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돌 기념으로 마련된 ‘박정희를 말하다’ 명사초청 토론회에서 패널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구미시 제공> |
14일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구미 상모동에서 태어난 지 100년이 되는 날이다. 구미시가 ‘박정희 탄생 100돌 기념주간’(11~14일)을 정해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1일 오후 5시 구미시립중앙도서관 강당에서는 ‘박정희를 말하다. 박정희의 공(功)과 과(過)’를 주제로 명사초청 토론회가 열렸다. 고성국 평론가의 사회로 열린 토론회에는 류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박상철 경기대 정치대학원 교수,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남유진 구미시장이 패널로 참여했다. 영남일보는 박정희의 공과에 대한 명사들의 토론 내용을 요약 정리한다.
필요한 기술인력 찾기 힘든 시대
노동자 착취했다는 얘기는 잘못
![]() |
◆박정희가 노동자를 착취했다고?
(류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오늘날 고임금, 복지, 고용안정까지 보장받는 대기업 노동조합의 뿌리가 1970년대 박정희의 중화학공업 정책에 의한 기능공 양성에 있었음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노동자라 함은 경공업 분야에서 특별한 기술 없이 고강도·장시간 노동을 하는 여공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자는 으레 착취를 당하는 대상으로 치부되는 사회적 약자로 그려진다. 노조 권력에 밀려 불황에도 기업이 근로자를 해고하지 못하면 호황에도 고용을 늘릴 수 없다. 한 번 채용하면 은퇴까지 고용을 보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제는 생물(生物)이다. 순간마다 상황이 변하고 경쟁자가 나타난다. 요즘 우리나라 일부 대기업 노조는 조합원 자녀가 입사를 희망하면 가산점을 적용해 고용을 세습하는 악습 관행을 만들고 있다. 이른바 노동을 착취 당했다는 노동자 부모가 자식이 대를 이어 착취당하도록 그 회사에 취직시키려는 제도가 암묵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대기업 노동자는 더 이상 해방의 대상이 아니라 세습의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고용 세습을 요구하는 노동조합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박정희를 만나지 않을 수 없다. 1960년대 경공업과 달리 1970년대 중화학공업은 기술을 가진 기능인력을 절대적으로 필요했으나 노동시장에서 정작 필요한 기술 인력은 찾기는 힘들었다. 조영래 변호사가 전태일이 평화시장에서 고생했다고 기록한 평전에 따르면 전태일이 1964년 봄에 입사할 때 1천500원이던 월급은 미싱보조가 된 1965년에는 3천원으로, 1년 만에 두 배로 올랐다. 다시 미싱사가 된 1년 뒤에는 7천원, 6년째 재단사 시절에는 2만3천원을 받았다. 견습공에서 재단사가 된 6년6개월 만에 전태일 월급이 1천500원에서 15배가 많은 2만3천원이 된 것이다. 이런 시절에 노동자가 착취당했다고 얘기하는 것은 잘못이다. 박정희시대에 산업으로 일어난 사람들은 현재 대부분 중산층에 속해 있다. 오늘날 등장한 노동귀족의 배후에는 노동 착취보다 중산층으로 키운 박정희가 존재한다. 박정희는 세계에서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효율적인 중산층을 만들었다. 박정희는 결코 노동자를 착취하지 않았다.”
경제발전, 민주화 직결 안됐지만
민주화에 기여한 면은 분명있어
![]() |
◆역대 대통령과 한국정치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나는 정치학 중에서도 여론, 선거, 정당을 주로 연구하고 있다. 2011년부터 2017년 5월까지 전직 대통령의 호감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를 가장 잘 이끈 대통령과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 질문에서 박정희는 2위를 차지했다. 1위는 노무현이었다. 2011년 이전 조사에서는 박정희에 대한 호응도가 높았다.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으로서도 박정희가 1위권을 유지해 왔으나 2011년 이후에는 2위였다. 진보라는 한 축의 정치와 반대쪽 보수의 정치가 지향해야 할 출발점에서 박정희 놓아주기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현대 한국정치와 대통령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바로 박정희다. 박정희는 역대 대통령 중 가장 긴 재임기간을 보냈고 경제개발 계획을 통해 산업화의 기초를 만들었다. 박정희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과거보다 최근에 좀 더 부정적인 영향이 많은 것은 박근혜 영향이다. 박근혜의 실패는 박정희의 실패였고, 박정희의 실패를 최종적으로 확인해주는 계기가 된 것이다. 