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소소한 패션 히스토리] 팬츠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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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5-22   |  발행일 2020-05-22 제37면   |  수정 2020-05-22
재택근무·화상회의…스타일리시한 편안함 '컴포트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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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포트 패션을 보여주는 시크한 느낌의 자라의 2020 S/S 트렌드 팬츠. (출처: wgsn.com)

집에서 일하는 것이 새로운 표준이 될 것이라는 예상 속에 의류 부문에서도 '컴포트웨어'(Comfort Wear)가 패션 시장에서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컴포트웨어가 주목받는 이유로 생활 방식의 다양한 변화를 꼽지 않을 수 없다. 건강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관심에서부터 업무, 학교, 활동 공간을 모두 겸하는 '집'의 역할은 이 새로운 변화를 이끄는 큰 축이 되고 있다. 하지만 컴포트웨어는 단순한 캐주얼웨어의 진화가 아니라 새로운 소재 혁신과 실루엣을 통해 더 높은 수준의 스타일리시한 감각으로 발전하고 있다. 컴포트웨어는 집안에서 혹은 가까운 곳에 편하게 외출할 때 입을 수 있는 근거리 외출용 라운지웨어(Lounge Wear)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았으나 포멀함을 유지하면서도 편안한 착용감과 스타일까지 고려한 디자인으로 새로운 볼륨을 차지할 만큼 성장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재택근무의 증가가 일반적인 오피스웨어 품목에 영향을 미치며, 화상회의나 휴식, 아니면 집 근처 볼일을 보러 나갈 때에도 무난하게 소화할 수 있을 만큼 활용도가 뛰어난 컴포트웨어 품목은 세계 각지에서 자가격리가 해제되고 직장에 복귀하기 시작하면 더욱 중요하게 부각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근대화 이후 빠르게 변화하는 산업사회를 이끌어 온 현대인은 지친 일상으로부터의 해방을 갈구했고, 이러한 갈구는 패션 트렌드에서도 규범과 격식을 타파한 편안함과 안락함의 추구로 이어져 왔다. 유례없는 전염병의 확산을 통해 가속화되고 있는 '컴포트' 패션의 성장은 현대 패션사에 있어서 커다란 변곡점으로 기록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나간 패션의 역사에서 이러한 변곡점이 되는 사건을 찾아본다면 그것은 아마 여성의 바지, 즉 '팬츠'(Pants) 착용일 것이다.

팬츠란 허리에서 시작해 힙과 양쪽 다리를 포함한 하반신의 옷을 말하는 것으로 영어로는 트라우저즈(Trousers)·슬랙스(Slacks), 불어로는 판탈롱(Pantalo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전염병 확산, 새로운 환경 의상 부각
감각적 이면서 포멀함·활동성 가미

패션역사의 변곡점 '팬츠'
17C 드레스 속 짧게 입은 '드로어즈'
길이 긴 판탈롱, 외설적 인식되기도
내의→외의 발전…여성복 간소화 과정
전통적 생활 방식 탈피, 대담한 시도

여성 최초 기능 의복 '블루머코스튬'
화려한 컬러 거부감…저변확대 실패
산업화 따른 활동성 팬츠 서서히 수용



서구 여성복식은 드레스를 중심으로 한 원피스 개념이었다. 17세기 중엽부터 프랑스 여성들 사이에서 '꺌송'이라는 짧은 드로어즈(Drawers)를 드레스 속에 입기 시작했으나 화류계 여성들 사이에서 이용되었을 뿐 일반화되지 못했다. 그 후 19세기 초 영국에서 모사나 견사를 이용한 드로어즈를 생산하게 되면서 사이즈나 형태가 자유롭게 나타났고, 기술 발달과 함께 1830년대 말에 이르러 드로어즈 착용이 일반화되었는데, 이는 여성의 팬츠 착용에 실마리를 제공했다.

길이가 긴 드로어즈 형태의 '판탈롱'은 기능성 팬츠로 영국에서 학생의 훈련 시 활동성을 더하기 위해 착용되기도 했다. 프랑스에도 이런 기능성이 부여된 판탈롱이 나폴레옹시대 젊은 여성들에 의해 도입되었으나 여성의 팬츠 착용이 외설적으로 인식돼 도덕적 비판의 대상이 됐다. 1830년경 내의로서 일반화됨에 따라 판탈롱은 점차 스커트 밑에서 주름장식이나 레이스로 장식된 통 넓은 팬츠 형태를 갖춘 외의로서 등장하게 됐다. 1850년대 이후에는 발을 덮는 레이스 장식을 한 리넨으로 된 판탈롱을 착용하게 되었는데, 이는 상류사회 여성들의 신분표시의 수단이 되기도 했다. 판탈롱은 여성에게 팬츠 착용의 계기를 마련했고, 판탈롱이 내의에서 외의로 발전한 것은 여성복이 기능화·간소화되는 데 중요한 과도기적 역할을 했다.

