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기자의 ‘脈을 잇는 사람들’] 한국예총 인증 ‘흑백사진 名人’ 사진가 윤국헌과 제자들

  • 김수영 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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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7-21   |  발행일 2017-07-21 제35면   |  수정 2017-07-21
“찰카닥, 찰칵”…사라져가는 기억과 사람 사는 냄새까지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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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국헌 사진작가와 그의 제자들이 윤 작가의 작업실에서 각자의 작품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김은숙, 권인순, 김미정, 윤국헌, 이화선, 서태원씨.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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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국헌 사진작가와 제자들이 2015년 열었던 ‘대구를 보다’ 전시장에서 대구무형문화재들과 함께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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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국헌 사진작가가 지도교수로 있는 사진연구소 빛그림방의 수업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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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국헌 사진작가와 제자들이 출사를 나가서 찍은 사진. <사진연구소 빛그림방 제공>

사진작가 윤국헌(68)은 작은 결심 하나로 인해 전업사진작가가 되었다. 그 전에는 사진작가가 되리란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한국조폐공사라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직장을 가진 평범한 직장인이었지만 1996년 23년이나 다니던 한국조폐공사를 그만두고 사진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시쳇말로 ‘신의 직장’인 조폐공사를 그만두려 하자 가족, 특히 아내의 반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쉽지 않은 결단을 내렸다. “아직 애가 학교도 졸업하지 않았는데…”라며 아내의 원망이 컸고 지인들도 “정신 나갔다”는 소리들을 했다. 하나뿐인 딸이 그 당시 대학교 2학년이었으니 아내의 원망은 당연했다. 그것도 별 탈 없이 잘 다니던 회사를 하루아침에 그만둔다고 하니. 이런 것들을 예상 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감행했다. 직장을 그만둬 경제적으로 어려움은 뒤따랐지만 후회는 없었다. 궁핍함보다는 마음껏 사진을 찍고 이를 여러 사람에게 알리는 일이 더 행복했기 때문이다. 다만 아내와 딸에게는 지금도 많이 미안하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제 임무를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이다.

1975년 딸 출생과 함께 손에 든 카메라
성장과정 담아 결혼선물로 주려고 시작
끼 발견하며 1996년부턴 전업작가의 길

23년 간 조폐公 근무 때도 사진 일 자청
뒤늦게 대학원 전공후 잇단 강의 요청
연구한 걸 나누는 데 전념하고파 전직
연말 42년 회고전 겸 제자들과‘동행’展


윤 작가는 딸을 낳기 전까지는 자신이 사진에 이렇게 깊이 빠져들 줄 몰랐다. 1975년 딸이 태어나자 성장과정을 찍어서 딸이 결혼할 때 선물로 줄 요량으로 카메라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런데 묻혀있던 끼를 찾은 것일까. 깊이도 모를 사진의 매력에 빠져들고 말았다. 그래서 조폐공사에 있으면서 원래 업무 외에 부가적인 일로 사진 찍는 일을 자청했다. 사보기자로 활동하면서 사보사진을 찍고 조폐공사의 캘린더용 사진과 제품사진도 촬영했다. 자연히 회사일이 많아졌지만 그래도 사진 찍는 일은 그를 들뜨게 했다. 사진관련 물품들도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고 집에 암실까지 마련해 작업했다. 그런데도 성이 덜 찼다. 사진은 하면 할수록 그를 더욱 깊이 빠져들게 했다. 뒤늦게 경일대 사진영상학과에 입학했고 내친김에 경성대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처음 사진을 시작할 때는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은 곧 사라지는데 사진이 이를 오랫동안 간직하도록 해주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사진에 대해 조금씩 더 알아나가니 사회비판, 계몽 등 그 역할이 아주 크다는 것을 깨닫게 됐지요. 자연스럽게 사진에 대해 점점 깊이 공부하고 싶어졌습니다. 사진은 아름다운 기억을 재생시키는 데 큰 역할도 합니다. 인간의 뇌는 한달이 지나면 기억했던 것들의 70~80%가 사라져 버린다고 합니다. 이런 사라져가는 기억을 되살려 아름다움을 곱씹도록 해 주는 것이 바로 사진이지요. 그래서 사진을 ‘기억을 담는 그릇’이라고도 합니다.”

대학원까지 졸업하자마자 대학에서 강의 요청이 들어왔다. 회사에 강의를 할 수 있느냐고 물으니 그동안 조폐공사의 사진 관련 업무를 충실해 해준 것을 감안해 허락을 해주었다.

“첫해는 한 대학에서 강의가 들어왔는데 이듬해에는 다른 대학에서도 강의 요청이 들어왔지요. 고민하다가 회사를 관두기로 했습니다. 20여년간 조폐공사에서 일을 했으니 이제는 제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드디어 전업작가가 되었다. 예술로는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주위의 걱정이 컸는데 그는 대학, MBC문화센터 등에서 열심히 강의를 한 덕분에 사진작가로서 활동할 기본 경비는 조달이 되었다. 그는 카메라만 잡으면 절로 흥이 났다.

