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체육계 폭력은 왜 반복되는가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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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7-11   |  발행일 2020-07-11 제23면   |  수정 20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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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옥 계명대 공공인재학부 정치외교학전공 교수

"한 달에 열흘 이상 폭행당했다" "숨 못 쉴 만큼 주먹질했다" "폭언과 욕은 일상이었다". 조직폭력배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경주시청 철인3종경기팀 선수들의 폭로내용이다. 최숙현 선수의 죽음은 참 비극적이다.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했고 폭력과 욕설 속에서 짧은 인생을 마감했다. 사회적 죽음인 것이다.

체육계 폭력은 왜 반복되는가. 최 선수 이전에도 수많은 '최숙현'이 있었다. 이대로 방치하면 미래에도 또 다른 최숙현이 있을 것이다. 폭력의 반복적 발생은 이미 이런 행태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구조적이라는 것을 방증한다. 선수들을 보호하고 도움을 줘야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낮은 인권 감수성은 폭력사태 예방은 물론 조속한 처리에도 무능하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최 선수 측은 지난 2월에 이미 경주시청에 진상조사를 요구했고, 대한철인3종협회도 사실을 인지했지만 응답하지 않았다. 이에 최 선수 측은 검찰에 고소도 했고 체육회인권센터와 국가인권센터에도 진정서를 냈지만 별반 다르지 않았다. 특히 체육회는 선수 보호에 가장 큰 책임을 진 단체이지만 책임회피에 급급해왔다. 결국 체육회와 제도권의 도움이 불가능하다는 절망에 극단적 선택만이 이 폭력행위를 단절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 비극에는 체육정책의 특수성도 함께 작용하고 있다. 한국체육은 엘리트체육정책 기조 속에서 전개되어 왔다. 선수들을 어릴 때부터 선발하고 관리해 국제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게 하고 그것을 정권의 홍보수단으로 이용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금메달 몇 개 따느냐가 체육의 모든 것을 좌우했다. 이런 엘리트체육 정책 기조는 '선수 관리'를 강조하게 되고 강도 높은 훈련을 넘어 구타와 체벌로 이어지는 폭력적 행태가 관습적으로 묵인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이런 행태가 지금까지도 '좋은 성적'이라는 미명 아래 체육계에 남아있다. 결국 체육의 본질인 신체적·정신적 건강 향상이라는 가치는 설 자리가 없었다.

체육계 폭력이 근절되지 않는 또 다른 원인은 선수 및 선수 가족의 수동적 태도도 한몫한다. 선수가 될 기회는 체육단체와 개별 팀들이 결정한다. 엘리트 운동선수가 되려는 사람들은 많은데 선수 인원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선수 선발 과정부터 팀과 선수의 '갑'과 '을'의 구조적 관계는 시작된다. 이 관계는 주전선수와 후보선수로 구분하는 과정에서 더 커진다. 팀은 승리를 위해 '좋은' 선수를 선발하고 주전으로 내세워야 하기 때문에 이런 관계 자체를 바꾸기 어렵다. 문제는 선발 및 훈련과정에서 체육단체와 팀에 의해 자행되는 소위 '갑질'과 폭력에 대해 선수와 선수 가족들이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대신 과도한 인내심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최숙현 선수 사건에서도 감독과 팀닥터의 폭행은 이미 2017년부터 시작되었고 심지어 감독은 최 선수의 어머니에게도 "딸의 뺨을 때리라"고 해 그대로 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팀닥터에게 매달 100만원을 낼 것을 강요받아 치료비 명목으로 입금했다고 한다.

이제는 이 '좀비' 같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체육계 폭력을 마감해야 할 때다. 체육단체들과 정부기관의 인권 감수성을 극대화하는 강력한 제도가 필요하다. 더 나아가 선수들과 가족의 '약자들의 연대'가 절실하다. 폭력과 갑질이 나만 피해갈 수 있다는 요행을 기대하는 대신 협력과 연대로 폭력이라는 사회악에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김관옥 계명대 공공인재학부 정치외교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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