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란의 스위치] '한글 세계화 주역' 이기남 원암문화재단 이사장

  • 이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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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2-15   |  발행일 2020-02-15 제22면   |  수정 2020-02-20
"문자 없는 민족에 한글 전파, 세종대왕 애민정신 확산시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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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출신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한글세계화의 주역인 이기남 원암문화재단 이사장은 "인도네시아의 찌아찌아족 등 무(無)문자 민족을 위해 '한글' 보급에 나선 지 10년이 지나는 동안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며 "그러나 한자와 알파벳에 대항해 우리의 문화적 영토와 역량을 넓히려는 야심찬 계획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 출신인 이기남 원암문화재단 이사장이 고집 센 언어학자들을 설득해 훈민정음학회를 결성하고 자기 돈을 써 가며 무(無)문자 민족을 위해 '한글' 보급에 나선 지 10년이 지났다(2009년 8월14일자 영남일보 22면 첫 보도). 당시 인도네시아 부톤섬의 소수민족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부족어 표기법으로 채택했다는 소식을 접한 미국, 일본 등의 해외 유수 언론이 대대적으로 인터뷰하기도 했다. 이 이사장은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지만, 한자와 알파벳에 대항해 우리의 문화적 영토와 역량을 넓히려는 야심 찬 계획은 계속 발전적으로 이어지고 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르면 올해, 늦어도 내년에는 원암문해상을 제정해 한글날에 제1회 문해상을 찌아찌아족에게 수여하려는 계획을 귀띔하기도 했다. 이 이사장을 6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자택에서 인터뷰했다.

선친 이규동 선생 '문자 수출' 꿈 꿔
경영일선 물러난 후 유지 실천 결심
재단 설립에 이어 훈민정음학회 창립
찌아찌아 이어 피그미족에 한글 보급
인류 문맹퇴치 뛰어든지 10년 넘어서
이르면 올해 '문해賞' 제정 수여 계획


▶언어는 있으나, 문자가 없는 무문자 민족과 절멸 위기 언어를 보존하기 위해 한글을 수출하기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다. 그간의 성과에 대해 설명해 달라.

"그동안 모두 6개 언어를 훈민정음으로 표기하고 디지털화했다.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한글 1호 진출 사례'인 찌아찌아족의 한글 교육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은 보육원 1곳과 초등학교 3곳(한글), 고등학교 2곳(한국어)에서 수업이 열리고, 바따우가군(郡)으로도 교육 기회가 확대됐다. 인도네시아에는 찌아찌아 원암재단이 설립되어 있다. 찌아찌아-한국어 사전과 찌아찌아 인도네시아어 사전의 편찬도 마무리 단계에 와있다. 바하사 찌아찌아 교과서도 초· 중·고급을 완전히 새롭게 편찬하였다. 이 작업을 지난 10년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재〉원암문화재단의 지속적인 재정 지원과 〈사〉훈민정음학회의 지도, 찌아찌아인 교사들 노력의 결실이다. '찌아찌아족'에 이어 아프리카 콩고의 피그미족에게도 한글이 알려지게 된 것이 벌써 3년이 되었다. 러시아의 나나이족, 볼리비아의 아이마라족 등 절멸 위기의 4개 언어도 한글로 표기해 디지털화했다. 또 중국어를 훈민정음으로 표기하는 법을 완성했으며, 지금은 영어를 훈민정음으로 정확하게 표기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것이 끝나면 우리나라 외국어 교육도 크게 변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일차적으로는 역시 자금 마련이 가장 힘들었다. 외교적인 마찰 등을 거론하면서 비방하는 경우도 있었다. 대부분 밖에서 잘못 보고 하는 지적이다. 외국에서는 찌아찌아족이 표기법으로 한글을 채택했다는 소식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비결이 있다면.

"이것은 거대한 사업이다. 문화 교류 지원이 더해져 확산됐다. 문자를 수출하는 훈민정음학회와 별도로 훈민정음 세계화재단을 설립했다. 여기에는 한-피그미, 한-나나이 문화교류협회 등이 결성되어 있다. 특히 언론 보도를 접한 명동성당의 신도회에서 자발적으로 결성한 한-찌아찌아 문화교류협회도 함께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각 협회에 소속돼 현지인들을 지원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2009년에는 권영찬 회장의 주도로 결성된 찌아찌아장학회와 밀양의 찌아찌아하우스가 있다. 찌아찌아장학회는 지난 11년 동안 꾸준히 현지 학생들의 장학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최근에 보도된 찌아찌아마을의 한복도 장학회가 보내 준 것이다. 현지인들이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등 호응도 크다. 교류협회 회원들은 이제는 주민들이 대여점을 내어 수익사업을 하는 등으로 열심히 사는 것을 보고 말할 수 없는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이와 더불어 2009년부터 현장을 지키는 정덕영씨가 꾸준히 한글을 가르쳐온 공로도 크다."