“제게 카메라는 장난감 같습니다. 아이들이 장난감만 보면 좋아하잖아요. 사진 찍는 것은 카메라를 가지고 즐겁게 노는 것이고, 사진 찍는 곳은 제 놀이터입니다. 하지만 사진으로 장난은 치지 않습니다. 사진에는 진정성이 담겨있어야 하니까요.”

이 때문일까. 그에게 한번 배운 이들은 그와의 인연을 오래 이어간다. 진정한 사람의 냄새가 느껴지고 깊이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그는 3개 사진모임의 지도교수로 있다. 2003년 흑백사진전문연구회로 만든 ‘사진연구소 빛그림방’을 비롯해 평일 촬영모임인 ‘포토마실’, 주말촬영모임인 ‘사진친구들’이다. 대구대 디자인대학원과 평생교육원 사진동아리모임의 지도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사진연구소 빛그림방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의 제자 이화선씨(이화선갤러리 대표)는 “2006년 MBC문화센터에서 윤 교수님의 수업을 듣고는 수업내용은 물론 인품이 좋아서 사진연구소 빛그림방에 가입했다. 컬러사진이 장악해 흑백사진을 전문적으로 찍는 곳이 잘 없었을 때라서 사진연구소 빛그림방에 대한 애착이 더 컸다”며 “한국예총에서 인증한 ‘명인(흑백사진부문)’답게 아주 좋은 수업을 해주셨다”고 말했다.

윤 작가는 2013년 한국예총에서 인증하는 흑백사진부문 명인으로 처음 선정됐다. 그만큼 흑백사진부문에서 좋은 작품을 보였고 많은 성과를 올렸다는 의미다.

현재 그가 이끄는 모임의 제자는 60여명이다. 40대 중반부터 80대까지 연령층이 다양하다. 이들 제자는 그의 교습법에 특히 만족해 한다. 제자들은 “윤 교수님은 10번 물어도 늘 같은 목소리로 설명을 해주신다. 나이가 들수록 기억력이 약해지는데 윤 교수의 깊은 배려와 세심함이 사진공부에 더욱 애착을 갖도록 만들어 준다”고 입을 모았다.

이런 제자들의 반응에 윤 교수는 “나이가 많은 분들이 사진을 찍으면서 활력을 되찾고 삶의 동기를 부여받는 것이 기분이 좋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들이 열번이 아니라 수십번 똑같은 질문을 해도 대답해주는 것이 싫지 않다”며 “이것이 선생이 해야 되는 일 아닌가. 한번 말해서 다 기억하면 더 이상 가르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래서일까. 윤 교수는 자신의 사진작업만큼 교육에 큰 의미를 두었다. 사진을 연구해서 터득한 것들을 후학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자신이 할 일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지난해 대구문화재단 지원으로 꿈다락토요문화학교, 올해 교육연구개발프로젝트를 진행한 것도 모두 이런 생각에서 추진한 사업이었다. 사진 찍는 일만큼이나 가르치는 일도 신이 난단다.

초등학교 교장으로 퇴직한 서태원 회원은 “나도 교직에 오랫동안 있었기 때문에 수업방식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윤 교수의 수업은 수업 같지가 않다. 서로가 가진 정보를 나눠주고 소통하는 시간처럼 여겨진다. 사진을 배우기 위해서 왔지만 일방적으로 교육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아 편안하고 즐겁게 사진을 배울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윤 교수는 대학 강의를 올해까지만 하고 그만두려고 한다. 작업에 좀 더 매달리려는 것이다. 그리고 교육연구개발프로젝트 등과 같이 초·중·고 학생들에게 사진을 좀 더 널리 알리고 싶은 게 그의 바람이다.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 정신적으로 지친 어린 학생들에게 사진이 좋은 힐링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강의를 그만두면서 그는 올해 작은 기념전을 마련한다. 그의 제자들이 스승에게 권유를 해 윤 교수와 제자들의 합동전시인 ‘동행전’을 11월28일부터 12월3일까지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개최할 계획이다. 5개 전시실에서 진행하는 대형전시다.

“2개 전시실에서는 제 개인전을 열고 3개 전시실에서는 60여명의 그룹전을 진행합니다. 제 전시의 경우 1개 전시실은 흑백사진, 다른 1개 전시실은 회고전 형식으로 70년대 초창기 작업부터 현재작업까지를 보여주려 합니다.”

인터뷰 가는 날 제자가 5명밖에 오지 않아서 왜 좀 더 많은 제자들을 부르지 않았느냐고 조심스레 물으니 그는 “다들 바쁜데 괜한 피해를 줄 것 같아 전화를 하지 않았다. 사진, 특히 흑백사진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수업 듣고 출사 나가기도 바쁜데 인터뷰 때문에 또 부르려니 미안해서 안 불렀다”고 했다. 그의 말에서 제자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느껴졌다.

사진작가로서 앞으로의 계획은 “회원들과 함께 호흡하며 열심히 사진을 찍고 배운 것을 잘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이런 대화에서 소박함, 겸손함을 가진 그의 인품은 자연스레 드러났다. 제자를 포함해 6명이 함께한 인터뷰였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와있는 듯, 인터뷰를 한 그의 작업실은 열기와 사랑이 넘쳐났다. 010-3536-6424

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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