 응회암이 냉각되면서 굳을 때 어느 정도 완만한 구릉대의 평탄면을 유지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지금 기암 꼭대기는 약 231㎡(약 70평)의 두꺼운 흙으로 덮여 있다. 이어져 온 침식과 삭박의 결과다. 그리고 거기에는 깃발 대신 소나무와 관목이 스스로 자라고 있다.

#3. 아홉 번 이상의 화산 분출

검독수리의 두툼한 가슴같기도 하고, 검은 명주로 지은 익선관(翼善冠, 임금이 정무를 볼 때 쓰던 관)같기도 하다. 기암단애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묘사는 그 모습이 산(山)자와 비슷하다는 것과 사람의 손가락을 모아 하늘을 가리키는 모양새라는 것이다. 참으로 정직하고 담백한 표현이다.

기암은 손가락이 나뉘듯 수직 절리가 발달해 있다. 또한 손가락의 마디나 주름처럼 지표와 평행한 판상절리도 부분적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손가락의 굵기가 서로 다른 것처럼 직경이 큰 주상절리와 직경이 작은 주상절리들이 나란한데, 이들은 손가락을 모은 듯 띠 모양으로 형성되어 있다.

이러한 모습은 고온의 화산재가 짧은 주기를 가지고 여러 번 분출하면서 어느 정도 독립적인 냉각과정을 겪었음을 의미한다. 학계에 의하면 주왕산 응회암에서 9개 이상의 흐름 켜가 나타난다고 한다. 적어도 아홉 차례 이상 화산이 반복적으로 분출했다는 이야기다. 그 분출구는 주왕산에서 남동쪽으로 수㎞ 떨어진 곳에 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기암단애는 주왕산의 대표적인 들머리인 대전사 앞마당에서 바라볼 때 가장 묵중한 존재감을 가진다. 보광전의 오른쪽 어깨 위로 들어올려 진 손은 마치 시무외인(施無畏印)의 수인처럼 보인다. 모든 근심과 걱정을 없애주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손짓. 동국여지승람의 청송도호부 편을 쓴 옛사람도 그렇게 느꼈을지 모른다. ‘반드시 신선이 사는 곳이 아니더라도 그대로 날개가 돋아 신선이 되어 갈 수 있으리라’ 했으니….

글=류혜숙<여행칼럼니스트·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초빙연구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드론 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 참고=△청송지질공원 △지리교사 이우평의 한국지형 산책 △청송의 향기 △한국 민속 문학사전 △황상구, 2015, 청송국가지질공원 추가지질명소 개발 및 인증조건 보완, 청송군

공동 기획:청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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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암단애는 주왕산 들머리에 있는 대전사 앞마당에서 바라볼 때 가장 묵중한 존재감을 가진다.


주왕암 아래에 자리한 대전사>>> 임란때 사명대사가 승군 훈련 ‘호국사찰’

대전사는 주방천 계곡을 옆에 끼고 저 육중한 기암 아래 자리한다. 신라 문무왕 12년인 672년 의상이 창건했다고도 하고, 고려 태조 2년인 919년 주왕(周王)의 아들이 창건하였다는 설도 있다. 대전사는 거듭된 화재로 정확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는데, 이곳이 배가 바다에 떠서 항해하는 지세라 조선 중기 앞뜰에 우물을 판 것이 화재의 원인이었다는 전설이 있다. 사찰의 오른쪽 밭에 우물을 메운 흔적이 전설의 전달 매개체로 남아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보물 제1570호인 보광전(普光殿)과 명부전, 산령각 등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주방사로 기록되어 있으며, 임진왜란 당시 사명대사 유정이 승군을 훈련하던 호국사찰이었다고 한다.


주왕산 지명유래 또 다른 전설>>> 신라 왕족 김주원 은거…주원왕으로 불려

주왕산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주왕 전설의 실체가 중국 주왕이 아닌, 신라 왕족 김주원으로부터 기원한다는 설이 있다. 김주원은 신라 태종무열왕의 7세손으로, 선덕여왕 죽음 후 원성왕과의 왕위쟁탈전에서 밀려난 인물이다. 이후 그는 주왕산에 은거하며 ‘명주군국(溟州郡國)’이라는 독자적인 국호를 세운다. 또한 그에 걸맞은 통치조직을 구축하고 군사기반까지 다진다. 훗날을 도모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끝내 꿈을 이루지 못한다. 사후에는 ‘주원왕’으로 불리게 된다. 그의 아들 김헌창과 손자 김범문이 대를 이어 왕권쟁탈을 위해 반란을 일으키지만 실패한다. 물론 중국 주왕과 김주원 두 이야기 모두 정사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여행정보
31번 국도 주왕산휴게소에서 914번 지방도를 타고 부동면 쪽으로 가다 주왕산삼거리에서 좌회전해 상의리로 들어가면 된다.
주차료는 5천원, 입장료는 어른 2천800원, 청소년과 군경은 1천원, 어린이 600원이다.
주차장에서 대전사까지는 600m 정도. 기암을 바라보면서 전진하는 길이다.
장군봉에서도 기암의 수직 절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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