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포유 커버스토리] 베이커리 카페 '벨빌베이크하우스' 2…"미쳤다 소리 들으며 '대구 셧다운'때 오픈…지금은 '신의 한 수' 소리 들어"

  • 유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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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2-19   |  발행일 2021-02-19 제34면   |  수정 2021-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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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빌베이크하우스'는 코로나 최악 상황인 지난해 4월 오픈했다. 뜻하지 않게 사람들이 도심을 피해 찾아왔다. 트렌드를 따라 삼덕동이나 앞산 같은 도심을 선택하지 않은 것이 '신의 한 수' 였다. 자율성을 보장하는 업무환경 덕에 참신한 인재들도 속속 합류했다.

◆잘나가던 프랜차이즈 대표, 그림을 만나

윤현석(48)은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라다 고등학교 때 가족과 함께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민 갔다. 그곳에서 대학을 졸업했다. 전공은 '레코딩 엔지니어링'. 현지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그는 2007년 미국과 서울에서 빵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일반적인 빵이 아니라 '커피번'이었다. 번은 영국 사람들이 즐겨먹는 빵으로 우유와 버터를 기본으로 건포도와 호두 등을 넣어 만든다. 윤현석이 론칭한 번의 국적은 영국이 아닌 말레이시아였다. 이 나라는 영국의 식민지였다. 번의 맛과 제조법이 크게 다를 리 없다. 버터가 들어간 반죽을 발효시킨 후 즉석에서 굽는 게 기본이다. 다만 그 위에 커피 크림을 토핑한 것 정도가 영국산 번과의 차이다. 이 빵에서는 구수한 커피향과 고소한 버터 냄새가 난다. 1998년 말레이시아인인 히로 탄씨가 '로티보이'를 설립하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졌다. 로티(Roti)는 현지어로 빵을 뜻한다. 번의 담백하면서도 달콤 짭조름한 맛이 인기를 타면서 일약 말레이시아 국민 빵으로 떠올랐다.

윤현석은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파파로티'라는 프랜차이즈를 만든다. 분당에다 1호점을 냈지만 몇개월 동안 신통치가 않았다. 소문을 듣고 지방에서 찾아왔다. 대구와 부산에 총판을 두기로 했다. 이들 총판 책임자들은 처음엔 각각 5개씩의 가맹점만 오픈하겠다고 약속했다. 대구 동성로에서 대박이 터졌다. 기존 빵 전문점은 매장 안에서라야 빵 냄새를 맡을 수 있지만 번은 즉석에서 굽기 때문에 냄새가 매장 밖에서도 났기 때문이다. 빠르게 입소문을 탔고 총판 책임자들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가맹점은 당초 약속과 달리 계속 늘어만 갔다. 전국에 200개 정도가 있었는데 대구경북지역에만 80개 정도가 됐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 터졌다. '도우'를 말레이시아 현지에서 가지고 오는데 가맹점이 늘어나 물량이 부족했다. 급한 나머지 비행기로 들여오다 보니 돈이 안 남았다. 2008년 말레이시아에서 인력을 데려와서 인천 부평에다 도우 만드는 공장을 설립해 공급했다. 대구에서 30여 가맹점들이 "(도우를) 현지에서 가지고 오지 않고 한국에서 만드는 바람에 빵의 맛과 향이 다르다"며 반발했고 급기야 이 문제로 송사에까지 휘말리게 된다. 2014년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윤현석은 직접 수십 개의 가맹점을 돌면서 계약을 해지했다. 미숙하게 사업했던 자신을 매섭게 질책했다.

윤현석은 소송건으로 인해 대구에 자주 왔다. 그러다 정이 들었다. 수성구 들안길에 건물 짓고 말레이시아 글로벌 외식 브랜드인 파파리치(Papparich)를 유치했다. 윤현석은 한국법인 대표를 맡아 최선을 다했지만 이번에는 쉽지 않았다. 2년 반 정도하다가 그만뒀다.

