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의 스토리 오브 스토리 .28] 추리소설을 읽는 즐거움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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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1-30   |  발행일 2020-01-30 제21면   |  수정 2020-01-30
작가가 파놓은 함정, 두뇌 싸움을 벌이다

박상준

추리소설의 묘미는 대체로 범인을 찾는 데 있다. 범인처럼 보이는 인물들 중에서 누가 범인인지를 맞히려고 작가와 두뇌 싸움을 벌이는 것이 추리소설 읽기의 즐거움이기 마련이다. 작가와의 두뇌 싸움이라 했는데, 이것은 범인 맞히기의 최고 단계에서 누리게 되는 즐거움이다.

그보다 전 단계에서는 어떠한가. 셜록 홈즈나 앨러리 퀸, 매그레 반장, 미스 마플이나 탐정 푸아로와 같이 세계 추리소설계의 성좌를 이루는 쟁쟁한 탐정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그들의 추리를 따라가는 데서 재미를 느끼게 마련이다. 어린 시절의 추리소설 독서 경험을 떠올리면 대개들 이럴 것이다. 한 가지 더 추가하자. 잠시 잠시 책장을 넘기지 않고 범인을 알아내고자 노력해도 끝내 맞히지는 못했다는 점을.

해서, 추리소설을 좀 더 주의깊게 읽고자 했던 사람이라면, 자신이 맞히는 데 실패한 범인이 범인이라는 단서가 어디에 있었는지 확인하려고 소설책의 앞부분을 다시 살펴보기도 했을 것이다. 다 읽고 나서 책을 다시 뒤지는 이런 행위의 목적은 우리를 따돌리고 혼자 범인을 밝혀낸 저 유명한 탐정들의 추리 과정을 재구성해 보는 것이지만, 이러한 작업을 반복하다 보면 부지불식간에 탐정이 아니라 작가의 기법에 주목하게 된다. 독자인 우리를 제쳐 두고 탐정만이 진실을 향해 가게 만든 작가의 소설 구성 방식을 알아차리고 그 수완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탐정이 아니라 작가와의 두뇌 싸움 단계다.


탐정과 동일시하면서 추리 따라가는 재미
범인 맞히기 못잖게 범죄동기·과정도 흥미
뤼팽 등 걸작은 인간·사회를 보는 통찰까지

알렉스 마이클리디스 '사일런트 페이션트'
'식스 센스' 못지않은 반전에 즐거움 극대화



물론 추리소설의 재미가 범인 맞히기에 그치지는 않는다. 범죄의 동기와 과정 자체가 주는 재미도 있는 까닭이다. 애초부터 범인이 드러나 있거나 소설 중간에 범인이 밝혀지고도 계속 전개되는 추리소설은 이러한 즐거움을 장점으로 갖는다. 범인이 누구인지가 아니라 그 범인이 왜 범죄를 저지르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것을 수행하는지가 흥미진진한 재미를 주는 것이다. 앞의 경우는 우리나라의 초기 추리문학을 수립한 김내성의 '마인'(1939년)이나 아가사 크리스티의 '오리엔트 특급 살인'(1934년), 뒤의 경우는 괴도 아르센 뤼팽 시리즈나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2006년) 등이 대표적인 예가 된다.

추리소설의 걸작으로 남은 작품들의 경우에는 사회상의 반영이나 인간에 대한 탐구 면에서도 작품 읽기의 즐거움을 준다.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는 20세기 전환기 사회의 어두운 모습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으며, 모리스 르 블랑의 아르센 뤼팽 시리즈는 뤼팽의 면모를 통해서 자유로운 인간성의 빛과 그림자를 보게도 해준다. 단행본도 들어 두자. 우리 시대의 고전이라 할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1980년)이 이 면에서 대표적인데, 14세기 중세 수도원을 배경으로 해서 인간 일반의 본성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보여 주었다. 추리 기법으로 작품의 뼈대가 갖춰져 있는 경우로 한 편 더 들자면, 인간주의의 등장에 대한 문화사적인 통찰을 보인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1988년)도 빼놓을 수 없다.

추리소설 읽기의 재미를 세 단계로 나누어 말했지만, 사실 직접적인 재미는 범인을 맞히는 데 있다. 이 과정이 없거나 약하다면 소설의 줄기가 추리로 이루어졌다 해도 추리소설이라고 하지는 않을 정도로, 범인 맞히기야말로 추리소설의 핵심이라 할 만하다.

이러한 면에서 근래 눈에 띄는 경우가 사이프러스 출신 작가 알렉스 마이클리디스의 첫 작품 '사일런트 페이션트'(남명성 옮김, 해냄, 2019)다.

