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인물 - 이 세계] 영주 정갑진씨

  • 김제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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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4-01  |  수정 2017-04-01 07:29  |  발행일 2017-04-01 제10면
구두닦이 인생 55년…장기 실력도 닦아 ‘프로 8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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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닦이 정갑진씨가 영주역 광장에 자리잡은 자신의 일터에서 구두를 닦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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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삶을 후회하진 않습니다. 최소한 정직하게 살면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왔다고 자부하니까요. 고맙게도 4남매는 모두 결혼하고 가정을 이뤘습니다. 저희 부부 역시 건강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타고난 자신의 운명을 극복한 인간승리 주인공인 영주역 광장 구두센터 정갑진씨(67)는 담담하게 자신의 지난 세월을 이야기했다.

영주시 안정면에서 태어난 정씨는 세살 때 소아마비에 걸려 왼쪽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이 됐다. 영주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2세 때 삼흥양화점에서 배운 구두 수선과 구두닦이를 천직으로 여기고 보낸 세월이 55년이다. 현재 일터인 영주역 광장에서 구두센터를 운영한 지도 벌써 20년째다.

정씨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고마운 사람은 주저없이 아내라고 말한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심했던 시절에 그의 손을 잡아준 사람이다. 그러나 처가사람들은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처가의 반대는 불을 보듯 뻔했고, 실제로 결혼식 당일에 신부쪽에서는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다.

미안한 마음에, 사랑하는 마음에 정씨는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무슨 일이든 마다하지 않았다. 정씨는 “충주에서 객지생활할 당시 충북선 열차안에서 껌도 팔고 우유와 신문을 팔기도 했다”면서 “덕분에 연속극 ‘여로’를 보고싶어하는 아내에게 당시 돈으로 8만원의 거금을 들여 흑백 텔레비전을 선물했다”며 환하게 웃었다.


소아마비 앓아 왼쪽다리 불편
편견 딛고 결혼한 아내 고마워
수선 많이하던 80년대 전성기
신참 공무원 월급 10배쯤 벌어



고향인 영주로 돌아온 정씨는 구두수선가게를 냈지만 자리를 잡기까지 또 어려운 시절을 보내야 했다. 당시 도움의 손길을 준 사람이 동사무소에 근무하던 권오규씨(66)다. 권씨는 단칸방에서 4명의 아이와 어렵게 살고 있는 정씨 가족을 생활보호대상자로 추천했다. 이후에도 이런저런 보탬을 물심양면으로 보내주었다.

그렇게 자리를 잡은 정씨의 구두수선가게는 1980년대에는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바빠졌다.

“돌아보면 1980년대가 가장 전성기였습니다. 하루에 5만~6만원씩 벌었으니 한 달에 150만원이었죠, 아마 당시 신참 공무원 월급의 10배는 벌었을 겁니다.”

정씨는 당시 일감이 많았던 것이 어려웠던 시절이라 점퍼나 가방·슬리퍼·신발 등 일상용품 수선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바쁘다보니 아내 임옥분씨(62)가 일감을 모아오면 정씨가 수선하는 일종의 분업이 됐다. 자연스럽게 부부는 하루종일 같이 일을 하게 됐고 서로에 대한 정도 깊어졌다.

2000년대부터는 수선이 줄어들면서 구두닦이 일이 대부분을 차지하게 됐고 수입도 줄었다. 그러나 정씨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대기업 신입사원도 수백만원을 받는 시대에 100만원의 금액이 초라해보일지 몰라도 물욕을 뛰어넘은 정씨 부부에게는 소중한 노동의 대가를 수치로 평가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요즘은 한 달에 100여만원쯤 벌지만 부부의 최소한 살림밑천은 된다”고 말하는 정씨의 얼굴이 환하게 밝았다.

정씨의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 하나 있다. 바로 ‘장기’다. 어릴적부터 어깨너머로 배운 장기 실력은 놀랍게도 프로 8단이다. 1997년 전주시장배 전국아마장기대회에서 2위를 한 후 프로에 입문, 2001년 전국장기대회에서 단번에 프로 10걸에 올랐다. 2004년에는 전국대회 8강까지 진출했다.

2008년부터 10년째 <사>대한장기협회 영주지부장을 맡고 있는 정씨는 지난해 제1회 영주시민민속장기대회를 주최했다. 매년 영주시민체육장기대회와 선비고을 민속장기대회 등을 주관하면서 장기 인구 보급에 앞장서고 있다. 동호인들이 늘어 수백명에 달하다 보니 각종 대회마다 탈락자가 적지 않을 정도다.

“장기는 옛 선비들이 가장 즐겨했던 것으로, 예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 때문에 장기를 둘 때면 그 사람의 성격도 알 수 있다”고 밝힌 정씨는 “선비의 고장인 영주인 만큼 보다 많은 학생이 대회에 참가할 수 있도록 예산도 늘어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던 정씨도 여느 부모와 마찬가지로 자식자랑으로 이야기를 맺었다.

정씨의 맏아들은 육군상사로 근무하고 있고, 둘째 아들은 용인대 태권도학과를 졸업해 부부가 제주도에서 태권도 도장을 운영하고 있다. 맏딸은 경기도 부천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으며, 차녀는 철도공무원 남편과 행복하게 살고 있다며 입이 마를 정도로 칭찬에 열을 올렸다. 그는 “살아오면서 아이들이 다들 부모 원망하지 않고, 옆길로 새지도 않고 훌륭하게 자라줘서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정씨는 “체력이 다할 때까지는 구두닦이를 하고 싶지만 장담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제 좌우명이 있다면 ‘항상 정직하게 살아가다 보면 행복은 절대로 비껴가지 않는다’고나 할까요.”

밝게 웃는 정씨의 얼굴에는 일생을 한 분야에 매진해온 장인의 혼이 깃들어 있었다.

글·사진= 김제덕기자 jedeog@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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