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그래도 직접 보고 싶다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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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8-03   |  발행일 2020-08-03 제27면   |  수정 2020-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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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논설위원

다다이즘 미술 운동의 창시자인 마르셀 뒤샹은 1917년 작품 '샘'으로 미국 미술계를 뒤흔들었다. 도기로 제작된 소변기에 샘이란 이름을 붙여 뉴욕의 한 전시에 내놨다. 기성품이 과연 예술품인가, 소변기가 작품이 되는가 등의 비판을 받아 이 작품은 결국 전시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작품은 20세기 미술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다. 영국 생수브랜드 '티난트'는 생수병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생수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자 티난트는 획기적인 생수병 디자인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물이 흐르는 형상을 지닌 자연스러운 비대칭 형태의 병은 페트병 재질인 데도 빛과 색을 굴절시키는 것은 물론 물결무늬 효과까지 연출해 생명감을 잘 살려냈다. 이 생수병은 디자인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뒤샹의 샘과 티난트 생수병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일반인의 고정관념을 깼다는 것이다. 늘 바라보던 시선이 아닌 새로운 시선이 획기적 변화를 가져왔다. 그렇다면 변화는 어떻게 끌어내야 하는가. 시각의 변화, 즉 발상의 전환이 선행돼야 한다.

코로나19로 문화예술계가 대변혁의 기로에 섰다. 문화예술은 현장성, 대면성, 상호교감성 등의 특성을 가진다. 예술현장을 직접 보고 상호교감하는 과정에서 감동은 배가된다. 하지만 감염병에는 이것이 치명적 위험요인이 된다. 완전히 멈춰버린 문화예술이 그나마 희망을 품는 것은 온라인 등을 통한 '비대면 서비스'다. 이 때문에 문화예술계 각 분야에서 온라인으로 관람객을 찾아가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코로나가 기폭제가 돼 비대면 서비스의 영향력은 더 커질 것이다. 비대면 서비스가 멈춰버린 문화예술 시장을 구동시키고 쉽게 접근할 수 있어 문화예술의 문턱을 낮춘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여전히 문화예술은 대면성이 가지는 힘과 매력이 있다. 현장에서 직접 보는 BTS 공연과 온라인 관람은 분명 차이가 있다. 고국의 오만 가지를 생각하며 점을 찍었다는 김환기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전시장에서 보는 것과 온라인 대면은 감동이 다르다. 직접 관람이 주는 힘 때문이다. 그래서 예술인, 정부와 자치단체의 합심된 연구가 필요하다. 감염 위험을 줄이면서 직접 관람을 확대할 방안 마련이 절실한 이유다.

JTBC '비긴어게인' 코리아편에서 그 팁을 찾아도 좋을 듯하다. 해외에서의 버스킹을 소재로 한 이 프로그램은 코로나 이후 무대를 국내로 바꿨다. 코로나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들을 찾아 음악으로 작은 위로를 선사해 호응을 얻고 있다. 코로나 지역거점병원인 대구동산병원, 코로나로 인해 텅 비어버린 대구스타디움을 찾은 데 이어 강원도 속초에서 이제껏 본 적 없는 크루즈버스킹을 펼쳤다. 비긴 어게인이 찾아낸 뜻밖의 새로운 공연공간이다. 코로나 때문에 TV로만 봤던 비긴 어게인 버스킹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도 마련했다.

'장자 천하'편에는 사물을 보는 10가지 방법인 역물십사(歷物十事)가 나온다. 그중 하나가 '둥근 고리는 풀 수 있다'이다. 둥근 고리를 풀라고 하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고리를 자르는 것은 푸는 것이 아니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것이 고정관념이다. 백척간두 진일보(百尺竿頭 進一步)라 했다. 백 척이나 되는 높은 장대 위에서 한걸음 나아가라는 것은 더 노력해 위로 올라가라는 의미와 함께 고정관념을 깨라는 가르침이다. 상식의 틀을 부수는 게 코로나 위기에서 문화예술이 살아갈 수 있는 길이다. 그래야 사회를 변화시키고 성숙하게 만드는 에너지를 공급하는 문화예술의 역할을 다할 수 있다.
김수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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