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창녕 부곡온천 둘레길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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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2-21   |  발행일 2020-02-21 제37면   |  수정 2020-02-21
겨울 햇살 떨어지는 흙마다 온천수 김이 솟아나는 듯

부곡1
창녕군 부곡온천에 있는 원탕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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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에 지은 안동김씨 재실 영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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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곡 둘레길에 있는 태철암의 명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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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곡온천에 있는 청정하고 적요한 둘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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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곡 둘레길이 있는 거문리와 종암산, 덕암산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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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리에 있는 충의사 김인상 정려각.

문명병에 시달리는 현대인은 피로하다. 겨울철이 되면 시나브로 더 피로하다. 미세먼지가 잦고, 이상기후로 독감이 유행하며, 블랙아이스가 운전자를 위협하는 겨울은 스트레스와 만성피로를 불러온다. 게다가 어설픈 민주주의가 이기주의로 둔갑해 과잉경쟁과 소외감이 선을 넘어 물결치는 사회는 인간을 절임배추로 만든다. 경자년 흰 쥐해, 설날을 지나니 명절 증후군까지 스트레스가 되어 심신이 곤장에 맞은 것 같다. 이렇게 아스스한 몸을 온천욕으로 풀면 애면글면 명약이 되는 거다. 대구 인근 경남 창녕 부곡온천장으로 출발한다. 입구부터 도로 양편으로 승용차가 빼곡하다. 마침 일요일이라 온천장을 찾는 인파가 북적인다. 부곡은 사방이 수려한 산이다. 트레킹 로드가 오소소하다. 먼저 트레킹 로드를 걷고 입욕할 예정이다. 그래서 원탕 앞에 있는 안동슈퍼에 들러 이 지역 트레킹 로드를 옴니암니 물어본다. 주인 김성규씨는 본관이 안동김씨이고, 부곡에서 대대로 살아온 토박이 터줏대감으로, 이 지역의 향토사와 지리를 꿰차고 있었다. 트레킹 로드를 찾는 물음에 그는 흔쾌히 안내를 자청한다. 고마운 분이다. 부곡은 지형이 가마솥을 닮았고, 따뜻하여 거주지로서는 안성맞춤이라 한다. 유황온천 사우나를 자랑하는 원탕 옆, 온천각 공원에서 부곡 온천비(溫泉碑)를 찾아본다. 비문에는 '…동국여지승람과 동국통감 고려기에 영산온정이 기록되어 있어 오래전부터 부곡에 온천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마을(온정리)에는 옴샘이라고 이름 붙여진 뜨거운 물이 솟아나는 우물이 있다는 소문이 전국에 전해지면서 옴 환자와 나병 환자들이 떼 지어 와서 치료하였다'라고 돼 있다.

옛 기록으로 볼 때 부곡 수질이 다른 온천보다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지금 부곡온천이 개발된 것은 신현택씨에 의해 1973년 1월10일 발견된 이후이며, 특히 국내 최대 규모와 최고 온도 78℃의 알칼리성 유황온천으로 피부병, 위장병, 신경통, 고혈압 등 질병에 탁월한 효과가 있고 물이 매끄러워 피부미용에 아주 좋아 1997년 1월 관광특구로 지정됐다.

평균 기온 따뜻하고 가마솥 닮은 지형
유황온천 사우나 원탕옆 부곡온천비
'옴샘으로 나병 환자가 떼지어와 치료'

발자국 마다 '내면의 나' 와 같이 걸음
1864년 지은 고풍스러운 영모재 재실
천장과 상량, 10여개 걸린 편액·현판
검은산 자락길, 수백 년된 소나무 숲
약수 물맛 좋기로 소문난 태철암 닿아
왜군에 굴복하지 않은 김인상 정려각


등산안내도로 옮겨 가 설명을 듣고, 둘레길로 출발한다. 야트막한 장군산 자락 들머리에 '2020년 태권도 우수 팀 초청 동계 전지훈련 페스티벌 필승 선수단 여러분 환영합니다'라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간 평균기온이 가장 따뜻하고, 78℃의 강 알칼리 온천수가 하루 6천t씩 솟아나는 부곡이 체육선수들의 전지훈련 장소로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는 것이다.

