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응상의 ‘천 개의 도시 천 개의 이야기’] 포르투갈 포르투(Porto)〈상〉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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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5-15   |  발행일 2020-05-15 제36면   |  수정 2020-05-15
골목 오가는 관광객만 청춘일뿐 세월 이고있는 도시 풍경과 그속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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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 거리 모습. 멀리 클레리고스 종탑이 보인다.
3박4일의 일정을 잡았다. 포르투갈 제2의 도시라고는 하지만 23만여 명의 인구를 가진 크지 않은 도시다.

포르투는 대서양으로 흘러드는 도루(Douro)강을 중심으로 북쪽의 구시가지와 남쪽의 신시가지로 나뉜다. 도루강 하구에 위치한 포르투는 오래전부터 항구도시로 번성했다. 이베리아반도가 로마에 정복되면서 지중해와 북유럽을 오가는 상업적인 항구 역할을 했던 것이다. 8세기 무렵부터 더욱 명성이 높아져 부와 사람이 모여드는 거대한 도시로 발전하였다. 세계 역사를 뒤바꾸어 놓은 대항해시대가 이 도시에서 시작된 것도 이러한 천혜의 항구도시였기 때문이었다.

대항해시대의 서막 천혜 항구 도시
나라이름도 '포르투'도시에서 시작
랜드마크 클레리고스 종탑과 성당
240계단 오르면 도루강 넘어 전망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렐루
해리포터 작가가 영감 받은곳 유명
높은 천장과 웅장한 벽화 상벤투역
도시 전체 수호하는 듯한 두개의 탑


대항해시대란 15세기 초 포르투갈 엔리케(Henrique) 왕자의 아프리카 항로 개척을 시작으로 15세기 말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을 거쳐 16세기에서 17세기 초에 이르는 유럽 각국의 항해 탐험 시기를 가리킨다. 엔리케 왕자의 아프리카 탐험대가 바로 포르투 항구에서 출발하면서 대항해시대의 서막을 열었고, 포르투는 이후 포르투갈의 식민지 개척 전초기지 역할을 하였다. 지금의 포르투 도시 모습은 대항해시대에 형성돼 거의 변화 없이 유지하고 있다. 도시 곳곳에 수백 년 전의 전통 문양과 양식을 간직한 건축물과 거리의 모습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대항해시대가 지나면서 유럽의 경제 중심지가 옮겨가 포르투의 발전도 정체되었다. 아이러니하지만 발전의 정체가 도시의 옛 모습을 고스란히 후대에 전해지게 만든 것이다.

이처럼 세계 역사를 바꿔놓았던 대항해시대는 이곳 포르투에서 시작되었고, 포르투갈이라는 나라 이름도 이 도시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1996년에는 '오포르투 역사지구(Historic Centre of Oporto)'라는 명칭으로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었고, 최근에는 소설 해리포터의 배경이 되었던 곳으로 알려지면서 포르투를 찾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첫 목적지는 도시 어디에서든 우뚝하게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클레리고스 종탑과 성당이었다. 종탑으로 가는 올드타운의 좁은 골목은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했다. 아줄레주(Azulejo) 양식으로 불리는 타일 벽이 여느 도시와는 다른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이끼 서린 깨진 타일과 삭고 있는 나무문은 개발을 비껴간 이 도시의 상징이었다. 작은 서점 안에 백발의 노신사가 돋보기 너머로 책을 보고 있고, 말쑥한 대머리 노인에게 성근 머리카락을 맡긴 채 졸고 있는 이발소 손님도 있었다. 이 골목을 오가는 관광객들만 청춘일 뿐 이 도시와 도시속의 사람들은 모두 세월을 고스란히 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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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으로 불리는 포르투 렐루서점 내부. 중앙의 나선형 계단이 특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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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의 노신사가 경영하는 골목의 작은 서점. 포르투 골목에는 서점들이 자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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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 대학 전경.
종탑이 가까워지자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광장에 큰 분수가 서 있는 포르투대학이었다. 분수 앞의 큰 건물 전체가 바로 대학 건물이었다. 이 건물을 중심으로 해리포터로 유명해진 렐루서점, 아줄레주 벽화가 인상적인 카르모성당도 있었다. 그리고 그 뒤편에 클레리고스 종탑이 우뚝 서 있었다. 개장 시간에 맞춰서 클레리고스성당과 종탑부터 방문하였다. 클레리고스성당은 포르투의 랜드마크다. 높은 종탑이 있어서 사방 어디에서든 보일 뿐 아니라 탑에서 내려다보이는 전망 때문에 특히 명성이 높다. 종탑의 높이는 75.6m이며 6층으로 되어 있다. 꼭대기까지 이어진 240계단을 오르면 도시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보상이 주어진다. 오전 9시 입장 시간에 맞춰서 도착하니 생각보다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덕분에 탑을 오르는 좁은 계단도 여유롭게 다닐 수 있었다. 층마다 달라지는 풍경 때문에 자꾸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리고 어느새 꼭대기에 도착했다. 창 안에 갇혔던 도시의 풍경이 갑자기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고개를 숙여야 보이는 렐루서점과 카르모성당은 멀리 대성당과 도루강까지 거칠 것 없이 시야가 뻗어 나갔다.

