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윤 칼럼] 불길한 침묵

  • 이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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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2-04   |  발행일 2020-12-04 제23면   |  수정 2020-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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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장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꽤 부담됐던 것 같다. 만족스럽진 않지만 김해신공항과 관련해 정리된 첫 입장을 나흘 전 내놨다. 말문을 닫아 논란을 키웠는데 보름 만에 "김해신공항 백지화까지는 규정 안 된 상태"라고 입을 뗐다. 그러면서 "특정 입지(가덕도) 정하고 가는 것은 절대적으로 문제 될 수 있다"고 했다. 당연한 결론이다. 당연한 것도 당연하지 않게 여기는 억지가 난무하는 세상이다 보니 당연한 결론에도 안도하게 된다. 국토부가 이 입장만 유지한다면 '김해'에서 '가덕도'로 바로 가는 직행 노선은 당분간 없어 보인다.

그런데 개운찮은 뒷맛을 남겼다. 김 장관도 어쩔 수 없었을 거다. 여권의 '가덕도신공항' 요구가 워낙 거세니 말이다. 그렇다고 법 절차를 무시하고 앞길 창창한 (국토부)공직자들에게 '가덕도행'을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청와대의 하명수사 의혹, 윤석열 징계 파문, 원전 감사 등에서 분출한 딥 스로트(deep throat·내부고발자). 신공항 사업엔들 왜 없겠나. 그래서인지 김 장관의 언행이 조심스럽다. "검증위의 보고서는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검토가 필요한지 보고 있다. 여러 안 놓고 검토하겠다"며 여지를 남겼다. 뒷문 살짝 열어놓은 것이다.

그 뒷문을 비집고 부·울·경이 진격했다. 김 장관 발언 바로 다음 날, 여권이 움직였다. 더불어민주당과 부·울·경 광역단체장들이 1일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의 일정표를 공지해 버렸다. 내년 2월까지 특별법 통과를 결행한단다. 핑곗거리 찾던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의 말이 낯을 후끈하게 만든다. 세계 최고의 전문기관 ADPi의 용역결과를 두고 얼치기 비전문가인 그가 "잘못된 정치적 결정"이라고 했다. 소도 웃을 일이다. 김해신공항 백지화 여부도 결정 안 났는데 가덕도신공항이라니. 설령 백지화되더라도 바로 가덕도 못 간다. 새로 생길 신공항은 부산만의 공항 아니다. 영남권신공항이고 남부권신공항이다. 그래서 10조원이란 혈세를 투입하는 거다. 굳이 하고 싶다면 국가에 손 벌리지 말고 스스로 알아서 하면 된다. 모든 후속 절차는 첫 합의 때처럼 대구와 경북, 부·울·경 등 5개 광역단체장의 협의와 합의를 거쳐야 한다. 그래야 절차적 정당성이 확보된다. 이들이 김해신공항을 보완할 것인지, 백지화할 것인지, 타당성을 재검증할 것인지,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인지 협의하는 게 순서고 순리다.

여당의 특별법이 더 가관이다. △사전절차 단축 이행 △예타 면제 △관문공항+α △대규모 교통·물류·산업인프라 조성 △공항공사 설립 등 파격적 내용이 즐비하다. 절차생략 속전속결? 얼렁뚱땅 서두르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드러내기 싫은 이런 특혜를 감추고 있다. 이게 국회 통과하면 대구경북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영남권 관문공항, 거점공항, 허브공항, 유럽노선을 포함한 대형 여객 및 물류공항? 대구경북통합신공항, 이런 것과는 멀어진다. 사업비와 규모, 인프라, 정부 지원에서 하늘과 땅 차이다. 가덕도신공항은 이 모든 것을 손에 쥐고 시작한다. 통합신공항은 명확히 손에 쥔 게 없다. 이제부터 하나씩 챙기고 얻어내야 한다. 그것을 정하는 정부가 가덕도 편이다. 잘 주겠나. 우린 우리 돈으로 알아서 한다? 신발 벗고 쫓아가도 못 따라간다. 막연한 희망 갖고 '가덕도 딜'을 꿈꾸는 시도가 있다. 부산에 '가덕도' 주고 통합신공항 특별법 얻자는 거래다. 상대 선의에 우리 운명 맡기는 순진한 발상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든다. 여기에 집착하다간 움직여야 할 때 대구경북민의 손발 묶는 족쇄 된다. 대구경북의 이런 침착함과 침묵이 불길하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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