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의 피플] 예천 지보면 신풍리 ‘신풍미술관’ 이성은 관장

  • 김수영 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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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0-05   |  발행일 2019-10-05 제22면   |  수정 2019-10-05
“그림학교 열어 미술치료…외로운 할머니들 웃음 되찾아”
20191005
예천군의 유일한 사립미술관인 신풍미술관 이성은 관장. 넉넉한 웃음만큼 넉넉한 마음으로 미술관을 따뜻하게 운영하고 있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예천에 있는 ‘신풍미술관’. 처음 미술관 이름을 들었을 때 2가지 궁금증이 일었다. 도대체 어떤 미술관일까. 예천을 시골이라 생각하면서 주민이 별로 없는 시골과 관람객이 북적여야 하는 미술관은 안 어울린다는 잠재의식이 작동한 것 같다. 또다른 궁금증이 있다. 신풍미술관의 신풍은 무슨 뜻일까. 잠시 ‘새로운 바람의 신풍(新風)이 아닐까’라는 자의적 해석을 내렸다. 취재를 위해 목적지로 가면서 한가지 답은 찾았다. 신풍미술관은 예천군 지보면 신풍리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미술관은 아담하고 아름다웠다. 작은 시골마을에 잘 어울리는 정겨운 미술관이었다. 이 미술관이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은 넉넉한 웃음을 간직한 이성은 관장(55) 때문이었다.

▶신풍미술관이 어떤 미술관인지요.

“2010년 7월 개관한 신풍미술관은 기획전시, 교육, 미술체험 등을 할 수 있는 경북도 인증 등록 미술관입니다. 지역 특성을 살려 ‘힐링’을 주제로 한 전시와 할머니그림학교, 어린이 대상의 뮤지엄아카데미 등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게스트하우스를 마련, 작가 레지던시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남편이 고향 계시는 어머니 모시려해
부산서 큐레이터 활동하다 함께 이주
미술전공 동생 부관장 맡아 재능기부
의사인 제부는 재정적으로 큰 도움 줘

어르신 참여 실버페스티벌 반응 좋아
만 5∼8세 아이들 뮤지엄아카데미도
미술관 문턱 낮아야 그림 누구나 감상
예천에 터잡은 작가들 전시 늘리고파


▶수준 높은 기획전시도 많이 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개관 때부터 예천출신 작가들의 전시를 많이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개관 초기에는 예천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 예천출신의 전국 유명작가 전시를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지역보다는 작품에 초점을 두고 기획전을 합니다. 그동안 정종해, 홍현기 등 한국 대표작가들의 전시도 많이 했습니다. 앞으로 미술관이 제대로 자리를 잡으면 예천에 터를 잡고 활동하는 작가들의 전시를 늘리고 싶습니다.”

▶큐레이터로 오래 활동한 때문인지 고품격 미술관을 만드는데 힘을 쏟아온 듯 합니다. 큐레이터였던 분이 어떻게 시골에 오게 됐는지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뒤 미국 유학을 마치고 큐레이터로 활동했습니다. 결혼 후 부산에 살면서도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효자인 남편(윤장식) 때문입니다. 파평윤씨 집성촌인 신풍리에 어머니(김성운) 홀로 살고 계셨는데 많이 편찮으셨습니다. 저희 집에 모시기도 했으나 답답하시다며 결국 다시 예천으로 가셨습니다.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고향마을로 가자는 남편을 따라왔습니다.”

▶대도시에 살다가 시골로 오는 게 쉽지는 않았을 듯 합니다.

“많이 고민했습니다. 그래도 남편의 간절한 바람을 거역할 수 없더군요. 남편이 집 옆에 미술관을 지어준다는 말에도 귀가 솔깃했고요. 처음엔 마을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 힘들었습니다. 시어머니를 모시려고 왔는데도 저를 이방인 취급하더군요. 그런데 미술관을 지으면서 삶의 지혜를 깨달았습니다.”

▶어떤 깨달음인지요.

“할머니들과 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술관을 한창 짓고 있을 때 동네 할머니 한분이 우울증으로 자살하셨습니다. 미국 유학시절 제가 살던 곳에 할머니들이 많이 계셔서 그 분들과 재밌게 지냈습니다. 귀국할 때 저도, 할머니들도 모두 울었지요. 그래서 미술관에 할머니그림학교를 열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할머니들은 외롭고 힘든 생활을 합니다. 이를 말로 표현하기는 힘들지요. 미술치료가 좋을 듯 했습니다.”

▶미술관을 개관하자마자 할머니그림학교를 시작하셨는데요.

“시골엔 혼자 사시는 할머니들이 많습니다. 사고를 방지하고 웃음이 없는 할머니들에게 웃음을 찾아주고 싶었습니다. 처음에 그림학교를 여니 ‘우리 같은 밥버러지가 무슨 그림을 그리노’라며 그림은 안 그리고 제가 준비한 간식만 드시는 분들이 많았지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니 다들 그림에 푹 빠져 너무 재미있어 합니다. 할머니들의 자존감도 아주 높아졌습니다. 당연히 웃음도 많아졌고요. 처음에는 신풍리 분들만 오셨는데 지금은 인근에서도 꽤 옵니다. 주 1회 수업하고 회원이 30여명 됩니다. 한번도 그림을 배우지 않은 분들인데 솜씨가 대단합니다.”

▶지난해 12월 독일에서도 전시를 했습니다.

“독일 함부르크의 한 마을과 인연이 닿아 그 마을에서 초청했습니다. 할머니 4분과 전시지원팀 4명이 다녀왔습니다. 개막식에 마을주민, 한인 등 200여명이 모였고 전시를 성공리에 마쳤습니다. 그 답례로 오는 16일 열리는 ‘제7회 휴휴 실버페스티벌’에 독일분들을 초청합니다.”

▶‘휴휴 실버페스티벌’, 타이틀이 재미있습니다.

“휴는 ‘쉴 휴’입니다. 즐기면서 힐링하는 어르신페스티벌입니다. 작은 행사로 시작했는데 반응이 좋아 매년 열고 있습니다. 예천, 안동 등의 동네할머니합창단, 내방가사공연팀 등도 참여합니다. 다른 실버축제가 단순관람형이라면 이 행사는 참여형 축제입니다.”

▶뮤지엄아카데미도 호응을 얻고 있다고 하셨는데요.

“만 5~8세 아이를 대상으로 한 미술체험교육 입니다. 인근에 도청이 들어온 뒤 참여자가 많이 늘었습니다. 그림을 잘 그리게 하는 교육이 아니라 아이들의 창의력을 키워주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입니다.”

▶사립미술관 운영이 쉽지 않습니다.

“가족이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막내동생(이영민)이 미술을 전공했는데 온가족이 인근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동생이 부관장을 맡아 재능기부를 해주고 있지요. 의사인 제부(임승현)의 재정적 도움도 큽니다. 몇년전 친정부모님까지 가까이 오셔서 미술관 일을 많이 도와주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꿈도 있을 듯 합니다.

“신풍미술관을 옆집 같은 미술관으로 만드는 게 꿈입니다. 흔히 그림은 특별한 취미를 가진 사람이 감상하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누구나 즐기는 그림이 되기 위해선 미술관 문턱이 낮아야 합니다. 작고 친근감이 가는 미술관이 좀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신풍리 지명(地名)의 한자는 新豊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오면서 신풍미술관으로 인해 新豊이 新風으로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풍리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를 바란다.

김수영 논설위원 sy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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