▶콩고의 피그미족에게는 어떻게 한글이 보급됐나.

"2015년 서울과 전주에서 열린 '한국 아프리카 문화교류·피그미족 돕기' 자선공연단의 일원으로 한국을 처음 찾은 피그미족 공주의 요청으로 시작됐다. 피그미족 공주가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표기문자로 채택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문자가 없는 우리에게도 한글문자를 만들어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고 한다. 그것이 내게 연결됐다."

▶왜 이 일을 하나.

"인류애이다. 세종대왕 애민정신을 인류애로 확산시키는 것이다. 우리가 어려울 때 미국 등 여러 나라가 원조해주었고, 전쟁이 났을 땐 파병을 해 주었다. 그런데 지금 잘살게 되었다. 잘살게 된 사람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특히 우리는 문자가 있으니 문자 나누는 게 가장 좋겠다고 생각했다."

▶문자 수출을 결심한 까닭은.

"저의 할아버지는 애국지사 이승종 선생, 아버지는 음성학자인 이규동 선생이시다. 네다섯 살 때부터 한학자인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 한글과 천자문을 배웠다. 또 언어학자이셨던 아버지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의 감시를 피해 한글과 한국 역사를 가르치는 것을 보면서 자랐다. 두 분은 어린 내게 우리 한글이 우수하다는 말씀을 늘 들려주셨다. 특히 아버지는 문자 수출을 꿈꾸었다. 1993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자 아버지가 못 이룬 꿈인 우리 글, 훈민정음의 우수성을 제대로 알리는 일에 남은 인생을 바치겠다고 결심했다. 문자 없는 나라에 훈민정음을 전파하면 장차 우리 민족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한글을 지구촌 사람들과 나눠 쓰는 길이 열릴 것이며, 문맹 타파라는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이념을 널리 펼칠 수 있게 되리라 생각했다. 이를 위해 2003년 아버지의 호를 따 원암문화재단을 만들었다."

▶어떻게 진행됐나.

"지구상에 말은 있으나 문자 없는 민족이 6천여 개에 이른다. 원암재단에서 1차 대상으로 네팔의 네팡족, 중국의 다오르족, 동티모르 등을 대상으로 삼고 사업을 펼치기 시작했다. 선교사들을 지원하거나, 현지에 정음학교를 세우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한글 보급화를 꾀했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그래서 언어학자들과 함께 보다 체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판단이 생겼다. 그래서 2007년에는 서울대 언어학과 김주원 교수 등과 함께 훈민정음학회도 창립했다. 언어학자를 중심으로 전문가 그룹이 형성되자 2008년부터 무문자 민족을 찾아 나섰다. 그해 7월 한국외국어대 전태영 교수가 소개한 인도네시아 바우바우시를 방문, 시장과 무문자 민족 지도자를 만나 한글을 보급하겠다고 약속했다. 한글 나눔사업이 첫발을 내디디는 순간이었다."

▶앞으로의 계획은.

"계속해서 꾸준히 인류의 문맹 퇴치를 위해 일할 것이다. 이는 'AI 시대'에서도 해야 될 일이다. 중국어도 한글로 디지털화를 마쳤다. '한음정음'인데, 중국 정부에도 특허를 냈다. 몇 세기 후에는 이것이 우리나라의 먹거리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이것을 토대로 연변에 교사 양성학교를 낼 계획도 갖고 있다. 그리고 내년엔 '문해상'을 제정하려고 한다. 한글날을 기념해 한글을 도입한 여섯 민족을 초청해 문해상을 시상하고 기념행사도 벌이고 싶다."

이영란 논설위원 yrlee@yeongnam.com


▨ 이기남 원암문화재단 이사장= △1934년 대구출생 △경북여고, 경북대 졸업 △경북대 명예교육학박사 수득 △〈재〉원암문화재단 이사장 △〈사〉훈민정음학회 창립이사장 △〈사〉한국-이스라엘상공회 창립이사장 △ 전 〈주〉신명시스템즈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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