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의 스토리 오브 스토리 .34] '예브게니 오네긴'에서 찾는 푸시킨의 위안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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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4-23   |  발행일 2020-04-23 제20면   |  수정 2020-04-23
삶에 속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일이다
푸시킨이 7년 만에 완성한 '운문소설'
러시아식 우울증에 빠진 청년 오네긴
인정·평판 등 현실 논리로부터 벗어나
'자기만의 자유'를 취하는 삶을 부각
삶의 기만에 슬퍼도 노여워도 않을 길
자신의 개성 소중히 하고 지키는 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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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시 한 편으로 시작하자.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러시아 근대문학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알렉산드르 푸시킨(1799~1837)이 5년여의 유형 생활을 하던 1825년에 발표한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다. 푸시킨의 유형 생활은 그리 힘들지 않았고 지적인 교류를 통해 자신을 성숙시키는 자산이 되었다고 평가되지만, 유형은 유형이니 슬픔과 노여움이 자못 컸을 것이다. 이 시에는 그러한 슬픔과 분노를 달래고자 하는 시인의 심정과 미래에 대한 바람이 곡진하게 나타나 있다. 이러한 태도는 인간 보편의 심성에 닿는 것이어서 이 시에 긴 생명을 불어넣는다.

삶에 속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일이다. 우리 모두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이상을 품는 존재, 현재 상황보다 나은 무언가를 꿈꾸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는 불가피하다. 이러한 우리의 특성이야말로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어준다. 우리가 주어진 현실에 만족해 하며 변화를 꾀하지 않았다면 인간 사회의 발전이 없었을 테니 이는 당연하다 할 만큼 확실하다. 우리가 이렇게 꿈꾸는 존재지만 우리의 꿈들이 그대로 실현되지는 않는다는 점도 당연하다. 해서 슬프되, 지나고 보면, 슬픔을 느끼게 될 만큼 그렇게 노력한 것이야말로 자신의 삶을 가장 보람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기 마련이다. 해서 소중해진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가 보여 주는 삶의 진실은 여기에 더해 개인적인 맥락에서도 확인된다. 자신의 삶이 소중해지는 것은, 세태에 휩쓸리지 않는 개성의 발현에서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자면, 삶의 기만은 세상의 몰인정이나 타인의 부정적인 평가로도 벌어지는데 이에 슬퍼하지도 노여워하지도 않을 수 있는 길은 오직 자신의 개성을 소중히 하고 그것을 지키는 데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 위 시를 발표하기 1년 전부터 써서 7년 만에 완성한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1830년)이다.

푸시킨의 '예브게니 오네긴'은 매우 낯설고 그만큼 개성적인 소설이다. 작가 스스로 '운문소설'이라 칭한 대로 운문으로 쓰였다는 점이 제일 앞에 온다. 러시아 원문이 아니라 한글 번역으로 보니 율격을 느낄 수는 없지만 석영중 교수의 번역(열린책들, 2019)은 시를 읽는다는 느낌을 짙게 준다. 단테의 '신곡'이나 셰익스피어의 희곡, 괴테의 '파우스트' 등 또한 운율을 띤 작품이지만 '예브게니 오네긴'만큼 운문으로 쓰였다는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이 작품이 운문소설로서 갖는 특징은, 서술 방식상의 특징에 의해서도 강화된다. 몇몇 모더니즘소설 이전의 대부분의 소설은 소설의 내용이 작가에 의해 창작된 것이 아닌 듯이 기술된다. 실제 있었던 일을 재현한 듯한 느낌이 들도록 서술 상황을 은폐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예브게니 오네긴'은 서술자가 시적 화자처럼 자유자재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예브게니 오네긴'의 독특한 점은 이야기 구조에서도 확인된다. 스토리의 완결을 거부하는 것이다. 주인공인 예브게니 오네긴과 따찌야나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이 복잡한 국면에 접어드는 순간에 푸시킨은 작품을 끝내 버린다. 서술자의 입을 통해 "그러면 독자여, 나의 주인공이/ 매우 난처한 입장에 처한 이 시점에서/ 그를 떠나기로 하자"(266~267쪽)라고 하면서 남녀 주인공의 스토리-선을 끊고 독자인 우리와 따찌야나에게 이별을 고할 뿐이다. "인생의 소설을 다 읽지도 않고/ 별안간 책장을 덮을 수 있는 자는 행복하도다"(269쪽)라는 마지막 두 행으로, 독자들이 기대하지 않을 수 없는 내용을 말하지 않고 책장을 덮게 하고 있다. 이러한 종결 처리는 주인공의 형상화와 더불어 이 소설 고유의 특징을 강화해준다.

