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의 스토리 오브 스토리 .35] 서구의 절망과 性- 미셸 우엘벡의 소설 세계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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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5-07   |  발행일 2020-05-07 제19면   |  수정 2020-05-07
포르노와도 성애소설과도 다른…性을 중심으로 한 문명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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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 이슬람 정권이 들어선다는 파격적인 설정으로 프랑스 언론을 달군 작품이 있다. 실재하는 프랑스 정치인들을 직접 거론하고 등장시키면서 이야기를 구성했기에 더욱 이슈가 되었다. 2015년에 출판된 미셸 우엘벡의 '복종' 이야기다. 이 소설을 이슈화한 것은 이슬람 세력의 잠재적인 위협이었지만, 여기서는 유럽 문명에 대한 비관적인 진단과 그것이 주로 성(性)에 대한 주목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현대 문명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절망과 성 문제에 대한 천착은 우엘벡의 두 번째 소설인 '소립자'(열린책들, 2003)에서부터 뚜렷했다. 주인공 미셸 제르진스키가 보기에 사회는 공간을 지배하려는 욕구인 경제적 경쟁과 생식을 통해 시간을 지배하려는 욕구인 성적인 경쟁 두 가지로 유지된다. 이 위에서 그는 서구 현대사회의 문제를 진단한다. 부유하면서도 경제의 흐름이 통제되는 사회민주주의에서는 경제적 경쟁이 존재할 이유가 없어지고, 섹스와 생식의 분리가 완전히 실현되는 사회에서는 성적인 경쟁이 사라지게 마련인데 실제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사회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유주의 경제가 지배적이고, 생식과 분리된 성이 자기 도취적인 차별화의 원리로 존속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두 가지 경쟁이 계속 이어지는 이러한 상황의 바탕에는, 근대 과학이 야기한 형이상학적 돌연변이 곧 개인주의의 증대라는 현상이 깔려 있다(174쪽 참조). 이 문제는 브뤼노의 성적 편력과 파멸이 보여 주듯 개인이 어찌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하고, 개인 차원의 쾌락 및 행복 추구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미셸이 인류를 다른 종으로 대체하는 일에 나서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절대적이다.

첫 소설 '투쟁 영역의 확장'부터
콩쿠르 수상 '지도와 영토'까지
성적 욕망·현대사회의 미래 천착

佛에 이슬람정권이 들어선다는
파격적 설정의 최근작 '복종'선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것 환기


현대 문명이 지속 가능하지 않고 그러한 문제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자체로 독립된 성적 욕망이라는 이러한 파격적인 주장은 미셸 우엘벡의 소설 세계 전반을 꿰뚫는다. 그의 첫 소설 '투쟁 영역의 확장'(열린책들, 2003)에서도 현대사회의 삶의 문제가 성과 관련된다. 이 작품은, 규칙에 따라 사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은 세상이 되었으며 그 속의 개인에게는 외로움이 절실한 문제가 된다는 진단 위에서 시작한다(16쪽). 이러한 문제가 두드러지게 확인되는 것이 성이다. 성 본능은 그 자체로 사회적 위계 질서의 체계가 되어(129쪽) 개인들을 경쟁 관계에 밀어 넣는데 그 속에서 성적 매력이 없는 자들은 냉정하게 외면되기 때문이다.

성적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고 나름대로 관계를 이어가는 경우도 이후 소설에서 보이듯 절망적이다. 서구와 동남아의 성 경제를 배경으로 하는 '플랫폼'(문학동네, 2002)에서는 미셸과 발레리의 애정이 이슬람 세력의 테러에 의해 중단된다. '어느 섬의 가능성'(열린책들, 2007)은 다니엘이 이자벨과 에스더와 각각 맺는 관계의 양상을 통해 몸의 노쇠와 안달 때문에 사랑이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인간의 삶에 대한 전망이 스토리 차원에서 비관적이라는 점에서 이 두 작품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플랫폼'은, 인간이란 일시적이고 덧없으며 잔인한 존재일 뿐이어서 즉시 누릴 수 있는 쾌락의 원천인 성적 기관이 주는 가벼운 보상이 없다면 삶 자체가 불가하리라는 비관적 전망(280쪽) 위에서, 원하는 것을 다 가졌지만 성적 만족만은 찾지 못하는 서양인들(319쪽)의 삶을 그려 보인다. '어느 섬의 가능성' 또한 비슷하다. 인류의 유일한 계획은 번식을 통해 종을 지속시키는 것인데 그것은 불행의 조건들을 영속화시키고 자신의 무덤을 파는 행위에 불과하다는 인식(264쪽) 위에서, 인류가 절멸하다시피 한 상황에서 통신으로만 연결되어 있는 복제인간인 신인류를 설정한 뒤, 고립을 넘어서게 할 사랑의 가능성에 대한 막연한 추구로 끝을 맺는 것이다.

