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준 교수의 '북한 이야기' .7] 외국인 출입 엄격 통제된 청진 - 경성에서 만난 안마사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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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3-26   |  발행일 2021-03-26 제21면   |  수정 2021-03-26
호텔 방에서 카메라 메모리카드 사라져…아침 먹는 사이 누가 들어왔던 걸까
미국인 일행 성조기 티셔츠도 없어져…청진 떠나는 날까지 가슴 졸여
경성 이동해 마사지숍 방문…의대 졸업해야 취직 가능한 직종 중 하나
20대 마사지사, 남한 연애방식 궁금해하며 통일되면 꽃 보내준다 약속
김일성 사적지엔 김정숙 프로파간다물 곳곳에…일본군 물리쳤다 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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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집에 걸려있는 그의 가족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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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혁명사적관'의 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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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이 자랑한 경성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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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온천 입구의 모습.

청진에서의 여정은 단 하루뿐이었다. 당시 청진이 외국인 출입을 허용하기 시작한 첫해였기 때문에 많은 것을 보여주기에는 아직은 조심스러웠나 보다. 청진의 한 호텔에서 하룻밤을 머문 후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하고 호텔 방으로 돌아와 짐을 챙기기 시작했는데 내가 북한에 들고 왔던 DSLR 카메라용 메모리카드 한 개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되었다.

북한에 있으면서 나는 매일 밤 메모리카드 안에 있던 영상들을 컴퓨터 안에 비밀번호 없이는 열 수 없는 비밀 폴더에 옮겨놓고 메모리카드에 있는 파일들은 바로 삭제하곤 했다. 그러나 메모리카드 한 개가 아침을 먹고 오는 사이에 없어졌다는 사실에 혹시나 해당 메모리카드에 들어있던 파일들을 삭제하지 않은 것은 아닌가 라고 생각하며 많이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북한이 극도로 예민해 하는 농촌 마을의 모습은 차량 안에서 DSLR 카메라로 촬영했기에 사라진 이 메모리카드에 들어있을 법 하지만 더욱 큰 문제가 될 법한 영상들은 시계에 달려 있던 별도의 몰래카메라용 메모리카드를 이용해 촬영했기에 괜찮을 것이라며 나 자신을 달래보았다.

당시 미국인 일행 역시 미국 국기가 그려 있는 본인의 티셔츠가 없어졌다고 얘기하기도 했는데 우리가 아침을 먹으러 간 사이에 누군가가 우리들 방에 들어온 것이 아닌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청진에 들어선 순간부터 떠나는 날까지 가슴 졸이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북한에 입국했을 때 북한 당국에서 내가 가지고 왔던 메모리카드 수를 세고 출국할 때 메모리카드 수가 맞아야 한다고 했다. 함경북도 공항 당국이 실수로 카메라 안에 있던 메모리카드 존재를 생각하지 못한 채 총 수에서 제외했던 것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부터는 호텔에 절대로 메모리카드를 두고 다니지는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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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해안가에 김정숙을 찬양하는 문구.


우리는 청진을 떠나 경성으로 향했다. 버스에서 다시 한번 과격한 '마사지'를 받으며 경성에 도착했는데 공교롭게도 경성의 한 마사지 숍에 가서 진짜 '마사지'를 받게 되었다. 마사지 숍 내부 벽에는 김일성·김정일 초상화가 걸려 있었고 나를 마사지해 주었던 20대 북한 여성은 본인의 직업에 상당히 만족스러워했다. 평양 출신의 이 여성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난 후 북한 당국에서 이곳으로 배치했다고 하며 의대를 졸업해야 안마사로 일할 수 있다고 했다. 그만큼 이 직종이 북한에서는 손에 꼽을 만큼 인정받는 직업 중 하나다. 고향인 평양에는 가족을 만나러 1년에 한두 번 정도 간다던 이 여성은 통일이 된다면 제주도에 꼭 가보고 싶다고 했다. 복잡할 것 같은 서울보다는 백두산과 제주도가 한반도의 끝에서 끝인 만큼 제주도를 가보는 것이 더 의미가 있을 것 같다고 하면서 말이다.

남한에서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 연애를 하는지도 궁금해 했는데 북한에서 연인들은 주로 공원에 가서 산책하는 것이 유일한 데이트 코스라고 말했다. 또 취미 생활로 꽃꽂이를 한다고 하면서 우리를 갈라놓고 있는 정치적 장벽이 허물어지면 내가 살고 있는 캐나다로 꼭 꽃을 보내고 싶다고 얘기했다. 마사지를 다 받고 나니 여러 명의 다른 안마사와 함께 노래를 선물해주고 싶다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불러주었고 통일이 되면 꼭 만나자고 했다. 마음이 뭉클해지는 순간이었다.

경치가 좋은 경성에는 김일성 사적지와 사적관이 많이 있었는데 경성은 김일성과 그의 부인 김정숙, 김정일 위원장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낸 유일한 곳이기도 한 만큼 우리 일행은 그들이 살던 집을 방문했다. '경성혁명사적관'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김일성 가족이 머물던 방 내부의 모습과 사진들이 있었다.

또 경성 해안가에 위치한 '집삼' 포구라고 불리는 곳을 방문하기도 했는데 이곳은 2019년 6월에 북한 소형 목선이 출항한 곳으로서 이 목선은 한국군의 감시를 피해 강원 삼척항으로 입항하는데 성공하며 한국군의 경계태세에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집삼 포구에는 김정숙에 관한 프로파간다 내용물이 많이 있었는데 경성에서 그녀가 김일성을 도우며 일제강점기 시절에 일본군들을 물리쳤을 뿐 아니라 김정숙이 각종 질병 치료에 뛰어난 의료진을 확보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고 선전하는 곳이다.

경성에는 곳곳에 피로를 해소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휴양소와 문화시설 공간이 많이 있었는데 해가 질 무렵 우리 일행은 온천으로 유명한 '경성온천'으로 향했다. 온천 안으로 들어서니 한국과는 달리 방 구조로 되어 있었고 개개인이 각각 하나의 방에 들어가 개인용 탕에서 목욕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탕 안에는 이미 물이 차 있었는데 우리 일행이 온다는 소식을 알고 준비해 놓았던 것 같다. 물속에 들어가려고 발을 담갔는데 물이 어찌나 뜨겁던지 화상을 입는 줄 알았다. 라선시에 있던 호텔에서 온수가 나오지 않았던 것과는 정반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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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준 교수

북한에도 온수가 잘 나온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했던 것일까? 너무 뜨거운 나머지 물이 조금 식을 때까지 대략 20분가량 물속에 들어가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온수가 나오는 대신에 조명은 거의 없다시피 해 매우 컴컴한 상태로 목욕을 했다. 이 온천에는 우리 일행 외에는 북한 주민은 없었다. 몰래 이것저것 촬영하느라 정신적·육체적으로 힘들었던 나에게 경성은 조금이나마 피로회복을 할 수 있었던 곳이었다. 


<계명대 언론영상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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