눈자위가 아롱아롱하다. 겨울 햇살이 떨어지는 흙마다 온천수 김이 솟아나는 것 같다. 작고 예쁜 교회를 지나고, 역시 작고 아름다운 좌우 못을 지난다. 원래는 한 못이었는데, 못 가운데로 길을 내어 두 개의 못이 되었다. 두 개의 맑은 물에는 하늘의 구름이 잠겨 겨울의 흰 장미처럼 피어있다. 창녕국민체육센터. 선수들이 훈련하는 체육관도 지난다.

겨울바람이 분다. 바람은 자동센서가 되어 내 마음을 열어준다. 발자국마다 '내면의 나'가 나타나 같이 걷는다. 길은 도(道)다. 길은 사무치는 감동이다. 사람은 죽어서도 길을 간다. 저승길이다. 마른 풀들이 해바라기 하는 곳을 지나자, 영모재(永慕齋)라 부르는 재실이 나타난다. 재실 뒤로 애송과 수백 년 된 소나무가 우거져 그윽하고 오보록한 풍경을 만든다. 재실(齋室) 안으로 들어간다. 기와도 조선식 암수 기와이고 담도 흙과 돌을 층계로 쌓아 얼마나 고풍이 넘치는지. '영모재'라고 불리는 이 일자 기와집은 을축년(1864년, 고종갑자년)에 지었다. 지금부터 약 156년 전이다. 그 후 1924년 봄에 재실의 원형은 보존하면서 일부를 중수하였다. 말하자면 조선 후기의 재실 건축 양식이 고스란히 남아 전해오는 아주 희귀한 건물이다.

세월의 이끼가 배어있는 재실은 검박하고 제례를 준비하는 공간으로 정연하게 보인다. 영모재 천장과 상량에 편액과 현판이 10여 개 걸려있다. 그 중 영모재 중수기가 간명해 요약해 본다.

'…영취산 한줄기가 동쪽으로 나와 종암산(宗巖山)이 되고 다시 구불구불 뻗어 검은산(劒隱山)이 되는데, 산 숲이 깊고 마을이 그윽하니 학문(學文)을 이루고 예(禮)를 지킬 만한 곳이다. 우리 어락정 선조, 즉 안동 풍천 병산리에 어락정(魚樂亭)을 지었던 김순(?~1559)의 증손인 김인상(1557~1592)이 임진란(壬辰亂)에 순절하신 뒤로 집안이 고난을 겪었다. 그의 증손 휘(諱) 필광(必光)이 예안의 서촌에서 칠곡의 교촌으로 우거하였다가 영산현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다시 필광의 증손 세 분에 이르러 드디어 문호가 크게 되었는데, 막내 동추(同樞) 곡암공(谷巖公) 이중(履重) 묘소가 그 중턱에 있다. 지난 고종 갑자년(1864년)에 현손(玄孫) 홍균(弘均)이 작은 재사(齋舍)를 지어 먼 조상을 추모하는 감회를 깃들이고 영모재라고 편액을 달았으니 대개 선영에 성묘하고 제사를 드리는 바탕을 삼은 것이다.'

알기 힘든 한문을 이렇게 해독하니 그 뜻이 곰비임비 무궁하다. 제사는 공자의 유학에서 온 것인데, 장히 제례와 학문을 인간의 최고 가치로 하고, 붉은 예절의 정신을 이어 온 것이다. 영모재는 창녕군에서 가장 오래되고 훼손이 적은 재실이라고 김성규씨는 덧붙인다. 장차 잘 보존하면 전통제례 관광자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그의 해설이었다.

