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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어떤 자리 하나를 두고 민주주의를 살리니 죽이니 하며 야단법석을 떤 한 해가 저물었다. 항상 마스크를 끼고 있어야 해서 괴로운 것만은 아니었다. 살기 위해서, 내가 살고 남이 살기 위해서 마스크를 끼는 것이어서 귀찮아도 참았다. 그러나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괴질은 없어지지 않았다.
지난 한 해는 오로지 이 괴질이 1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정치·경제·사회·문화를 도탄에 빠지게 한 비참의 세월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새해에도 멈출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관료 하나로 민주주의가 죽고 산다고 야단법석을 떠는 '좀비정치' 때문에 세상이 망가지는 꼴을 우리는 계속 보아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도대체 민생경제는 어디로 갔는가. 그런 게 있기나 한가. 미친 집값은 어디까지 광란의 오름세를 계속할 것인가. 서민을 위한 정치나 경제를 이 땅에서 보기란 불가능한가.
그러나 무엇보다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 '서울에 살지 않아도 인간 대접을 받는 세상은 이 땅에서 영원히 불가능한가' 하는 점이다. '지방 죽이기'는 지금 이 나라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임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1960년대 이후의 도·농 격차는 1990년대 이후 더욱 심화되었고 2010년대에는 한국의 가장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따라서 지방 살리기는 국정의 최고 과제가 되어야 했거늘 지난 세월, 그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2010년대 이후 지방의 세대 갈등은 교육과 고용의 차원에서 더더욱 심각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나라가 잘살아야 개인도 잘산다는 이야기가 언제부터인가 '재벌이 잘살아야 나라도 잘사느니' '서울이 잘살아야 지방도 잘사느니' 하는 이야기로 바뀌었다. 그래서 지방 사람은 서울로 가는 걸 최고의 출세로 안다. 이제는 아예 서울에서 태어나야 인간 대접을 받는 세상이 되었다. 그 결과 지방에 남은 사람은 인간 대접도 받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
권력기관 개혁도, 노동문제 개혁도 다 중요하지만, 죽어가는 지방을 살리는 것이 2021년의 급선무다. 서울 집중이 더 이상 심화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문제는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방의 노력이 전무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문제는 더 근본적인 데에 있다. 지방이 죽어가는 데도 지방은 항상 서울만을 바라본다는 점에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다. 지방 스스로 지방을 죽이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다. 조선 시대 이래 우리의 국시처럼 되어온 능력주의는 유능한 사람은 서울로, 무능한 사람은 지방으로라는 서울중심주의를 고착시켰지만, 그래도 농업사회였던 1960년대 이전에는 땅이 있는 지방이 경제의 터전이어서 무시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뒤로는 지방의 경제적 가치조차 없게 되면서 지방은 쇠락하기 시작했다. 통계 자료를 들먹일 필요도 없다. 언제부터인가 대학을 나누는데 '지방대학'이라는 특이한 구분이 생겨났다.
그 순간 30여년 전 처음 방문한 영국의 BBC 방송국에서 백인이 아닌 사람을 보지 못해 놀랐던 기억이 별안간 떠올랐다. 당시에도 영국에는 수백만 명의 유색인종이 살고 있었으나 그들 대부분은 인간 취급을 받지 못했다. 물론 그 뒤로 영국은 크게 변했다. 영국만이 아니라 많은 나라에서 급격한 변화가 이루어졌다. 우리에게도 그런 변화가 와야 한다. 그러나 그 변화는 소위 '지방 사람'의 자각, 자존심 회복이 있어야 가능하다. 우리 모두 나의 지방 살리기에 나서자. 그것이 진정한 우리 문제다. 서울만을 바라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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