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가 없는 모호한 풍경…불안정한 현대사회를 그리다

  • 조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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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7-19   |  발행일 2017-07-19 제22면   |  수정 2017-07-19
대구 우손갤러리, 日 현대미술 작가 마루야마 나오후미 개인展
“눈앞의 대상 그대로 재현안해
관람객의 기억으로 작품 완성”
경계가 없는 모호한 풍경…불안정한 현대사회를 그리다
마루야마 나오후미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독특한 일본 현대미술을 만날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됐다. 대구 봉산문화거리에 위치한 우손갤러리에서 일본 작가인 마루야마 나오후미(53)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이다. 마루야마는 ‘노란 호박’으로 유명한 쿠사마 야요이 이후 일본에서 작품성을 인정받는 작가다.

마루야마의 그림에는 확실한 경계가 없다. 사물의 형태가 흐릿하다. 물감이 번진 상태 그대로다. 안갯속의 모호한 풍경이다. 작가는 “확실한 선에 위압감을 느꼈다. 뭔가를 결정짓는 게 부담이 됐다”며 사물의 구체적인 묘사를 피한 배경을 설명했다.

확실한 게 없으니, 불안정하다. 우손갤러리 이은미 큐레이터는 “작가는 불안한 현대사회를 그리고 있다. 일본은 물론 한국도 불안한 시대라 작가의 개인전을 열게 됐다”고 밝혔다.

니가타 출생의 마루야마는 문화복장학원에서 패션 디자인을 공부하다 순수미술에 매료돼 화가의 길을 걸었다. 1992년 일본 도쿄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그룹전 ‘현대미술의 시점’에 초벌칠이 되지 않은 목면 캔버스에 묽게 희석한 아크릴 물감을 흘려 번지게 하는 방식으로 유기적 형태의 추상 작업을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작가는 우연찮게 캔버스 대신 천에 그림을 그리면서 배경과 사물을 구분하는 경계를 없애게 됐다. 작가는 “물감이 퍼졌을 때 마음이 편안했다. 자유로움과 해방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또 “눈앞의 대상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은 것은 관람자가 각자의 기억을 끄집어낼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보는 사람의 기억에 의해 작품이 완성되는 의미”라고 밝혔다.

작가의 의식에는 ‘사라지는 존재’가 자리 잡고 있다. 작가는 살면서 두 차례 큰 충격을 받았다. 1990년대 어머니의 죽음과 2011년 ‘후쿠시마 쓰나미’이다. 특히 후쿠시마 쓰나미는 작가의 현재 작업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작가는 “물이 모든 것을 없애버리는 순간이었다. 인간이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사고였다. 물에 대한 의식이 강해졌고, 물이라는 소재에 집착했다”고 말했다. 물이 번지는 불안정한 화풍이 작가의 불안감에서 비롯된 셈이다. 또 현대사회의 불안정성과 결부돼 관람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9월8일까지. (053)427-7736

글·사진=조진범기자 jjcho@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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