이상 살핀 미셸 우엘벡의 소설 세계에는 이념이나 이데올로기가 없다. 역사의 법칙을 파악함으로써 바람직한 미래를 구현할 수 있다는 역사주의적인 신념도 없고, 사욕이 아니라 공동선을 앞세우는 이상적인 인간들이 만드는 유토피아적인 미래 사회의 가능성에 대한 일말의 기대도 없다. 사회 공동체의 이익을 위한 집단적 노력이 사라진 자리에 성을 통해 고독을 회피하려는 개인들만이 존재하고, 그들의 절망적인 성적 분투와는 거리를 둔 채 인류의 종말을 예견하고 준비하는 냉정한 이성의 소유자를 배치하는 것, 이것이 초기 우엘벡 소설 네 편의 기본 양상이다. 그만큼 현대사회의 미래에 대한 작가의 전망이 비관적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은 2010년에 발표되어 콩쿠르 상의 영예를 작가에게 안겨준 '지도와 영토'(문학동네, 2011)에도 일관된다. 무엇보다도, 올가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평생을 작품 창작에만 빠져 지내는 주인공 제드 마르탱의 삶 자체가 긍정적인 미래 전망을 불가능하게 한다. 주요 인물들이 보이는 바, 자본주의 이후 직업에 대한 명예심 즉 소명감이 사라져 버렸으며(264쪽) 이제는 예술가도 문화상품이 되어 버렸다는 인식(205쪽), 성이 더 이상 긍정적인 에너지도 화합을 증대시키는 결합의 원천도 아니며 모든 갈등과 대학살과 고통의 원천일 뿐이라는 생각(363쪽) 등 또한 인류에 대한 비관을 강화한다. 현재의 절망적인 상황과는 달랐던 과거에 대한 인식이 있어 앞의 작품들과 차이를 보이지만 그렇다고 미래 전망이 바뀌지는 않는다.

바로 이러한 흐름 위에 '복종'(문학동네, 2015)이 놓여 있다. 이 소설은 지속과 변화의 계기를 모두 갖는다. 현대사회에 대한 우엘벡의 절망적인 전망이 여기서는 이슬람에 의한 서유럽 문화의 종언으로 변형되었지만, 종언은 종언이라는 점이 공통된다. 물론 차이가 보다 중요한데, 종언이라 해도 서유럽 문화의 종언일 뿐 인류의 종말은 아니라는 사실이 의미를 갖는다. '복종'은 평균 서구인의 삶에 점철된 고통과 근심의 총체에 저항하는 것이 역부족이라 느끼며 자살을 생각하는 지식인 주인공(251쪽)을 제시하고, 유럽이 이미 자살을 감행했다는 진단(311쪽) 위에서, 새로운 세계가 이슬람에 의해 열리리라고 예견한다. 주인공이 교수직 복귀 제안을 수락하려는 마음을 가질 때 '부인의 수' 문제가 논의되는 방식으로(355쪽) 성의 문제 또한 해소된다. 이로써, 자연적인 위계질서에 의해 지배되는 이슬람 문화의 유입이야말로 유럽이 가족적, 도덕적으로 재무장하며 새로운 황금시대를 여는 역사적인 기회로 간주된다(336쪽).

종교적인 편견을 가급적 배제한다 해도 피하기 어려운 이러한 충격적인 결말은 미셸 우엘벡의 소설 세계 전체가 보여 온 특징을 더욱 도드라지게 한다. 서구 사회의 미래를 진단하는 데 있어 성의 문제 외에는 통로가 없다는 실로 절망적인 의식이 그것이다. 이것이 절망적인 이유는 정치와 경제, 문화 등 사회 전체를 가로지르는 거대담론이 서유럽 문화의 전통에서는 철저히 부정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 진단이 우리나라에도 적용될 것 같지는 않지만, 예방 차원에서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의미를 강조하고 싶다. 그의 성 탐구 또한 성 문화의 부정적인 확산이 가속되는 현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야를 온전히 넓히는 의의를 가질 수 있을 듯하다. 포르노와도 성애소설과도 다른 우엘벡 소설의 자리를 제대로 바라보는 한에서이긴 하지만 말이다.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학부장·문명시민교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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