종탑을 내려와 성당을 잠시 둘러본 뒤 위에서 내려다보았던 카르모성당을 찾았다. 성당 외벽의 아줄레주 벽화는 흰색 타일에 청색으로 그림을 입힌 것이 우리의 청화백자를 닮았다. 유럽의 다른 성당과는 확연히 다른 외관이었다.

렐루서점은 돈을 내고도 한참 줄을 서야 입장하는 곳으로 악명 높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이라는 수식어에다 해리포터의 저자 조엔 롤링이 이곳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소문이 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 오는 날씨 때문인지 줄을 선 인파는 보이지 않았다. 서점 내부도 비교적 조용했다. 내부에 들어서니 카펫이 깔린 나선형 계단이 단박에 눈길을 사로잡았다. 건물 중앙에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다. 책으로 둘러싸인 크지 않은 공간이 묘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무엇인가 모를 사색의 끈들이 얽혀 있는 것처럼 읽을 수도 없는 포르투갈어 책을 자꾸 꺼내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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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차역'으로 불리는 포르투 상벤투역 내부. 포르투갈의 역사를 담은 아줄레주 벽화가 인상적이다.
다음날은 상벤투 기차역과 대성당을 찾았다. 상벤투역은 19세기의 기차역 건축물로 포르투 올드타운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차역'이라는 명성을 가진 이 역은 원래 16세기에 건축된 베네딕트회 수도원이었다. 1888년에 수도원을 철거하고 기차역을 세웠다. 기차역 내부의 높은 천장과 화려하고 웅장한 아줄레주 벽화가 사람을 압도했다.

비 내리는 역 밖의 날씨는 조금 쌀쌀했지만 고풍스러운 거리는 오히려 비 오는 날씨와 어울리며 아늑하게 느껴졌다. 역 근처에는 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맥도날드'라 불리는 맥도날드 임페리얼점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이라는 수식어가 벌써 세 번째다. 가게 입구에는 날개를 펼친 근사한 독수리 조각상이 그 수식어가 엉터리가 아니라는 듯 거만하게 붙어 있었다. 손님들이 가득 찬 내부는 여느 곳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벽면의 화려한 전통 문양은 꽤 인상적이었다.

다시 상벤투역과 구시가 지역을 지나 언덕을 오르니 포르투대성당이 나타났다. 이곳의 정식명칭은 클라라성당이지만, 포르투에서 가장 큰 성당이기 때문에 대성당이라고 부른다. 12세기 초에 건설되어 포르투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기도 하다. 대성당의 정면은 마치 요새처럼 튼튼해 보인다. 입구 앞 엔리케 왕자의 청동 기마상은 곧추세운 창만큼이나 기세등등하게 느껴졌다. 우뚝 솟은 두 개의 탑은 언덕 위에서 도시 전체를 수호하는 듯하며, 곳곳에 있는 성인(聖人)상들과 전통 문양들은 과거의 화려했던 역사를 보여주는 듯했다. 엄숙함이 깃든 바로크 양식의 내부에 들어서니, 저절로 숙연해졌다.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형형색색의 스테인드글라스와 오래된 촛대들, 그리고 그사이에서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숙연함이었다.

대성당 밖으로 나오니, 어느새 비는 그쳤다. 도루강을 목표로 성당 아래 굽이진 골목길로 들어섰다. 성당에서 내려다봤던 붉은 지붕들 아래의 속살들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작은 빵집에서 나오는 구수한 향기에 홀리기도 하고, 뜬금없이 골목을 가득 메운 꽃들의 향연에 황홀해지기도 했다. 다시 골목을 돌면 형형색색의 아줄레주 타일이 어우러진 그림 같은 집들에 눈이 아찔해지기도 하고, 물끄러미 이방인을 응시하는 창틀의 고양이와 눈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이 도시의 골목은 이처럼 한시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다.
대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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