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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를 쓰고 대구 도심을 걷는 시민들. 책 '인권의 최전선'은 코로나19 사태가 인권이 시대적·지리적·맥락적 상황에 따라 변한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영남일보 DB〉 |
"이 책은 인권이 왜 시대의 변화와 함께 자동적으로, 가지런하게, 순리대로, 직선적으로 발전하지 않는가 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어째서 세상은 좋아지는 것 같으면서도 여전히 허술하고, 나아지는 면이 있으면서도 여전히 빈틈이 많고,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면 왜 두세 개의 문제가 또 발생하는지에 관하여 해답을 찾고자 했다."
책은 서문에서 이렇게 밝힌다.
오랫동안 인권을 가르쳐 온 대학교수가 쓴 이 책은 '인권의 최전선'이라는 제목대로 현재 우리 사회에서 논의가 필요한 인권의 주요 쟁점들을 탐구해나간다. 그리고 미래 인권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한다.
'1장 인권의 지평을 넓히는 상상력' '2장 녹색 인권 시대가 온다' '3장 더 깊은 인권 감수성이 필요하다' '4장 지구촌 인권의 미래를 묻는다' '5장 인권-평화국가로 가는 길' 등 총 5장으로 구성돼 있으며, '스포츠는 인권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 '장애인 인권 선언' '기후 위기와 인권 위기' '국경 안보에서 인간 안보로' '흔들리는 학교 인권' 등의 인권과 관련한 다양한 주제를 폭넓게 다룬다. 환경권, 생명권, 인권 감수성, 세계 각지의 인권 현장, 한국 인권의 현주소 등이 인권의 관점에서 전개된다.
올해 인류에게 큰 충격을 준 감염병이자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코로나19 사태'를 인권적 관점에서 분석한 내용이 우선 와닿는다. 책은 코로나19 사태가 인권이 시대적·지리적·맥락적 상황에 따라 변한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보여줬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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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제 지음/ 교양인/ 384쪽/ 1만8천원 |
"건강과 질병의 문제가 성별에 따라 차등적으로 발현된다는 사실은 기본에 속한다. 몇 해 전 서아프리카에서 에볼라 사태가 발생했을 때의 일이다. 유독 여성의 감염률이 높았다. 단순히 생물학적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결국 사회문화적 젠더의 차이가 삶과 죽음을 가를 정도의 요인이었음이 밝혀졌다. 아픈 환자를 돌보는 사람 중 여성이 월등히 많았기 때문이다."(145쪽)
"코로나 사태는 어떤 재난이 발생하면 그것이 자연재해든 인간이 일으킨 사고이든 반드시 사회적 차원을 거치면서 피해가 차등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을 일깨워주었다. 빈곤층, 노약자, 기저 질환자, 장애인, 여성, 콜센터 근무자, 택배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응대 노동자, 이주 노동자들이 더 어려운 처지에 빠졌다. 재난 자체는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발생하더라도 그 피해는 반드시 불평등하게 돌아간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임을 다시금 보여준 사례다."(371쪽)
'시민 인권 의식이 중요하다'라는 제목에서는 현재를 살아가는 시민들의 복잡하고도 모순적인 인권에 대한 인식을 설명한다. 인권을 규정하는 방식도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는 것.
"권위주의 시대에는 독재에 반대하는 가치와 지향으로서 인권을 전제하곤 했다. 인권은 신성한 개념이며 불의한 권력을 거부하는 깃발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요즘 인권은 개인이 삶 속에서 경험하는 구체적인 실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흔히 이해된다. 내가 불이익을 당했을 때 불러내는 문제 해결사의 역할도 한다."(196쪽)
사회 속 많은 개념과 문제들을 정파적으로 보는 현 상황도 반영된다. '정치 과잉'의 영향이 인권이라는 개념에도 미치는 것이다. 저자는 그 부작용을 경계한다.
"또 다른 변화는 인권의 당파적 양극화 현상이다. 인권을 말하면 십중팔구 특정 진영에 속해 있을 거라고 지레짐작하는 경우가 많다. 정치적 저의를 포장하는 수단으로 인권을 내세운다는 의심도 있다. 인류의 보편적 포부라는 기본 원칙이 한국에 오면 이른바 '좌파'의 전유물로 치부되거나, 그런 식의 편 가름 속에 자리매김하곤 한다. 인권의 당파적 낙인 효과는 필연적으로 인권의 왜곡으로 이어지고 그 후유증은 모두에게 미친다."(196~197쪽)
책은 인권을 공부하는 마음가짐에 대해서도 조언한다.
"지성적 토론과 민주적 대화의 과정 없이 'OX'식의 정답만 강요하는 인권 교육은 반짝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모래 위에 지어진 성채에 불과하다."(14쪽)
"왜 차별금지법을 만들자고 하는 것인지, 인권에는 권리만 있고 의무는 없는 것인지, 인권은 인간의 권리만 지지하고 동물이나 자연에는 무관심한 개념인지 등은 칼로 무 자르듯 명확한 결론을 내기 어려운 질문들이다. 민주적 대화와 토론을 거쳐 시민들이 해답을 찾아가야 하는 질문인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인권 공부가 필요하다. 열정적으로 논쟁하되 그 논쟁을 거쳐 나온 결론 역시 특정 시점의 '잠정적 결론'임을 인정하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오늘 '옳다'고 결론이 난 문제가 몇 년 뒤에는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인권의 역사가 이를 입증해준다."(16쪽)
책의 내용 대부분에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개인적으로 극히 일부 내용에선 시각차도 느꼈다. 예를 들어 인권과 연관돼 한 번씩 거론되는 정치나 진보·보수라는 개념에 대해 기자는 책보다 더 회의적이다. 하지만 책에서도 말했듯 그런 시각차는 '지성적 토론'의 영역일 것이고, 책에서 강조하는 '인권의 확장'에 대해서는 적극 동의하는 바다.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발전하는 개념인 '인권'에 대해 더 많은 사람이 열린 마음으로 토론하고, 궁극적으로는 '모든 인간은 본질적 차원에서 평등하고 존엄을 지닌 존재'라는 인권 원칙을 지향하는 사회를 바라본다.
노진실기자 know@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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