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성주 성주호 둘레길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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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2-06   |  발행일 2019-12-06 제36면   |  수정 2020-09-08
머리에 亭子 이고 있는 ‘배바위’ 물길·산길 둘러진 길에서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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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군 금수면 무학리 대가천변의 배바위와 무학정.
도시의 낙엽들은 제각각 몸을 뒤틀고 있다가 파삭파삭 소리를 내며 사라진다. 곰곰 생각해 보면 숲길의 낙엽은 사지를 쭉 펴고선 아무 소리도 없이 누워있다. 땅의 습기를 흠뻑 들이마시며 촉촉한 채로 포개지고 포개져서 그대로 땅이 되어버리더라. 차창으로 달려드는 낙엽은 어떠한가. 그들은 맹렬하게 돌진해오다가 유선형의 물고기처럼 대기를 타고 스쳐지나가 버린다. 그들은 바람과 마찬가지로 떠돌이이므로 종국을 알 수 없다. 어떤 것은 누군가의 밭에서, 어떤 것은 도로의 가장자리에서, 또 어떤 것은 물 위를 둥둥 떠다니며 다음 생을 기대할지도 모르겠다. 길이 훌쩍 높아지자 성주호 너른 수면이 열렸고 와락 안길 듯 육박해오던 낙엽이 일제히 흩어져 물 위를 날았다.

금수면 대가천 막아 조성한 성주댐
굽이져 펼쳐진 ‘성주호 드라이브길’
수상 레저·물놀이 즐기는‘아라월드’
무학리 광암교까지 이어진 인기구간

계곡에 넓은 바위 앉은 ‘넉바우 마을’
옛날 검은학이 맴돌다 간 바위‘무학’
그 꼭대기에 앉아있는 정자 ‘무학정’
데크길·깊숙한 골짜기·숲길로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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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호 둘레길의 백운정. 원래 대가천변의 절벽에 있던 것을 댐 건설로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성주호 둘레길

성주댐이 만들어진 것은 1992년이다. 성주의 서쪽 금수면의 도장골산과 독용산 사이를 흐르는 대가천을 막아 인근 사람들의 농업과 생활에 필요한 물을 저장케 한 것이 성주댐이다. 여느 댐과 마찬가지로 몇몇 마을이 사라졌고 수몰지에 있던 문화재들은 자리를 옮겼다. 흐르는 천은 댐에 다다라 호수를 이루었고 호숫가 길은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해졌다. 천을 쫓는 일은 충동적이면서도 집요한 욕망과 같아서 어느 순간 ‘저건 신포도’가 되어 낭패감을 숨긴 채 뒤돌아서게 하지만 호수는 언제든 정복할 수 있는 개별적인 목록이 된다. 성주 가천면에서 대가천을 따라 달리는 59번 국도가 봉두리의 성주댐을 지나며 ‘성주호 드라이브길’이 되고 시원한 넓이로 굽이져 펼쳐지던 호수는 무학리 즈음에서 다시 천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 성주시는 댐에서 무학리 사이를 성주호로 설정한 듯하다. 그곳의 드라이브 길과 산길, 물길을 이어 ‘성주호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다.

무학리는 대가천 상류의 산모퉁이에 자리한 마을이다. 협곡 산촌에 손님을 맞는 곳이라는 빈주봉(賓主峯)이 있다. 무학1리는 넉바우 마을로 계곡에 넓은 바위가 있어 넉바우, 광암이다. 많은 이들이 넉바우 마을의 광암교에서 성주호 둘레길 트레킹을 시작한다. 다리 옆에는 캠핑을 할 수 있는 금수문화공원이 있다. 공원 상류에 정자를 머리에 인 멋진 배바위가 서 있다. 바위가 배처럼 생겨서 혹은 옛날 대가천을 거슬러 올라온 배를 매어두었다고 해서 배바위, 선암(船岩)이라 하며 옛날에 검은 학이 맴돌다 갔다고 해서 무학(舞鶴)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꼭대기에 앉은 정자는 무학정(舞鶴亭)이다.

무학리에서 성주호 드라이브 길을 따라 내려가면 길가로 좁장하게 이어지는 데크길을 볼 수 있다. 대부분 도로의 가드레일 안쪽으로 길을 내어 안전하게 느껴지고 도로에 면해 있으나 지나는 차가 드물어 묘한 호젓함도 있다. 드라이브 길을 둘레길로 인식하는 순간, 달릴 때는 주목하지 않았던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도로에 바짝 면해 서 있는 한 칸 백운정(白雲亭)은 운봉(雲峯) 현광호(玄光昊)라는 선비의 제자들이 1937년에 지어 봄·가을마다 모였다고 한다. 원래 대가천변의 절벽에 있었는데 성주댐 건설로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다. 도로의 백운정은 약간 비극적이고, 백운정에서 보는 호수와 그 너머의 산줄기는 구체적이고도 의식할 만한 상세 없이 평평한 수면과 덩어리를 이룬 숲이 전부다. 그러나 그 풍경은 사람의 신체를 지워 하나의 순수한 세포로 회귀시키는 견고한 과거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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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월드’를 지키는 로봇들.
◆아라월드에서 부교까지