예브게니 오네긴은 어떠한 인물인가. 어려서부터 '질서의 적이자 방탕의 친구'로서 멋지게 차려 입고 젠체하며 기교를 구사하는 바람둥이였다가, 현재는 연애와 우정 모두에 싫증을 느끼는 '러시아식의 우울증'에 빠진 청년이다. 인간을 꿰뚫어 보고 대체로 인간을 경멸하여 극소수의 사람들과만 친교를 맺으며 신랄한 논법과 독설 섞인 농담, 음울한 경구를 던질 뿐인 '위험하기 짝이 없는 괴짜'다. 요는 사회적 평판이나 인정에는 신경 쓰지 않고 제멋대로 사는 인물이다.

오네긴과 친구가 된 서술자 또한 마찬가지다. 부질없는 명예는 안중에도 없이, 하는 일 없는 외진 그늘 속에서 무위를 규칙 삼아 달콤한 안일과 자유를 만끽하며 산다. 사람이란 할 일이 없어 친구가 되는 법이라 생각하는 상태에서 예브게니 오네긴을 알게 된 이후 그를 주인공으로 하여 소설을 쓰지만, 자기 작품으로 세인의 인정과 칭찬을 받거나 그것이 불후의 명성을 얻기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동시에 뻔히 예상되는 '왜곡된 해석과 소동과 비난'(50쪽) 또한 개의치 않는다.

오네긴이나 서술자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을 일은 아니지만, 상궤를 벗어나 있는 이들의 개성적인 태도가 그저 위악적인 제스처라고 할 것도 아니다. 작가의 분신이라 할 서술자의 경우가 더욱 그러한 이들의 행태는 우리들의 삶을 의식케 하는 거울이되 윤리나 도덕이라는 규범 자체를 벗어나서 그렇게 한다는 점에서 훨씬 근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작품이 자신의 진정성을 주장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고유성을 확보하는 것 또한 동일한 효과를 낳는다. '예브게니 오네긴'의 서술자가 작품을 하나의 완미한 전체로 만들지 않는 태도는 재현을 거부하는 모더니즘소설의 실험과도 달리 실제의 형상화와 애초부터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무엇에든 매이지 않는 삶을 지향하며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데 집착하지 않는 서술자의 태도와 합쳐지면서 '예브게니 오네긴'의 독특함을 강화한다.

집착과 욕망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이러한 자유로운 태도, 실제와 긴밀히 연관될 수밖에 없는 내용에서는 중도반단을 취한 채 구어체의 멋진 운율로 되었다는 형식상의 완결에 공을 쏟는 비실제적인 태도가 '예브게니 오네긴'의 개성·독창성을 이룬다. 현실의 논리로부터 벗어나 자신만의 자유를 취하는 삶, 이제는 불가능해진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아득한 것이 되어 버린 이러한 삶을 부각해둠으로써 '예브게니 오네긴'은 오늘의 우리에게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생활의 안정과 타인의 인정, 출세를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며 경쟁해야 하지만 삶으로부터 부단히 속임을 당하는 우리를 새삼 의식하게 하면서 말이다.

이러한 의식은 물론 괴롭지만, 괴로움을 동반하는 이 의식이 없다면 그러한 삶으로부터 영원히 빠져 나올 수 없을 것이다. 이 무지의 악무한을 끊고자 한다면 삶이 우리를 속인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삶이 우리를 속이는 순간마다 슬퍼하거나 노여워하는 것은 사실을 직시하는 것이 못 된다. 모든 것이 지나가며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을 만큼 현재의 기만적인 삶을 제대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눈을 갖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개성을 지키는 일일 텐데, 이 일을 '예브게니 오네긴'으로 시작한다면, 이 작품의 개성적인 면모가 작은 즐거움과 위안 또한 선사해 줄 것이다.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학부장·문명시민교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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