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혐의 피고인들 국민참여재판 선호...무죄율 상대적으로 높아

  • 서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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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7-22 18:10  |  수정 2020-07-22 18:40  |  발행일 2020-07-23 제6면
법원의 신뢰도 높이기 위해 만들어진 국민참여재판이지만
성 관련 사건 피해자 의사 반해 진행될 수 있다는 점도 우려

성범죄 혐의를 받는 피고인들이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입증이 어려운 사건 특성을 감안해 배심원들로부터 무죄 평결을 얻어내려는 의도가 깔려있다는 분석이다.

22일 미성년자 제자를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전 국가대표 유도선수 왕기춘(32)씨가 신청한 국민참여재판의 진행 여부 결정을 두고 공판준비기일이 열렸다. 대구지법 제12형사부(부장판사 이진관)는 이날 국민참여재판 진행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방침이었지만, 검사와 변호인의 입장이 엇갈려 속행 추정키로 했다.

검사 측은 "피해자들이 국민참여재판을 원하지 않고 있다. 또 피해자 중 한 명은 여전히 미성년자로 피해 진술을 하는 게 성적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으며, 더욱이 피해자들이 피해사실을 지역민으로 구성된 배심원단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2차 가해"라는 의견을 나타냈다.

반면 왕기춘의 변호인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할 것을 재차 요청하며 "반대 신문을 위한 증인으로 피해자를 불러줄 것을 원한다"고 했다.

앞서 지난 21일 대구지법에서는 7명의 배심원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참여재판이 이뤄졌다. A(17)군은 친구인 B(17)양에게 지난해 6월 위계에 의한 성폭력을 저지른 혐의(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로 기소됐는데 성관계에 대한 강제성 여부를 두고 양측 진술이 엇갈렸다. 해당 사건은 오는 24일 선고가 예정돼 있다.


이들 사례처럼 성범죄 관련 사건에 국민참여재판을 활용하려는 시도는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지역 법조계 한 관계자는 "변호사 영업을 위한 상담에서 '성범죄에는 국민참여재판이 유리하다'는 말을 들은 피고인이 소문을 내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는 성 관련 사건의 입증 방법이 불명확한 경우가 많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성범죄는 피해자의 진술만으로도 공소되는 경우도 있다. 범죄 입증에 대한 확실한 물증이 없다면, 배심원단을 설득해 무죄 평결을 받아보겠다는 게 피고인의 전략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국민참여재판 무죄율은 일반 형사 사건보다 훨씬 높다. 대법원 등에 따르면 지난 2008년 국민참여재판이 도입된 이후 무죄율은 10.9% 정도지만, 성범죄는 무려 20.1%에 달했다. 또 지난 2018년 전국 지방법원에서 1심 형사재판을 받은 피고인 23만7천699명 중 무죄는 3.2%(7천496명), 대구지법의 경우 2.7%(630명)였다는 점과 비교할 때 매우 높은 비율이다.

법관과 일반 시민인 배심원이 진술의 신빙성과 일관성에 대해 바라보는 시각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이 성범죄 무죄율이 높은 배경으로 꼽힌다. 

 

천주현 형사전문 변호사는 "법관이 사건의 큰 줄기가 아닌 작은 모순들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배심원들은 이 부분에 대해 좀 더 일반적인 경험칙과 현재 유행 중인 통념 등을 배합해 바라볼 수 있다. 또한 배심원단이 목격자가 되어줌으로써 피고인에게 부당한 상황이 비교적 적어질 수 있다"고 봤다.

법원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만들어진 국민참여재판이지만, 성 관련 사건의 경우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진행될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 

 

천 변호사는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국민참여재판 법정에 서게 될 경우 많은 이들 앞에서 성적 수치심을 느끼는 등 인격을 묵살당할 수 있다"며 "국민참여재판법에도 피해자를 위한 '배제결정'이 불분명하게 규정돼 있다"고 지적했다.


서민지기자 mjs858@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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