백운정을 지나면 신성리 골짜기 깊숙이 들어와 좁아진 호수 위로 목교가 놓인 작은 공원이 있다. 골짜기를 빠져나가 다시 풍성한 호수와 함께 달리면 단단하게 버티고 선 성주댐을 만난다. 댐 아랫마을인 중산리 강정마을 앞을 흐르는 대가천을 건너 다시 거슬러 오르면 성주호 아라월드가 나타난다. 아라월드에서 무학리 광암교까지는 산길, 물길이 이어진다. 이 길은 성주호 둘레길에서 가장 사랑받는 구간이다.

아라월드는 수상레저와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테마파크다. 물과 관련된 각종 스포츠와 놀이가 가능한 곳이며 국가대표와 프로 선수 등 최고의 강사진이 전문적인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곳이다. 지금 아라월드는 이른 겨울잠에 들었다. 문 닫긴 놀이동산은 언제나 아련한 흥미를 자아낸다. 텅 비어 있지만 사방에서 천개의 눈이 바라보는 듯하다. 물 위에는 뼈대만 남은 시설물들이 여운처럼 남아 있고 보트들은 주차장에 가지런히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다. 낙엽들은 빈 수영장에 바보처럼 숨어들었고 테라스와 야외무대 앞에는 어른보다 큰 로봇들이 변방을 지키는 우직한 병사로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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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한씨 문중의 재실로 경북 문화재자료 제281호인 ‘봉두리 영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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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호 부교 저편으로 넘어가면 산길을 거쳐 넉바우 마을에 닿는다.

아라월드에서 둘레길로 들어서면 잠시 콘크리트 임도가 이어지다 봉두리(鳳頭里) 영모재(永慕齋)에 닿는다. 경북 문화재자료 제281호인 영모재는 명종, 선조 때 사람인 한춘부(韓春富)와 그의 손자인 효종 때의 학자 한두남(韓斗南)의 재실로 청주한씨(淸州韓氏) 문중에서 1925년에 건립했다. 이 건물 역시 성주댐 건설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재실은 방형의 흙돌담에 둘러싸여 있고 주변으로 주차 공간이 넓다. 콘크리트길은 여기서 끝이다. 울퉁불퉁한 흙길에 황토빛깔의 물웅덩이가 가끔 성가시게 나타나고, 정성스레 조성해 놓은 묘지 몇 기가 길가 높은 축대위에서 성주호를 내다본다.

곧 완전한 숲길이다. 처음 디뎌보는 산길에서는 어제 떨어져 내린 낙엽이 감춰놓은 땅의 깊이를 알지 못하기에 늘 조심스럽다. 그러다 길의 가장자리에서 낙엽들을 뚫고 튀어나온 멍석 끄트머리를 발견하거나 저 앞 가파른 비탈에 놓인 데크길을 보게 되면 아, 하고 안도해버린다. 현대에 개발된 온갖 이름의 이런 ‘길’은 겁 많고 소심한 사람의 손을 잡아 인도한다. 쌓인 낙엽 위로 아직 하늘에 매달린 잎들의 명암이 교차하고, 그 얼룩을 휘젓는 발걸음에 소리는 없다. 어두운 나무 가지 사이로 성주호의 밝은 수면과 물 위로 길을 낸 부교가 보인다. 총총총 계단을 내려가 흔들리는 부교에 오른다. 노를 저어가지 않으면 볼 수 없었을 숲의 옆구리가 바로 저기에 있다. 한 청년이 부교에 서서 낚시를 하고 있다. 아이스박스나 양동이도 없이 달랑 낚싯대 하나만 들고 “안녕하세요?” 도깨비처럼 느닷없는 미소와 단순한 인사에 언 볼이 녹는다. 부교의 초입에서 휘청거리다 그만 돌아선다. 숨을 쌕쌕 내쉬며 총총총 다시 계단을 오른다.

 

▨ 여행정보

대구 달서구 성서에서 30번 국도를 타고 성주로 간다. 성주읍에서 59번 국도를 타고 고령·김천 방향으로 간다. 수성2 교차로에서 우회전해 59번 국도 성주댐·아라월드 방향으로 가면 된다. 성주호 둘레길은 총 23.9㎞로 아라월드에서 무학리 광암교(금수문화공원)까지는 산길, 물길이며 무학리에서 백운정~목교 소공원 지나 성주댐까지는   도로변   길이다.   성주댐에서 댐 아랫마을인 중산리 거쳐 아라월드까지 원점 회귀하기도 한다.   아라월드에서 광암교 구간을 걷는 이들이 많은 편이다. 성주호 둘레길은 ‘가야산 선비산수길’에 속해 있으며 제1코스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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