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生劇場 소설 기법의 인물스토리] 여섯번째 시집 낸 '시인' 안상학 "30년 넘게 시 붙잡고 살았는데…나, 시인 맞나?"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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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0-23   |  발행일 2020-10-23 제33면   |  수정 2020-10-23
아버지는 두 '어매' 줄초상으로 오열했다
안동탁주합동회사서 술 배달하면서 연명
술기운에 영웅행세, 다음날 숙취로 '개털'
아동문학가 권정생의 편지는 복음이었다
영화감상회서 만난 참지식인 6명 덕분에
언행일치적 삶의 내공을 익힐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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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의 불화'가 없으면 공연히 시를 적을 이유도 없다고 믿으며 우리 삶의 변방스러움의 슬픔, 그리고 그 슬픔이 권력과 자본에 의해 어떻게 상처를 입어가는가를 34년째 6권의 시집으로 아로새기고 있는 안동 토박이 안상학 시인. 벽에 걸린 글씨는 그와 2003년 인연을 맺은 서예가 이호영의 작품으로 그의 시 '안동소주'를 '안동바람체'로 적어 선물했다.

세상이란? 자본과 자신 사이 아닐까. 하늘 아래 구두깔창처럼 세상이란 게 누워있지만, 하늘 앞에선 도무지 그 모든 게 무상하다. 그런 생각을 한 시절도 있으나, 그 생각은 얼마나 덜 여물고 무책임한 인식인가? 아무리 사소하게 보이는 사람이라도 그를 붙들고 낮술 한 추렴하면서 그만의 삶의 이야기를 경청해봐라. 우주보다 더 넓고 깊은 곡절을 알게 될 것이다. 어떤 이는 수직, 어떤 이는 수평을 이야기한다. 저 수직과 수평이 서로를 대지처럼 품어줬다면 돈 때문에 자살하는 자들도 없었으리라.

나는 안동에 사는 안상학이다. 30년 이상 시를 붙들고 있는데 아직 내 이름 뒤에 시인이란 두 글자를 붙여도 좋을지 모르겠다. 내가 시인이 된 뒤부터 사는 지금 이 집은 모르긴 해도 세상에서 가장 후미진 자리 같다. 내 단칸집 뒤 언덕배기가 가을물에 젖는다. 삽상한 바람, 초롱한 햇살 앞에 내 손바닥을 책처럼 펼쳐본다. 가는 길, 굵은 길이 옹기종기 모여 산다. 일상이 어쩜 일생보다 더 가파른 절벽이라는 걸 알려주기 위해 세월은 내게 모두 세 줄기 어매(어머니)를 안겨준 모양이다.

첫 어매는 34세 때, 내가 국민학교 4학년 때 3년간 긴 와병 끝에 돌아가셨다. 긴 병 수발 탓에 조금 모였나 싶던 재산도 바닥나버렸다. 빚을 안은 채 셋방살이가 시작됐고 보다 못한 할머니가 3남매를 보듬어야만 했다. 그런 어느 날, 새어매가 봄볕처럼 왔다. 너무나 다정다감하고 살가운 분이었다. 삶은 감자를 챙겨 영호루로 소풍도 갔다. 가족사진은 한사코 찍지 않으셨다. 미구에 닥칠 액운을 감지한 모양이다. 우릴 만난 지 1년도 안 돼 육영수 여사가 8·15 기념식장에서 문세광이 쏜 총에 맞아 숨을 거뒀던 그날 비슷한 죽음을 맞고 말았다. 줄초상을 감당 못해 무덤가에서 오열하는 아버지. 어린 나는 세상에 저런 슬픔도 있다는 걸 그때 알게 됐다. 두 어매가 지자 우리도 몰락해버렸다. 한때 화전민이었다가 나름 풋풋한 가정을 일궜던 아버지는 낙담일로를 걷는다. 안동탁주합동회사 술 배달부로 연명했다. 경덕중 시절 나는 무의미한 공부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버지에게 "자퇴하고 술 배달을 하고 싶다"고 했다. 놀랍게도 아버지가 허락했다. 오죽했으면…. 나는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안동 곳곳에 술을 날랐다.

서울·대구·포항에서 10여년 객지생활을 했다. 1978년 생애 첫 서울로의 가출. 친구와 술기운에 잠시 '영웅'이 될 수 있었지만 홀로 남은 숙취 난만한 아침이면 나는 다시 '개털'이었다. 달빛은 만인에게 고루 비치고 있었다. 그러니 슬픔과 고독을 독점할 수도 없었다. 다시 장착된 쓰나미급 외로움이 급습할 때쯤 한 통의 편지가 '복음'처럼 다가왔다.

안상학의 모든 시에는 유난히 외로움이 짙게 깔려 있다. 외로움을 아는 인간은 그 소중함도 안다. 결코 외로움을 떨쳐 내려는 무모한 짓은 말아야 한다. 고독을 지켜나가는 것 그게 시를 쓰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권정생. 내겐 반전 드라마 같은 분이다. '강아지똥'과 '몽실언니'란 두 편의 동화로 유명해진 그는 앎과 행이 일치하는 분이었다. 일직면 조탑리 중앙고속도로 남안동IC 근처 움집에 사셨던 그와 실과 바늘 같은 세월을 보낸다. 내 인생의 첫 반전은 안동문화회관에서 기획된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화감상회 때 만난 참지식인 때문이다. 권정생·전우익·이오덕·권종대·정호경·이현주였다. 내 나이 24세 되던 해였다. 그런 인연으로 나는 한때 한국작가회의 사무처장(2007~2008년),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 사무처장(2008~2014), 2016년에는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이 될 수 있었다.

안동의 지성사는 특이한 세 개의 단층을 갖고 있다. 유학자, 독립운동가, 그리고 민주운동가다. 그동안 퇴계 이황, 서애 류성룡, 학봉 김성일 등 거유(巨儒)에게만 경도된 것도 사실이다. 이상룡, 이육사 등 독립운동가와 병행해 한국 민주·농민·한글·환경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분이 바로 저 6인방이었고 그들의 언행일치적 삶의 내공을 가까운 거리에서 익힐 수 있었던 것 같다. 권정생과 전우익은 세상에서 가장 낮은 보법으로 우주의 끝을 겨냥한 안목을 가진 농사꾼이자 생활 철학자였다. 전우익은 1993년 베스트셀러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란 책을 통해 황금만능에 편승한 자본주의의 횡포를 일갈하며 '같이 산다는 것의 의미'를 알려주었다. 언어민중주의자·민족주의자로 한글의 미래를 누구보다 걱정한 이오덕, 그는 바른 우리말을 통해 바른 한국인의 삶을 겨냥한 분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990년 전국농민회총연맹 초대·2대 의장을 역임한 영덕 출신의 농민운동가 권종대의 삶에 빚을 진 것 같아 그의 평전을 쓰기도 했다. 조상을 생각하는 시월 상달만 되면 나는 내 맘의 향불을 켜 저 양심들을 위해 안동막걸리로 헌주를 한다.

글·사진=이춘호 음식·대중문화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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