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 눈물을 희망으로] <4부·끝> 7. ‘코리안-아메리칸 드림’이민 2세 백호씨

  • 최보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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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14   |  발행일 2017-08-14 제6면   |  수정 2022-05-18 17:30
“美시민권 갖고 살지만 나의 조국 韓 적극적으로 돕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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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행기·오명순씨 부부는 1989년 공무원 재직 시절 만나 미국으로 이민간 뒤 샌프란시스코에서 아들 백호씨(맨 왼쪽)를 낳았다. 왼쪽 위의 사진은 등에 태극기와 안중근 의사의 손도장이 찍혀있고 앞에는 ‘COREA’라고 적혀있는 티셔츠를 입고 있는 백호씨의 모습. <인문사회연구소 제공>

약 700만명. 외교부가 집계한 우리나라 재외동포의 수다. 외국에서 태어난 이들의 후손까지 고려하면 세계에 뻗어있는 한국인의 줄기는 감히 한눈에 파악하기 힘들 정도다. 미국 재외동포 정착사 114주년을 맞은 이 시점에서 또 다른 향후 100여년을 그려본다면 어떤 모습일까.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재외동포의 후손들에 주목해야 한다. 그들은 완벽한 외국인이 돼 있을 수도 있고, 양국의 문화를 토대로 발전한 새로운 모습의 한국인일 수도 있다. 영남일보는 ‘대구·경북 디아스포라-눈물을 희망으로’ 미국 서부편 마지막 회로 이민 2세의 ‘코리안-아메리칸 드림’에 주목했다. 이민 초기 세대가 가슴에 품었던 ‘아메리칸 드림’을 넘어 그들의 후손이 그리는 ‘코리안-아메리칸 드림’의 내일을 살펴본다.

◆한국과 미국의 사이…아이들이 있다

백호(19). 범 ‘호’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영어 이름은 이를 번역한 ‘타이거’(tiger). 결국은 한글 이름이나 영어 이름이나 그 뜻이 같다.

백호씨의 부모는 이민 1세인 백행기(68)·오명순씨(52) 부부다. 유년시절을 경산시 삼남동 74에서 보낸 백행기씨는 1989년 공무원으로 근무하던 중 지금의 아내 오씨를 만났다. 둘의 사랑이 피어오르던 무렵 이 둘은 미국으로 떠났고 그곳에서 태권도 도장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들 부부는 1998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아들 백호씨를 낳았다.


취학전 집에서 한국어만 사용
영어는 나중에 자연스레 배워

아버지 운영 태권도장에 놀러온
美친구에게 韓 인사법 가르쳐

부모님 열정 덕에 익힌 한국문화
한국인이라는 게 늘 자랑스러워



이민 2세인 백호씨는 영어가 더 편하지만 한국어도 곧잘 하는 편이다. 어려운 한국어 표현을 제외하고는 기본적인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다. 평소 대화할 때 나오는 몸짓은 미국인에 가깝지만 허리를 숙여 인사하거나 고개를 돌려 술을 마시는 모습은 한국인을 닮았다. 미국 친구들과 농구를 하러 가려고 걸친 티셔츠엔 한국 국기와 안중근 의사의 손도장이 새겨져 있다.

한국과 미국의 사이. 그곳에 백호씨가 있는 것이다. 백호씨의 부모는 그에게 “네가 태어난 곳은 미국이지만 코리안-아메리칸으로 살아야 된다”고 말해왔다.

그는 미국에서 미국인으로 살고 있지만 한국의 문화와 생활양식을 대부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어릴 때부터 백씨의 부모가 한국에 대해 적극적으로 가르쳐 온 덕이다. 유년시절 그의 놀이터는 아버지가 운영하던 태권도장이었다. 그곳에서 미국인 친구들에게 태권도 품새를 가르쳤고 함께 연습했다.

또 백호씨는 친구들이 도장에 놀러 올 때마다 항상 허리를 숙여 부모님께 인사하도록 시켰다. 한국말을 모르는 외국 아이들에게도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를 말하도록 가르쳤다. “애들한테 두 손 모으고 고개 숙여서 인사하라고 시켰어요.(웃음) 매일 그렇게 하다 보니까 백인 친구들이 우리 도장에만 오면 똑바로 인사해요. 밖에서는 자기들 마음대로 인사해도 우리 부모님은 한국 사람이고 태권도는 한국의 무술이니까 그 순간만큼은 한국의 법칙을 따라야 된다고 생각해요.”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선생님과 마주치면 그는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악수할 때면 왼손으로 오른손을 받친다. “학교 다닐 때 친구들이 가끔 왜 그렇게 인사하냐고 물어봐요. 그러면 제가 이건 한국 문화라고 설명해 주죠. 그러면 애들은 더 이상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아요. 저는 미국인이지만 한국식으로 배웠기 때문에 친구한테든 선생님한테든 한국 방식대로 하는 거예요.”

◆“전 코리안-아메리칸이니까요”

백호씨가 한국문화를 보다 쉽게 받아들인 배경엔 부모의 노력이 있었다. 이민 1세대로,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지 못하던 부모는 대화를 하기 위해 아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 한국어로 된 동화책을 구해 읽어주고 한인 비디오가게에서 한국 어린이 프로그램 비디오를 빌려 매일 틀어줬다. 아버지 백행기씨는 “미국에 사는 많은 한국인 부모들이 자녀에게 한국어를 안 가르쳐요. 그런데 그 가정들은 부모와 자녀 간에 서로 대화가 없더라고요. 깊은 말을 나눌 수 있을 만큼 언어적인 소통이 안 되니까 그런 거예요. 우리 부부는 영어를 배우기에 이미 늦었으니까 아이라도 한국어를 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지난 110여년의 한인 미국이민사를 거치면서 상당수의 한국인 가정은 자녀에게 일부로 한국어를 안 가르쳤다. 영어를 잘해야 미국에서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반면 백씨 부부의 한글 교육 열정은 유별났다. 백호씨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할 정도였다. 백호씨는 “한국어를 배우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해요. 집에서도 매일 한국어만 썼거든요. 그러다 보니 초등학교에 들어갔는데 제가 영어를 한 마디도 못 하는 거예요. 나중에 자연스럽게 크면서 영어를 배웠어요.”

백호씨는 자신이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어를 못하는 애들이 많아요. 그런데 저는 한국어를 잘하는 편이어서 엄청 다행이죠.”

그는 향후 한국과 미국 두 나라 모두를 돕고 싶다고 했다. “전 어쩔 수 없이 미국에서 태어났고 미국 시민권자예요. 그래도 제가 한국 사람이라는 게 자랑스러워요. 우선은 이 나라(미국)를 위해 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거예요. 그러다가 한국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돕고 싶어요. 두 나라 중 특정한 국가가 중요하다는 생각은 해 본 적 없어요. 전 코리안-아메리칸이니까요.”

최보규기자 choi@yeongnam.com

※이 기사는 경상북도 해외동포네트워크사업인 <세계시민으로 사는 경북인 2017-미국 서부편> 일환으로 기획되었습니다.
공동기획:인문사회연구소, 경상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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