2년 전쯤 윤현석은 온·오프라인에서 그림을 빌려주고 판매하고 사업을 하고 있다. 바른손카드와 동업이다. 바른손카드는 60년된 회사다. 연하장, 카드, 달력 등을 만들면서 축적한 데이터베이스가 독보적이다. 프린트 능력이 뛰어나다는 장점도 있다. 현재는 프린터물을 대여해 주는 정도에 머물러 있지만 빵 프랜차이즈를 할 때 소품을 해봤던 기억을 되살려 봤을 때 카페 등에 접목시키면 성공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고 판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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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빌베이크하우스' 내부 모습.

◆의기 투합한 빵집 셰프와 그림 대여·판매상, 그리고 이들과 함께하는 사람들

빵집 셰프 서용석과 그림 대여·판매상 윤현석은 같은 동네에서 유·청소년기를 지낸 막역한 친구다. 프랑스에서 돌아와 서울 청담동에서 나름대로 자리잡은 서용석은 서울에다 2호점을 내고 싶어했다. 서울 이외의 곳은 잘 몰랐기 때문이다. 윤현석이 설득했다. "빵은 프랑스에서 배운 니가 자신이 있을 테고 예전에 프랜차이즈를 해봤던 나는 하루에 4천개를 파는 아이템이 있다. 서울에서 1천만씩 월세 내고 장사하면 잘돼봐야 남 좋은 일 시키는 것이다. 비즈니스 조금만 잘못되면 한순간에 없어진다. 좋은 콘텐츠를 가진 대형 카페로 가려면 지역이 유리하다. 그곳에서 자산을 키워보자."


한 수 앞서 선택한 입지
"서울서 장사하면 남 월세 주는 일
대구서 대형 카페 열어 승부 보자"
사업가 윤현석, 셰프 서용석 설득

인테리어 시작즈음 코로나 창궐
최악 상황에 어쩔 수 없이 오픈
"한적한 카페" 사람들이 찾아와
예상 못했지만 절묘하게 성공


윤현석은 대구를 거론했다. 10년 정도 이곳에서 사업을 하다보니 깨달은 게 있다. 대구는 한국에서 프랜차이즈의 무덤이다. 대구 특유의 보수성에 입맛도 굉장히 까다로워 진입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한번만 인정받으면 오래간다. 대구에서 사업으로 인정받으면 세계에서도 인정받는다고 확신하고 있다. 서용석 마음은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들은 의기투합해 대구에 2호점 빵집인 '벨빌베이크하우스'를 만들기로 한다. 왜 빵집 이름이 벨빌인지에 대해 서용석은 이렇게 말한다. "프랑스에서 부촌이거나 깔끔한 동네는 아니지만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좋았고 예술가들이 많이 사는 동네여서 윤현석의 사업과 연계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1월부터 공사를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19가 창궐했다. '미쳤다'는 지인들의 아우성에도 굴하지 않고 윤현석은 공사를 진행했다. 4월22일 가게를 오픈할 때 대구 도심은 셧다운됐다. 그때만 해도 정부 차원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도심을 피해 이곳으로 왔다. '신의 한 수'였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여기다 한 게 시기적으로 너무 좋았다. 트렌드 따라간다고 삼덕동, 앞산 같은 도심에서 오픈했으면 벌써 못 견디고 끝났을 건데." 윤현석은 그때를 생각하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참신한 인재들 속속 합류
레시피 공개하고 자율성 보장
호주·제주 등서 활약 셰프 동참
"프랑스 맛 내는 후학 키우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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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미·오정주·류지민(왼쪽부터)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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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빌베이크하우스'에서 선보이고 있는 브런치 메뉴.