드로어즈가 내의로서 착용되고, 판탈롱이 외의로 변화할 때 프랑스에서는 1840년 '리오네'(Lionnes)라고 불리어진 용감한 여성들이 등장했다. 리오네란 당시의 기록에 의하면 '부유하고 미모의 요염한 부인, 즉 남자처럼 총을 쏠 줄 알며 말도 잘 타고 담배를 피우며 샴페인을 물같이 마시는 여성에 대한 칭호'로서 이것은 하나의 스타일로 인식되어졌다. 이런 몇몇 여성들의 대담한 시도는 전통적인 생활방식에서 탈피하고자 한 의지 표출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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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1년 여성 해방운동가 아멜리아 블루머 여사의 블루머 코스튬(위). (출처: https://han.gl/HzSL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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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츠를 착용하고 자전거를 타고 있는 19세기 여성들. (출처: https://han.gl/elbHo)

한편 미국의 아멜리아 블루머(Amelia Jenks Bloomer, 1818~1994)는 여성 해방운동의 일환으로 당시 유행하고 있던 최신 로코코 스타일에 과감하게 도전해 1851년 블루머 코스튬(Bloomer Costume)을 발표하며 여성의 사회적 지위향상과 건강하고 실용적인 생활을 추구하는 복식개혁을 주장했다. 코르셋(Corset)과 페티코트(Petticoat)를 착용하던 당시 여성 의상은 호흡이 곤란하고 여성의 내부기관과 척추에 장애를 일으키는 등 여러 가지 건강상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었다. 이것에 반해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고 남녀평등을 믿는 여성해방 주창자들은 남성의 소유물로 비유되는 여성상으로부터 탈피함과 더불어 편리함과 건강에 도움을 주는 새로운 스타일의 의상을 위한 개혁운동을 펼쳤다.

블루머 코스튬은 높은 목선과 긴 소매로 된 무릎 길이 정도의 실크 드레스와 밑은 주름장식이나 끈이 달린 터키풍의 배기 트라우저즈로 만들어졌는데, 이 팬츠는 드레스와 같은 소재로 만들어졌으며 1851년 영국 런던만국박람회(Great Exhibition)에 선보여 굉장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블루머 코스튬은 패션의 역사에서 볼 때 여성 최초의 기능적인 의복으로 간주되었으나 여성 해방운동의 일부로 간주돼 심한 반대가 일어난 점과 전파방식이 일반적인 유행 전파방식인 하향전파 방식이 아닌 상향전파 방식을 꾀했다는 점, 화려한 컬러가 근엄한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일으켰다는 점 등 복합적인 이유로 인해 대중화와 저변 확대에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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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여성 패션에서 팬츠가 수용되는 과정에는 오랜 기간 헤아릴 수 없는 어려움과 장애가 있었다. 그러나 18세기 이후 시민혁명을 통한 민주의식 발달과 산업혁명이 가져온 산업의 근대화는 여성의 권리 신장을 가져왔고, 스포츠의 대중화와 여성들의 사회 참여가 활발해지기 시작함에 따라 여성의 복장에도 사회적·의식적 요구에 의해 팬츠가 서서히 수용되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현대의 팬츠 형태로 정착하게 되었던 것이다.

여성에 대한 차별과 관습적인 금기, 그리고 신체에 대한 물리적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했던 여성의 '팬츠' 착용의 역사처럼 현대인도 요즘 새로운 환경에 적합한 트렌디한 컴포트웨어 착용을 통해 신체적·정신적 해방을 꿈꾸고 있다.

계명대 패션디자인과 교수

▨ 참고자료

△ 컴포트 라운지웨어: S/S 20 디자인 캡슐wgsn.com △복식사에 나타난 여성팬츠의 유형 변화와 의미에 관한 연구. (이재영 학위논문, 2007년) △바지패션에 관한 고찰. (김미정 학위논문, 1987년) △레저 승마복 디자인의 특성 연구. (박희진 학위논문, 2017년) △wgsn.com △google.com △ pinterest.com △네이버지식백과Muslin Dise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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