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김진향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이사장<2>] “휴전선 너머 상종 못 할 2500만명 있다고 생각했는데…그들은 우리를 동포로 바라봐”

  • 박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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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3-05   |  발행일 2019-03-05 제7면   |  수정 2019-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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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던 북한, 혹은 북한사람은 없다는 건가.

“요즘 우리 국민은 쿠바로 여행을 많이 가는 것 같다. 쿠바여행을 다녀온 사람의 여행기를 보면 사회주의 쿠바의 다양성과 독특한 문화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정치체제나 외교상황이 비슷한 북측에 대해서는 옳고 그름, 맞고 틀림, 선과 악으로 딱 재단해 버리고 만다. 우리 가슴에 내면화된, 체제화된 북에 대한 적대적 인식, 대립적 인식, 반목·질시·증오·폭력·전쟁의 담론으로 북한을 바라보는 인식 때문이다. 북에 대한 인식체계를 적대적 프레임에 가두고 있는 것이다. 분단체제를 살아가는 국민이 그 프레임을 벗어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굉장히 두려운 거다. 반공·반북의 이데올로기는 이미 문화가 됐다. 맞고 틀리고를 떠나 사회의 보편적 인식인 상식의 신념체계를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70년 분단은 이미 체제이자 구조이고 문화가 됐다. 하지만 앞으로 국민이 마주하게 될 북한, 즉 북측 사람은 한마디로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 달라서 조금 충격을 받을 수도 있다. 내가 개성에 가서 북측 사람을 만나면서 가지게 됐던 충격과 비슷할 것이다. ‘북측 사람은 못 먹고 못 입어 꾀죄죄하고, 5호담당제 하에서 서로 감시하고, 폭압적인 정치체제에서 진짜 힘들게 살고 있어야 하는데, 우리가 생각했던 북한은 어디 있는 거야?’라며 혼란을 느끼게 될지 모르겠다. 실제 만나보면 북측 사람은 굉장히 맑고 순수하며, 매사에 적극적이고 개방적이다. 한마디로 참 선(善)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그러면서 동시에 ‘어떻게 그런 폭압적인(?) 체제 속에서 이런 순수하고 착한 사람들이 있을까’하는 의심도 갖게 된다. 그때부터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그렇다하더라도 남한 사람들이 북한사람을 이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지 않을까.

“분단체제 하에서 북한을 규정했던 기존의 인식 틀을 벗고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구나’ ‘조금 다를 수 있겠구나’라는 것을 발견해 가는 과정은 굉장한 희열을 가져다 준다. 그동안 휴전선 너머에는 결코 상종 못할 2천500만명의 적이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만나 보니 참으로 친근한 친구, 동생, 가족 같은 동포였음을 알게 된다는 것은 엄청난 발견 아니겠는가. ‘적이자 나쁜 놈, 혐오의 대상’으로 봤는데 만나 보니 대화가 되고 말도 통하고 음식도 같고 정서도 비슷한 동포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엄청난 행복감이다. 한마디로 북측 사람은 통일과 평화에 대해 매우 적극적이다. 처음에 그들과 대화하면서 오히려 우리 스스로가 살짝 미안하고 민망해질 수 있다. 속으로 북측을 살짝 적대하거나 폄훼하고 낮춰보거나 또 일부 혐오감도 없지 않았는데, 막상 그들이 우리를 너무 친근한 동포로서 적의감 없이 대하는 것을 알게 될 때 그런 마음(미안하고 민망한)이 자연스럽게 든다.”

▶학자로서 너무 좋은 시각만을 가지는 것 아닌가.

“북측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평화·통일문제, 북한연구에 소명감과 사명감을 가지는 이유는 단순하다. 북측 사람들을 직접 보기 때문이다. 우리(북한 연구자) 기준에서 북측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순수하고 착하다고 생각한다. 때묻지 않은 공동체적 정서가 여전히 매우 강하다. 개인주의가 심화되면서 우리가 많이 잃어가고 있는 공동체성, 헌신, 봉사, 희생정신 같은 것이 상당히 강하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계산적 사고를 거의 하지 않는다. 돌려서 말하지 않고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다고 한다. 명확하고 담백하다. 왜 그럴까. 그들은 관계에 거의 돈 문제가 개입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와 다른 사회주의적 특징이다. 우리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대부분 비즈니스 혹은 사적 소유에 근거하고 있다. 주고받는 것이 당연한 문화다. 돈 중심의 개인주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북측 사람들은 공동체성이 강하다. 나와 너가 아닌 우리를 강조한다. ‘내 일’과 ‘네 일’이 아닌 ‘우리의 일’이라고 한다. 돈의 문제가 희박해지고 개인적 이해관계가 아닌 공동체적 이해관계가 대부분이다 보니 보편적으로 갈등할 일이 별로 없다. 우리와 많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

▶반대로 북한사람은 한국인을 어떻게 생각하나.

“북측 사람들은 우리를 한 민족, 같은 동포로 본다. 통일을 함께 만들어 가야 할 지고지순한 동포로 보는 것이다. 그런 걸 무의식 중에 듣다 보면 그들에게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든다. 우리가 북에 대해서 가지는 인식처럼 북도 우리를 똑같이 적이나 두려움의 대상으로 보겠지 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 ‘남쪽 사람들을 한 민족, 한 동포로 보지 왜 적이라고 생각하겠습니까’라고 너무 쉽게 이야기한다. 계산된 이야기가 아니라 진심으로 하는 이야기다. 그때부터 북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생각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분단이라는 게 뭐였을까’ ‘나는 이 사람들의 생각을 왜 몰랐을까’ 등을 자문하게 된다. 이러한 ‘다름’이 존재하는 것을 알고 그런 다름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통일문제, 민족문제에 대해 소명과 사명감을 느끼게 된다.” 박종문기자 kpj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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