박근혜의 실패가 탄핵으로 마무리되면서 박정희의 공과에 대한 공정한 평가와 박정희 놓아주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경제가 어느 정도 발전하면 반드시 민주화 요구가 있게 된다.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는 처음에는 비례 관계였으나 나중에는 비례관계가 깨진다는 경험과 이론적 논의가 있다. 박정희시대에 경제발전이 민주주의로 바로 연결되지 못했지만 경제발전이 민주화에 기여한 측면은 분명히 있다. 예를 들어 전두환·노태우에게는 박정희가 하나의 역할모델이었고, 김영삼·김대중·노무현에게는 박정희가 극복과 경쟁의 대상으로 여겨졌다고 볼 수 있다. 결국 민주화 이후 대통령들은 박정희와 심리적 경쟁관계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DJ서 노무현·문재인 진화하듯
박정희도 숭배대상서 탈피해야
![]() |
◆포스트 양박(兩朴), 보수정치가 가야할 길 (박상철 경기대 정치대학원 교수)
“포스트 양박이라고 하는 것은 한국 보수정치에서 박정희·박근혜 전 대통령 시대 이후를 일컫는다. 유족이나 개인적인 입장이 아니라 정치적인 입장에서는 박정희를 숭배의 대상에서 극복하고 탈피해야 한다. 예를 들어 김대중이 호남에서만 정치하고 그 쪽에서 신을 모시듯 해왔으면 진보정치가 집권하지 못했다. 노무현과 문재인으로 인해 확대·재생산됐기에 집권이 가능했다. 박정희에 대한 제대로 된 정치적, 현대적 해석이 필요한 이유다. 현실적인 보수정치의 가장 중요한 사람으로 현실에서 박정희를 올바르게 해석을 했으면 좋겠다. 보통 5·16 때부터 박정희정권이 시작됐다고 하지만 여기에는 두 가지 논쟁이 있다. 하나는 잘못된 출발로 혁명이 아니라 쿠데타라는 설이다. 정부 조직에서 헌법을 무시한 건 쿠데타이고, 농민이나 지식인이 했다면 혁명이라고 하지만 둘 다 헌법 무시는 마찬가지다. 어쩌면 박정희라는 정치적 세력의 집권은 근대화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주장하지만 분명한 논쟁거리다. 작게는 보수 지지층이고, 크게는 국민 전체를 봐서 언젠가는 다른 보수정당이 태동할 수도 있겠지만 그때도 올바르게 해석돼야 할 사람이 바로 박정희다. 박정희가 숭배와 숭모의 대상이 되면 보수층이야 힘을 얻겠지만, 박근혜 탄핵을 경험한 국민은 당황하게 될 것이다. 지금의 한국 보수정치는 힘과 숫자 싸움보다는 토론과 논쟁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 보수정치에서 박정희의 존재가 불변의 가치로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해명과 해석이 이어져야 한다. 이는 보수정당과 보수 사회과학자들의 역사적 사명이자 정치적 임무다. 보수정치의 가장 큰 강점은 전통과 통합을 중시 여김으로써 안정감을 보여주는데 있다. 보수 정당들은 양박으로 일컬어지는 박정희·박근혜에 대한 객관적이고도 합리적인 재해석으로 새로운 보수를 고민할 때이지 보수영역을 싸움할 때가 아니다.”
우상·신격화 오해 받기도 하지만
대한민국 앞날 고뇌의 흔적 감동
![]() |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돌
(남유진 구미시장)
“요즘 나는 많은 오해를 받고 있다. 박정희를 너무 신격화하고 우상화한다는 것이다. 2000년 김대중 집권 시절 청와대에서 근무하던 내가 맡은 업무는 박정희기념사업이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박정희100돌문화위원회가 구미문화회관에서 열렸을 때 이희호 여사께서 동영상을 보내왔다. 거기에는 산업화나 민주화 세력의 대화와 화합이 아니라 화해라는 표현이 들어있어서 박수를 쳤다. 대한민국은 지금 이념적 대립이 전쟁 수준이나 다름없을 정도다. 더 이상 소모적·이념적 대립을 해서는 안된다. 박정희의 고향인 구미에서 뽑힌 구미시장으로서 박정희 탄생 100돌 기념사업은 천우(天佑·하늘의 도움)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100돌 기념행사는 곧 마무리되겠지만 향후에도 박정희에 대한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는 부탁을 하고 싶다. 정부는 박정희기념도서관 건립사업을 2000년 시작했다. 그때 서울시에서 기념도서관 부지 세 곳을 제안했고 나는 세 군데 모두 돌아다니면서 지금의 상암동 기념도서관 장소를 예정부지로 정했다. 구미의 새까만 후배가 기념도서관 사업에 참여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박정희가 재임 18년간 고비 때마다 과감한 결정을 내린 것에 경의를 표한다. 그래서 박정희의 많은 업적 중에서 18개를 동상 옆에 새겨놓았다. 최근에는 박정희가 1962년에 쓴 책(우리민족의 나갈 길)을 읽었다. 이 책 서문에는 ‘우리 민족, 게으름과 나태함, 싸움, 지지리도 못난 이 민족의 갱생의 길은 어디에 있느냐.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 길을 나에게 좀 보여 달라’고 적혀 있다. 국민소득이 많지 않았고 국고도 없던 시절 대한민국의 앞길을 깊이 고뇌하면서 쓴 글에 큰 감동을 받았다. 박정희의 공과에 대해서는 열린 시각을 갖고 접근하되 이념적 대결에서 더 이상 희생양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김대중도 존경하고 박정희도 존경한다.”
정리=구미 백종현기자 baekjh@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