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천천히, 이 길 앞에 서서

  • 박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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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5-18   |  발행일 2020-05-18 제14면   |  수정 2020-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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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숙 〈대구 새론중 교장〉

코로나 사태 이후, 별달리 한 일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쉽게 지쳤다. 그래서 퇴근 직전에 시 한 편씩 읽기로 했다. 그러나 작정하고 앉아 시를 읽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시를 읽기 전 마음을 가다듬고 긴 숨을 내쉰다. 천천히 시를 읽으면서 음미해 본다. 그리고 시를 덮고 마음의 흐름을 지켜보는 시간, 압축되고 비약된 시의 여백 사이를 내 것으로 만들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참 좋다. 그 거리감에서 스스로 위로를 받는다.

등교수업이 연기되면서 모든 교육활동 계획이 여러 번 수정되었다. 교생실습 기간이 연기되면서, 1학년에 배정된 담임실습을 등교수업이 결정된 3학년으로 옮기자 갈등이 빚어졌다. 짧은 기간이지만 조금이라도 실습을 제대로 하고 싶은 업무 담당자와 아직 담임 맡은 학생들을 교실에서 마주 보지도 못했는데 교생과 함께 생활지도를 하는 게 마땅치 않다는 입장이 나왔다.

한편 학생들 없는 스승의날 행사를 모색하다가 도시농부 사업으로 학교 텃밭에 가득한, 붉고 푸른 꽃상추를 나눠 점심을 먹자는 의견이 나왔다. 인사이동 이후 일체의 환영행사도 갖지 못했고 마스크를 쓰고 최대한 접촉을 줄이고 각자 공간에서 온라인 수업에 매달리다 보니 아직도 서로를 잘 알지 못한다.

관련 부서는 미리 조율을 하고 기획했지만 "이 시기에 굳이…" 우려를 표명하는 선생님이 있었다. 개별 도시락에, 스승의날 사연 당첨자 열 분에게 꽃상추 1봉 선물행사로 축소했다. 사실 지금까지는 협의된 사안에 대해 추진하되 염려하는 측면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으면 협조가 잘 이루어졌다. 그러나 코로나 때문에 결정사항이 자주 바뀌고 있다.

이런 시기에 한 인적자원연구센터에서 '학교장의 의사결정과정 및 경영 사례 개발'이라는 연구를 위한 협조를 요청해 왔다. 3년 전 치른 학교장 역량평가 방식과 비슷했지만, 다른 점은 연구원 두 사람이 문제를 받아드는 순간부터 내 모습을 촬영한 것이었다. 그런 다음 내가 보인 태도와 견해에 대해 부가적인 인터뷰를 하는 방식으로 두 시간 정도 진행되었다.

가장 특이한 것은 내 의식의 흐름을 계속 말로 표현하라는 점이었다. 나의 언어적, 비언어적 요소를 살피고 어떤 점에서 강하게 이야기하는지, 어느 지점에서 머뭇거리는지, 어떤 어휘를 즐겨 사용하는지를 파악하는 듯했다.

마치고 나니 한꺼번에 에너지가 빠져나간 듯했다. 촬영을 끝내고 비공식적으로 직관적인 피드백을 요구했더니 '나를 따르라는 리더십'이 아닌 '조율과 조정의 리더십'인데 아쉬울 때가 없느냐고 했다. 사실 이러한 점은 학교장으로서 늘 아프게 성찰해온 측면이었다. 개인적 요구가 강해지고 복지가 좋아지면서 학교경영에 어려움이 늘어났다. 우리나라와 같은 교사선발시스템에서 교사는 뛰어난 인재이다. 그러함에도 교사가 된 이후, 아직 생애주기에 맞는 바람직한 교사로서의 삶, 창의적 교수를 위한 지원은 부족한 실정이다. 누구나 주요 업무부장도 거치고, 공동체 내에서 어떻게 협력하며 교사로서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를 일깨우는 평생교육차원의 투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넉 달째 계속되는 코로나 사태는 의사결정 과정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휘두른다. 그러나 별다른 도리가 없다. 지금은 그런 때이다. '…시간이 많지 않은 걸 우리는 잘 알아요./ 그래요, 우리 멀리 떨어져 살면서도/ 오래 헤어져 살면서도/ 스스로 행복해지기로 해요./ 그게 오늘의 약속이에요.'
김희숙 〈대구 새론중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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