'사일런트 페이션트'는 반전이 돋보이는 추리소설이다. 스토리의 반전 하면 맨앞에 나서는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1999년 영화 '식스 센스'에 못지않은 반전이 이 소설 읽기의 즐거움을 극대화한다. 스포일러의 위험을 다소 누그러뜨리기 위해 간접적으로(!) 말하자면, 반전이라는 면에서 이 소설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1926년)에 이어지는 경우라 하겠다. 이 작품의 반전은 그러한 반전이 필수불가결하다는 점에서도 멋지다. 반전 자체가 일반적으로 주는 독서의 즐거움 외에, 스토리 내내 주인공이 보이는 집착에 가까운 행동을 합리적으로 만드는 데 반전의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사일런트 페이션트'의 재미는 범인 맞히기에서의 반전 외에 두 가지 원천을 더 갖는다. 하나는 심리 상담에 관해 많은 것을 알려 준다는 점이다. 정신분석학적인 지식이 동원되기도 하는 심리 상담 관련 정보가 적지 않아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알게 될 때의 즐거움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이보다 중요한 것은, 주인공이 보이는 심리 상담 장면들과 그 과정에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사항들 등이 실제처럼 그려졌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어떤 정보나 지식을 자랑하듯 알려 주는 교설적인 느낌은 거의 없이, 우리가 잘 모르는 분야를 엿보는 듯한 호기심 차원의 재미가 한껏 커졌다.

알렉스 마이클리디스가 자신의 첫 소설 '사일런트 페이션트'의 재미를 깊게 하고 세상의 관심을 받게 된 데는 또 다른 원천이 있다. 고전과의 상호텍스트적인 연관이 그것이다. 이 소설의 여주인공인 화가 앨리사 베런슨은 어느 날 얼굴에 총을 쏴 남편을 살해한 뒤 자해를 하고 입을 다물어 버린다. 그녀가 병원에서 퇴원해 재판을 앞두고 집에 구금되었을 때 자화상을 그리는데 작품의 제목이 바로 '알케스티스'이다. 소설이 알려 주는 대로 '알케스티스'는 고대 그리스의 에우리피데스가 쓴 비극의 제목이며, 아폴론과 아드메토스, 알케스티스가 얽힌 신화를 바탕으로 한다.

페라이의 왕 아드메토스는 제우스의 벌로 1년간 자신의 노예가 된 아폴론을 잘 대해줌으로써 아폴론으로부터 큰 선물을 받는다. 그의 생명이 다할 때 그를 대신해서 죽어 줄 사람이 있으면 다시 한 번 이승의 삶을 살게 해주겠다고 아폴론이 약속한 것이다. 죽음을 앞둔 아드메토스가 자기 대신 죽어 달라는 청을 했을 때 이를 수락한 사람은 그의 아내 알케스티스밖에 없었다. 결국 그는 다시 생명을 얻고 그의 아내는 죽게 되는데, 이를 알게 된 아폴론이 알케스티스를 명부로부터 이승으로 데려와 준다. 아폴론이 되살려 낸 알케스티스를 보고 아드메토스는 감격해 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을 지킨다.

소설 '사일런트 페이션트'는 신화 속 알케스티스의 침묵에 대한 알렉스 마이클리디스의 심리 분석적 해석에 해당한다. 앨리사 베런슨이 침묵을 지키는 이유가 알케스티스 신화와 연관될 때 우리는 그녀의 살해 동기를 이해하고 자신은 남편을 죽이지 않았다는 그녀의 주장에 공감하는 데까지 이르게도 된다. 이러한 의미 맥락이 이 소설의 주제효과를 풍성하게 하고 재미를 한층 더 증대시킴은 물론이다.

여러분들의 읽는 재미를 해치지 않기 위해 소설의 내용을 감추며 에둘러 말해 왔지만, '사일런트 페이션트'가 흥미진진한 이야기 보따리라는 사실은 충분히 밝힌 듯싶다. 한편으로는 심리 상담을 따라가면서 범인 맞히기의 재미를 만끽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알케스티스의 신화를 음미하면서 소설 읽기의 즐거움을 누리다가, '식스 센스' 못지않은 반전에 놀라며 책장을 덮게 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사정이 이러하니, 번잡한 세상사로부터 잠시 거리를 두고 유흥으로서의 소설 읽기를 즐기고자 한다면 기꺼이 펴 볼 일이다. 재미있다. 후회하지 않는다.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학부장·문명시민교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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