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완 칼럼] 知音과 민심 읽기

  • 박규완
  • |
  • 입력 2020-07-16   |  발행일 2020-07-16 제26면   |  수정 2020-07-16
문재인정부 여론 誤讀 많아
탈원전 반대해도 모른 척
대북정책은 비핵화 뒷전
통합신공항 대구 意中 외면
위정자 청음 능력 제고해야

2020071501000612000026071
논설위원

어릴 적 누구나 그랬듯 주택에 살았다. 아파트가 없던 시절이었으니까. 어둠이 내려앉으면 대문 밖 골목엔 정적이 함께 드리워졌다. 간간이 발걸음 소리가 배경음악처럼 깔렸다. 식구마다 소리는 달랐다. 때론 음전했고 때론 괄괄했다. 발걸음 소리만으로 누군지 아는 것, 지음(知音)이다.

지음은 음악의 곡조나 소리를 알아듣는다는 뜻이지만, 마음이 서로 통하는 절친을 비유적으로 이르기도 한다. 춘추전국시대 초나라 거문고 명인 백아가 자기의 거문고 실력을 인정해주는 벗 종자기가 죽자 거문고 소리를 이해하는 사람이 더는 없다고 생각해 거문고 줄을 끊었다는 데서 유래한다. 열자(列子) 탕문편에 나오는 고사(故事)다. 아마 종자기는 지음의 대가였으리라.

영어의 듣기가 중요하듯 음악 전공자에겐 청음(聽音) 능력이 필수다. 교과과정에도 청음이 포함된다. 하지만 문재인정부는 '민중의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하는 모양이다. 예컨대 탈원전 정책은 국민 열 명 중 일곱 명이 반대하는 데도 애써 모른 척한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어쩌다 정규직' 사태도 마찬가지다. 보안검색요원의 정규직 전환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의 후속 조치로 실행된 것이다. 짜맞추기에 급급하다 보니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이란 본질이 훼손됐다. 청년들이 분노하는 건 당연하다. 대통령의 '비정규직 제로' 선언은 퍼포먼스론 그지없는 장면이다. 이벤트 정치에 애꿎은 취준생들만 머쓱해졌다.

대북정책은 어떤가. 이제 국민 90%가 북한의 비핵화를 믿지 않는다. 하지만 문 정부의 대북유화 기조는 한 치의 변함이 없다. 그 짝사랑이 눈물겨울 정도다. 평화 지향이라는 대명(大命)에 시비 걸 사람은 없다. 다만 북핵을 방치한 평화는 구차스럽고 난삽하다. 정부는 비핵화 촉구엔 뒷전인 채 그저 대화를 못 해 안달이다.

플라톤은 다수결에 의한 직접민주주의를 '폭민정치'라 비판했고,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수 빈민의 정치'로 규정했다. 소피스트의 미혹과 말장난 또는 군중심리에 부화뇌동해 다수의 민중이 현명하지 못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봤다. 중우(衆愚)정치란 말이 생겨난 배경이다. 그러나 중우정치는 구시대 유물일 뿐이다. 다수 여론을 수용해 민심에 다가가는 게 현자(賢者)의 정치다.

정치가 생물이듯 민심도 생물이다. 변화무쌍하며 반어법까지 구사한다. 위정자의 민심 해독 능력이 중요한 이유다. 한데 문재인정부는 청음도 지음도 다 젬병이다. 민심은 '도'라고 하는데 '미'로 착각한다. 이러니 한 달이 멀다하고 내놓는 부동산 대책에도 집값이 잡히지 않고, 그 많은 예산을 쏟아붓고도 일자리는 쪼그라드는 것 아닌가.

현대 언어의 아버지 노암 촘스키 MIT 교수는 개인 인권을 침해한다며 한국의 코로나19 방역 시스템을 비판했다. 하지만 우리 여론은 전혀 다르다. QR코드를 이용한 감염경로 추적에도 70.3%가 찬성했다. 사생활 침해라는 국민은 16.5%에 불과하다. K방역의 성공은 한편으론 시민의 승리다. 말인즉슨 지음을 잘했다는 의미다. 민심을 거스른 정책은 대개 실패했다. 대구경북통합신공항 부지 선정 딜레마도 대구시민의 여론을 외면한 결과다. 지음 능력을 제고해야 민심의 행간을 정확히 읽을 수 있다. 지음은 정부와 지자체의 빼놓을 수 없는 덕목이다.
논설위원

오피니언인기뉴스

우호성의 사주 사랑(舍廊)

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