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석의 電影雜感 2.0] '몸값' '콜' 이충현 감독 주목

  • 유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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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2-04   |  발행일 2020-12-04 제39면   |  수정 2020-12-04
1990년생 감독이 온다…충무로의 세대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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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촬영현장의 이충현 감독.

14분짜리 단편영화 '몸값'(2015)은 여러 의미에서 대단한 작품이었다. 한 신으로 본다면 짧지 않은 분량을 숏의 전환 없이 롱 테이크(long take)로 찍은 것도 대단했고, 도입부에 단 두 명의 배우만을 출연시키고 특별한 액션 없이 대사만으로 긴장감을 고조시키며 반전을 거듭하는 것도 놀라웠고, 후반부의 전폭적인 상상력에 그만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독전'과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으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배우 이주영의 데뷔작이기도 한 '몸값'은 처녀를 원하는 중년남자가 여고생과 모텔 방에 들어가 화대를 놓고 흥정을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제15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4만번의 구타' 부문 최우수작품상을 비롯해 여러 크로 작은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으며 그 진가를 인정받아왔다. "한 호흡 안에 사건이 마법처럼 벌어지듯이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던 '몸값' 감독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는 이들은 비단 나뿐만은 아니었을 게다.

이충현 감독이 20대 중반에 선보인
14분 단편 영화 '몸값' 놀라운 연출
후반부 펼쳐지는 상상력 긴장 고조

장편 데뷔작 '콜'
과거와 현재 동갑내기 전화로 연결
어두운 미래 알며 비틀어지는 운명
박신혜 연기 변신, 전종서 매력 뽐내
英 원작 영화 '더 콜러' 대부분 각색
과감·대범한 미스터리 스릴러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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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 포스터.

'몸 값'을 만든 이충현 감독은 1990년생이다. 그러니까 '몸 값'을 만들었을 때가 20대 중반이었다는 얘기다. 그는 계원예술고등학교 재학 시절 이미 많은 단편영화를 만들고 이 작품들이 여러 공모전에서 수상을 한 경험이 있다(이 가운데 대구지하철 참사를 다룬 작품도 있었다). 그랬던 그가 어찌된 일인지 연극영화과가 아닌 신문방송학(한국외국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을 공부하다 광고 회사에 들어가 일했고 자신의 사비 500만 원을 들여 하루만에 촬영한 '몸 값'으로 한 몸에 주목을 받게 된다. 이후 "영화를 전공하지 않은 25살의 감독이 만든 단편영화를 보고 마음 깊숙이 찔리는 느낌"을 받았다는 '용필름' 임승용 대표의 제안으로 정지우 감독의 동의를 구해 '침묵'의 각색을 맡기도 했고 영화화되진 못했지만 '유다의 별'같은, 용필름이 기획하거나 개발한 영화들의 시나리오를 몇 년 동안 쓴다. 단편영화에서 주목받은 감독들이 영화사에서 장편영화 연출부에 들어가 몇 편의 현장 경험을 쌓은 뒤 입봉하는 게 일반적인 경우인데, 임 대표는 이를 소모적이라고 생각해 이 감독에게 자신의 시나리오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시나리오를 쓰게 하면서 장르물에 대한 트레이닝을 시킨 것이다.

이충현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 될 '콜'(2020)은 과거와 현재라는, 서로 다른 시간대에 살고 있는 두 여자가 한 통의 전화로 연결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미스터리 스릴러물이다. 현재의 시간에 살고 있는 '서연'에게 20년 전 자신과 같은 집에 살고 있던 '영숙'이 전화를 걸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동갑내기로 전화로 여러 대화를 나누며 우정을 쌓던 두 사람은 각자의 시간에서 서로의 인생을 바꿀 사소한 선택을 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자신의 어두운 미래를 알게 된 '영숙'이 폭주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와 운명은 계속 비틀어지고 어긋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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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값' 포스터.