검은산 자락길로 걷는다. 수백 년 된 소나무 숲이 오후의 햇살에 홍살문을 만든다. 우금을 올라 태철암에 닿는다. 패널식 암자다. 여기서 기도하면 아들을 낳는다 하여 멀리서도 찾아온다고 한다. 약수는 물맛 좋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몇 차례 물을 들이켠다. 과연 달디 달다. 겨울임에도 입술이 달착지근한 옴나위없는 명수다. 그런 탓인지 신령스러운 기운이 감돈다.

잠시 숨을 돌리고 체육시설을 지난다. 고개티를 올라 뷰 포인트(View Point)인 큰 고개에 이른다. 새들에는 길이 세 개다. 바로 넘어가면 밀양시 무안면으로 간다. 왼편으론 영산으로 넘어가는 종암산이 보이고, 오른편은 덕암산으로 해서 내려가는 트레킹 로드다. 우리는 올랐던 길을 되돌아 직진한다. 그러면 거문리 마을로 가는 올레길이 된다. 낙엽과 나목, 간혹 불어오는 바람에 홀기(笏記)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누구라도 고향에서 자신의 뿌리를 찾고, 이웃과 고락을 나누면서 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삶이 아닐까. 우리는 뭘 어떻게 하겠다고 객지로 나가 떠돌며 방황하고 있는가. 마치 고향처럼 여겨지는 트레일을 걸으면서 회한과 속절없는 세월에 한탄해야 했다. 어디서 산새 울음이 들린다. 이제 소리도 볼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관음(觀音)이다. 이렇게 적요한 산속에서 나는 이제 나의 숨소리도 볼 수 있게 되었다.

거문리 서쪽 장군산 자락에 있는 정충각에 도착한다. 정충각은 상기에서 진술한 의사공(義士公) 김인상의 정려(旌閭)를 기리기 위한 각(閣)이다. 정충각의 비문을 요약해 본다.

'…김인상(1557~1592)의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자는 시백(時伯), 호는 학산(鶴山)이다. 임진년에 유종개 등과 의병(義兵)을 일으켰다. 김인상은 춘양 소천(노루재)에서 왜군의 침입을 막고 있던 중 적이 대군을 몰아 한꺼번에 쳐들어 옴에 끝까지 창검으로 수많은 적을 무찔렀다. 그러나 마침내 왜적에게 생포되어 낯가죽이 벗겨지고 뼈를 쪼개 높은 나무에 머리를 거꾸로 매달아도 굴하지 않고 오히려 적을 크게 꾸짖으며 36세로 장렬히 전사했다. 이에 조정에서는 삼강록 충신전에 싣게 하고, 고향 안동 풍산 상리마을에 정려각을 세우게 하였으니, 상리마을 삼강당 칠정각에 공은 충신으로 여섯분의 효자 열녀와 더불어 위령제향하고 있으며, 선조께서 친필로 창의 충절을 기리는 만사를 내렸다.'

그 후 그의 후손들이 정려각만을 부곡으로 이건하였다. 이런 스토리텔링과 유적 및 유물의 체험을 통해 되살아나는 선조의 피와 뼈는 한국인의 영원한 정신이 되어 대를 이어 갈 것이다. 이쯤에서 트레킹의 샹그릴라 부곡 둘레길을 마치고 원탕으로 향한다.

시인 대구힐링트레킹 회장 kc12taegu@hanmail.net
사진=김석 대구힐링트레킹 사무국장

☞문의: 경남 창녕군 부곡면 김성규씨 (055)521-0482, 010-3560-0483

☞내비 주소: 경남 창녕군 부곡면 온천2길 35 안동슈퍼

☞트레킹 코스: 안동 슈퍼~김인상 정충각~창녕 국민 체육센터~재실~태철암 약수터~체육시설~큰고개~덕암산~백운암~부곡온천장

☞인근 볼거리: 충무사(남이장군 기념관), 창녕비봉리 패총 전시관, 우포늪, 진흥왕 척경비, 창녕 석빙고, 성씨고가, 박진 전쟁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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