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재난을 좋은 삶으로 잇는 교육

  • 박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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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7-27 08:07  |  수정 2020-07-27 08:30  |  발행일 2020-07-27 제14면

김언동수정1
김언동〈대구 다사고 교사〉

"선생님, 아직 퇴근 안 하셨어요?" "네, 요즘 우리반 아이들과 상담을 진행하고 있어서요." "아이고, 고생하시네요." "아니에요. 힘들긴 한데 아이들하고 이것저것 얘기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몰라요. 온라인 개학 때도 많은 얘기를 나누었지만 등교 개학 이후에 아이들이 겪는 어려움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고요." "그렇겠죠. 담임 선생님들이 상담하시는 데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늦은 저녁, 하루 일과를 마치고 교문을 나서다가 1학년 담임을 하시는 한 선생님과 나눈 대화입니다. 중간 고사가 끝난 이후에 학교의 모든 교실마다 늦게까지 불이 환하게 켜져 있던 이유를 이제야 알겠습니다. 온라인 개학 초기에는 수업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고민이 진행되었다면 지금은 학생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와 같은 고민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이와 같은 인식의 전환은 좋은 수업과 교사의 전문성에 대한 오래된 고민을 불러온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는 교사들에게 좋은 수업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습니다. 좋은 수업은 긴밀한 상호작용을 통해서 형성된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합니다. 지금 학교에서 모든 교사와 학생이 겪고 있는 경험이 가르쳐 주는 것이 있습니다. 좋은 교육은 다양한 자원을 네트워킹할 때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요. 교육청과 학교에서는 이와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학교나 교실 단위에서 교사와 학생들이 네트워킹할 수 있는 자원들을 구축하는 데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온라인 수업은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혼란을 일으켰습니다. 이 중에서 기술적인 문제와 관련된 것은 매우 빠른 속도로 해결이 되고 있지만, 디지털 세계에서의 문법을 이해하는 것이나 거기에 걸맞은 시민적 역량을 기르는 것은 그렇지 못합니다. 이제는 온라인 세계에서 적용해야 할 문법이나 시민성에 대한 이해가 절실히 요구됩니다. 여기에는 수업시간이나 출석 확인을 어떻게 할 것인가 등과 관련된 기술적이고 행정적인 문제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디지털 세계에서 적절한 콘텐츠는 어떠해야 하고, 이것이 학생들에게 의미있게 전달되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절차는 어떠해야 하며 디지털 세계 속에서도 공적 준거를 갖춘 시민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등이 보다 비중 있게 논의되어야 합니다.

학교 안의 교사 학습공동체는 코로나19로 인한 위기를 매우 빠른 속도로 극복하는 데 실질적인 힘을 발휘했습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결합되는 방식의 수업 환경에서는 교사의 전문성이 새롭게 정의될 수밖에 없습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결합되고, 다양한 형태의 에듀테크 기반 학습이 일상화되면 정련된 지식을 전수하는 능력을 갖추었다는 것이 교사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교사는 교육과정 설계자, 배움의 촉진자, 배움과 관계에서 나타나는 소외 치유자 등의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역할을 좋은 교육과 좋은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바탕으로 추구할 때 빛을 발하게 될 것입니다.

학교는 끊임없이 '좋은 삶'은 무엇인가, 어떻게 좋은 삶을 가꾸어갈 수 있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나오는 이야기 중 좋은 삶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들을 잘 이어서 위기를 넘어 큰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어떻게든 학교 문을 열고 입시만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모두 함께 재난을 성찰하고, 재난을 좋은 삶으로 바꾸어 가는 과정을 보여 주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아이들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김언동〈대구 다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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