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을갤러리서 개인전 여는 홍명섭 작가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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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6-23   |  발행일 2020-06-23 제20면   |  수정 2020-06-23
"길 없는 길로 사람 인도하는 내 작업은 진짜 사유 찾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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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섭 작가의 설치작업 레벨캐스팅(Level casting). 레벨캐스팅은 전시장 바닥에 500개의 리놀륨판과 스테인리스 스틸 막대로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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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갤러리 제2 전시장. 전시장 바닥을 가로 5m, 세로 5m의 대형 검정 고무판이 덮고 있다. 500개의 조각난 리놀륨판과 스테인리스 스틸 막대가 만들어낸 원고지 모양의 거대한 바닥이다. 작가 홍명섭〈사진〉은 이 작품을 '레벨 캐스팅(Level casting)'이라고 명명하고 부제를 '바닥이 되다(Becoming a floor)'라고 붙였다. 관객은 그의 작품을 자연스럽게 발로 밟으며 작품을 감상하게 된다. 그리고 전시가 끝나면 고무판은 해체된다. 해체된 원고지 조각들은 훗날 어디선가 다시 조립해 설치될 것이다.

"이동하고 조립하고 해체하는 것을 반복하지만 이는 같은 반복이 아니라 장소의 차이에 따른 '차이로서의 반복'이다. 같으면서도 같지 않은 반복, 이 같은 '자리 이동'이 바로 나의 작업에서 설치 개념의 실천이다."

보통 조각이라 함은 3차원의 공간 속에 구체적인 물질로 구현된 입체로, 강하고 견고한 부피를 보여주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3차원적 조각은 '반드시' 그림자를 가진다. 그런 점에서 전시장 바닥에 1㎝도 되지 않는 리놀륨판들과 스테인리스 스틸 막대들로 설치된 홍씨의 '레벨 캐스팅'은 '조각(sculpture)'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두께나 높이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 홍씨의 '레벨 캐스팅'은 입체 조각에 대한 고정 관념을 무시한다. 그의 작업을 '그림자 없는 조각(Shadowless)'으로 부르는 이유다.


이동·조립·해체의 반복작업 "자리이동은 설치 개념의 실천"
입체조각에 대한 고정관념 탈피…내달 9일까지 신작 8점 전시


"좌대 위 높은 곳에 떠받치는 기념비적인 조각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는 내 작품이 바닥에 가라앉기를 바랐다. 물이 흐르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수평에의 의지를 가졌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물의 속성은 수평과 같은 고요함을 찾아서 흐르게 되어 있다. 나 또한 작업을 통해서 나의 예술적 번민과 욕구를 가라앉히는 수평적 평온을 찾고자 한다."

고정된 가치와 개념을 거부하며 독자적인 예술의 영역을 구축해온 홍명섭의 개인전 '토폴로지컬 레벨(topological level)'이 을갤러리에서 7월9일까지 열리고 있다. 토폴로지컬이란 위상수학, 즉 공간배치라는 의미로 어떤 사물이 다른 사물과의 관계 속에서 가지는 위치나 상태를 뜻한다.

1980년 중반 이후 계속되어 온 원고지 작업은 이번 전시에서도 이어진다. '그라운드 캐스팅(ground casting)'이라는 제목의 평면작업은 엠디에프(M.D.F)와 스테인리스 스틸판에 레이저 광선으로 그을린 400자 원고지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작가는 원고지 가운데 부분을 레이저로 원모양으로 절단해 비스듬히 기울여 놓았다. 일정한 규격을 가진 수평면들로 이루어진 원고지 중앙을 들여다보면 일종의 착시현상이 일어난다.

"말하자면 나의 작업은 조각이라 부를 수 없는 조각, 표현을 하고자 하는 것이 전제되지 않은 그림이다. 어렵고 난해하고 예쁘지 않을 것이다. 나의 예술 작업의 의미는 위안과 만족, 쾌감보다는 불편함에 가깝다. 길 없는 길로 사람을 인도하는 것이다. 그 새로움이 당혹스럽고 다소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그때 우리는 다른 생각을 한다. 그 생각이 진짜 사유다."

이번 전시에서는 평면과 조각, 대형 설치작업 등 신작 8점을 선보인다. 8점 모두 2019년과 2020년에 작업된 신작이다.

이은경기자 le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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