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희의 그림 에세이] 이계호 '포도도(葡萄圖)'

  • 유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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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7-03   |  발행일 2020-07-03 제37면   |  수정 2020-07-03
여름을 숙성시키는 먹빛 포도송이의 랩(rap)

그림에세이
이계호 '포도도', 비단에 먹, 각 121.5×36.4cm, 17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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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희 (화가)

포도가 익어가는 7월이다. 천을산 골짜기마다 달짝지근한 포도 향기가 밴다. 향 좋은 포도주를 마신 것처럼 가슴이 발그레해진다. 포도색이 짙어지면 여름도 무르익는다. 태양을 이고 있는 포도 넝쿨에 드리워진 그늘이 엄마의 품처럼 아늑하다. 옷자락에 스미는 포도 향기를 음미하며, 휴휴당(休休堂) 이계호(李繼祜, 1574~1645 이후)의 작품 '포도도'(葡萄圖)를 생각한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포도 송이가 8폭 병풍에 주렁주렁 매달린 역동적인 작품이다.

지금은 여러 품종의 포도가 재배되고 있지만 조선시대 포도는 자색의 적포도와 백색의 청포도가 있었다. 맛있고 탐스러운 포도는 예술가에게 유별난 맛을 선사하며 시와 그림의 소재로 사랑받았다. 포도를 화제로 한 시는 고려 말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문인들이 즐겼다. 이색(李穡, 1328~1396)은 자신의 저서 '목은시고'(牧隱詩藁)의 한 시에서 "두어 송이 주렁주렁 수정이 매달리어/ 살갗은 투명하고 씨 또한 분명하여라/ 누가 만곡의 시고 단 맛을 저장했느뇨/ 입속에 아름다운 진액이 청신하구나"라며, 청포도를 수정으로 비유했다.

조선시대 포도는 제상에 올리는 제수로도 대접받았고, 무성한 포도 넝쿨과 까만 포도송이가 성스러워 용에 비유되기도 했다.

포도는 길게 뻗어 나가는 넝쿨과 탐스러운 포도송이에서 자손만대가 번창하는 '다산'을 상징한다. 길상의 의미가 있어서 민화(民畵)의 소재로도 각광받았다.

조선 중기 포도의 대가 이계호는 호가 휴휴당·휴당(休堂)·휴옹(休翁)이고, 서호(西湖) 홍식(洪湜)에게 그림을 배웠다고 한다. 그에 관한 기록이 없어 아쉽지만 작품으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포도를 소재로 한 작품은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이 있으며, 황집중(黃執中, 1533~1593 이후)이 본격적으로 널리 알렸다. 포도 작품의 진수를 보여준 이계호는 포도 전체의 모습을 한 화면에 그리며 파격적인 구도를 창안하였다.

이계호의 '포도도'는 8폭 병풍에 그린 '연폭병풍(連幅屛風)'이라는 새로운 형식을 남긴다. 포도송이가 바람에 휘날리듯 향기가 넘실거리는 것 같다. 굽이쳐 내리는 자태가 동적이다. 래퍼(rapper)가 랩(rap)을 하듯이 그림의 리듬을 맞췄다. 담묵의 이파리와 검은 포도송이가 대비를 이루며 꽃처럼 달려 있다. 포도 넝쿨이 수많은 이파리 사이로 까만 눈망울을 내밀었다. 햇가지와 묵은 가지가 교차하면서 연출하는 원근법은 화면의 공간을 깊게 한다. 농담의 대비로 '포도도'는 묵죽(墨竹)이나 묵매(墨梅)와 같이 강직한 문기(文氣)를 띤다. 오묘한 먹의 맛과 기운찬 필선으로 포도의 생기를 맛있게 포착했다.

멀리서 보면 모두가 비슷하다. 그러나 가까이 들여다보면 잘생긴 것과 못생긴 것이 어우러져 더 빛이 난다. 이계호는 멋진 포도만 표현한 것이 아니라 탐스러운 포도송이와 병든 알맹이를 조화롭게 그렸다. 그래서 더 사실적이다. 벌레 먹은 이파리와 시들고 상처 난 이파리도 외면하지 않았다. 어느 하나 허투루 넘기지 않고 포도의 생애를 오롯이 담았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다. 아픔과 슬픔, 기쁨이 모여 보다 온전한 삶이 된다. 포도송이에서 인생의 법문(法問)을 읽는다.

천을산 입구에 그 많았던 포도가 이제는 몇 곳만 남기고 사라졌다. 주인이 바뀌어서였을까, 아니면 고령이어서였을까. 대부분 채소를 키우는 텃밭으로 변했다. 풍경은 달라졌지만 천을산 '고산 포도'의 명성은 여전하다. 포도 향 가득한 먹빛 '포도도'에, 천을산은 한 폭의 작품이 된다.

화가 2572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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