'서연' 역을 맡은 배우 박신혜는 이전에 관객들이 로맨스물이나 드라마에 특화되어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콜'에서는 현재의 시간에 살면서 과거를 되돌린 대가로 살인마를 마주하게 된 캐릭터를 맡아 자신의 필모그래피 사상 가장 극적인 연기 변신을 펼친다. 그 스스로도 지금까지 맡았던 정의로운 캐릭터들과는 상반된 면모를 연기하게 되어 대단히 즐거웠다고 밝힌 그는 극 중 끊임없이 변하는 상황에 맞춰 외적인 변화는 물론 섬세한 감정 연기까지 해내며 극의 중심을 단단히 잡고 끝까지 완주한다. 개인적으로는 격한 욕설을 뱉는 그이의 모습을 언제 본 적이 있었던가 놀라기도 했다.

'영숙'으로 분한 배우 전종서는 2018년 거장 이창동의 '버닝'으로 단번에 국내외 영화계의 주목을 받으며 데뷔했던 이로 차기작에 대한 관심을 늘 받아왔다. 박신혜와는 대척점에서 과거의 시간에 살면서 '서연'을 통해 알게 된 끔찍한 미래를 바꾸고자 폭발하는 인물을 그려 "어떤 수식어로도 정의될 수 없는 다채로운 매력이 있는 캐릭터"를 한껏 뽐낸다. '서연'과 정서적인 유대감을 쌓는 소녀처럼 순수한 모습부터 '추격자'에서 배우 하정우가 분했던 연쇄살인범을 압도하는 듯한 사이코패스 같이 무시무시한 모습까지 예측불허의 연기를 펼치며 오래도록 회자될 독보적인 악역을 선보인다. 실제 이충현 감독이 시나리오를 쓸 때 '버닝'의 전종서를 통해 '영숙' 캐릭터를 구체화했다고.

주지하다시피 '콜'은 오리지널 시나리오는 아니다. 푸에르토리코와 영국의 합작 영화인 2011년작 '더 콜러'가 원작으로, '콜'처럼 전화를 매개로 관객들이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하는 작품이다. 과거에 사는 여성 '로즈'와 현재에 사는 '메리'의 대결을 중심에 놓고 '메리'의 주변을 맴돌며 수시로 협박하는 전 남편의 존재가 긴장을 더한다. '콜'은 이런 원작의 설정만을 가져오되 이충현 감독이 대부분을 각색해 원작보다 훨씬 과감하고 대범한 스릴러로 바꿨다. 원작에서 '로즈'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메리'를 괴롭히는 수수께끼 같은 캐릭터였는데, '콜'에서 '영숙'은 슬래셔물에 으레 등장하는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로 '서연'과 동일한 분량으로 나오며 자신만의 캐릭터를 갖는다. 용필름은 이미 '마약전쟁'을 원작으로 한 이해영 감독의 '독전'이라던가, '침묵의 목격자'를 원작으로 한 정지우 감독의 '침묵' 등을 통해 리메이크에 대한 독보적인 경험치를 충분히 쌓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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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생 감독, 감독과 동갑인 주연배우와 그보다 4살 더 아래인 배우까지. '콜'은 바야흐로 한국영화계에 세대교체를 선언하는 영화에 다름 아니다. 베스트셀러 '90년생이 온다'에서 저자 임홍택이 정의한 '간단함, 병맛, 솔직함으로 기업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90년생이 바야흐로 한국영화계에도 진입한 것이다. 최근 젊은 여성 배우가 이끄는 다른 한국영화보다 더 진일보한 모양이다. 이런 변화를 많은 관객들이 보길 바랐으나 '콜'은 극장 개봉이 아닌 넷플릭스행을 택했다. '승리호' '차인표' '낙원의 밤'까지 이런 행보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코로나19가 가져온 언택트 시대, 한국영화의 미래는 가팔라서 아찔하다. 영화감독·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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