참신한 인재들이 속속 합류한 것도 빵집 조기 착근에 큰 역할을 했다. 브런치 파드 최보미 셰프(30)는 호주에서 5년 가까이 체류하다 지난해 3월 귀국했다. 호주에서 현지인들의 아침식사 대용인 브런치를 만드는 레스토랑에서 일했다. 오전 6시에 레스토랑 문을 열면 시민들이 찾아와 커피 마시고 식사한 뒤 출근한다. 이런 호주의 문화가 너무 좋았다. 그런데 코로나19가 그녀를 귀국하게 했다. 최 셰프는 "코로나19 같은 역병은 처음이라 겁이 났는데 한국이 대처를 잘하고 있었다. 2년 정도 한국에 못와 본 탓에 가족도 보고 싶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최 셰프는 한국에서는 빵을 배워보고 싶었다. 그래서 벨빌베이크하우스에 지원했다. 그런데 빵집 측에서 "빵보다 브런치를 계속 하면 좋겠다"고 제의를 해서 이를 받아들었다. 메뉴는 10종류. 직접 개발하기도 했고 호주에서 했던 것도 있다. 최 셰프는 "한국에서도 브런치를 해보고 싶었지만 한국 사람들이 브런치 문화를 좋아할까 걱정도 했는데 손님도 많이 찾아 주시고 맛있다고 말해 만족하고 있다"며 "무엇보다 앞으로도 벨빌과 함께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 너무 좋다"고 말했다. 오정주(31) 파티셰프는 수년간 제주도에서 셰프 생활을 하다 지난해 벨빌에 합류했다. 선택에 만족하고 있다. 위계질서가 세고 같은 작업을 반복하는 업무 특성상 힘들 때가 적지 않은데 이곳은 자율성을 보장해준다. 만들고 싶은 제품이 있으면 마음껏 해보라고 격려해 주고 결과를 직원들이 공유한다. 6년차 경력의 류지민 제과장은 일 특성상 오전 7시에 출근해서 오후 4시 반쯤 퇴근하지만 제 시간에 퇴근하는 일이 거의 없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오후 6시 이후까지 혼자 남아서 기술을 연마한다. 류 제과장은 "예전에 호텔에서 일할 때는 정해진 것만 했는데 여기서는 기회를 많이 주니까 다양하게 연습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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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용석과 윤현석은 그들만의 스타일을 가진 빵집을 계속 만들고 싶다. 공장에서 빵을 만들거나 반가공 상태로 공급해주는 한국형 프랜차이즈로 가면 맛있는 빵을 만들 수 없다. 하지만 대량 생산으로 제 맛을 낼 수 있는 상품도 있다. 프랑스 방법으로 가면 공급 부족과 인건비 부담이 너무 커다. 그래서 기존 한국 제빵 프랜차이즈 업계의 특성과 프랑스형 소형 프랜차이즈의 방식 사이에서 접점을 찾고 있다.

이들이 분명하게 세운 계획이 있다. 직원들과의 팀워크를 단단하고 알차게 다지려 한다. 그래야 사업 영역을 확장할 때 우리 직원들이 그쪽의 책임자가 될 수 있다. 우리의 콘셉트를 잘 유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직원이라고 믿는다. 서용석 셰프가 직원들에게 레시피를 감추지 않는 것이 바로 이때문이다. 다행히 직원들의 생각도 이들의 것과 닿아 있다. 윤현석은 "직원들의 꿈은 독립이다. 그 꿈을 이루는 곳이 우리 매장이면 좋겠다. 사업 확장에 직원들이 참여하는 구조를 만들고 싶다"고.

이들은 또 제대로 된 프랑스 빵 맛을 내는 후학을 키워내고 싶다. 서용석은 "국내에서 빵 만드는 친구들이 프랑스나 독일 등 유럽 빵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 실질적으로 배울 수 있는 루트가 많지 않다. 선험한 사람이 제과제빵 강좌를 하게 되면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다. 제대로 깊이 가르쳐 주지 않고 레시피 전수만 해주는 곳이 많다"며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을 직원들과 충분히 공유를 하고 장기적으로 더 많이 프랑스 빵을 배우고 싶은 친구들은 형이 있는 프랑스로 연수를 보내는 등 후학을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글=유선태기자 youst@yeongnam.com
사진=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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