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2010] 경북,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라 <17> 이하석의 ‘갓바위, 지극한 기도가 통하는 자리’

  • 입력 2021-05-25 15:52  |  수정 2021-05-31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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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악(팔공산)의 여름은 깊고 푸르다. 골짜기 마다 연신 흰 구름들이 피어오른다.


서라벌에서 스승은 여전히 연락이 없다. 그러나 그의 소식은 꾸준히 듣고 있을 터였다. 봉우리 아래 있는 선본사의 스님들이 자주 찾아오니 그 편에 소식을 전했으리라. 머리도 제 때 제대로 깎지 않아 털투성이 얼굴로 땀범벅이 된 채 오직 돌과 씨름하는 그를 스승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그러고 보니 스승을 떠나온 지 얼마만인가? 어언 20년이 되어간다.
 

스승이 어떤 분인가? 원광법사로 불리는 큰 스님이다. 진흥왕 대에 출가한 후 중국 진나라에 건너가 ‘열반경’과 ‘성실론(成實論)’을 배우고 강의하여 이름을 얻었다. 이후 다시 수나라로 건너가 소승불교와 대승불교 전반에 걸쳐 폭넓게 공부를 했다. 쉬운 말로 불교를 전파하기로 유명했으며, 왕명을 받아 세속오계(世俗五戒)를 지어 화랑의 기본 계율이 되게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법사의 수제자였다. 스승은 그에게 특별한 가르침을 주었다.
 

“의현아, 중악으로 가거라. 거기 네가 점지해둔 그 바위를 쪼아 부처를 드러내라. 그게 네 어머니를 극락으로 모시는 일이 아니겠느냐.”
 

그의 지극한 효심을 배려한 말이었다. “불도를 깨치는 것도 여러 길이 있느니라. 인연에 맞게 제 길을 선택하기 마련이지. 너는 그 길이 맞을 것 같다.” 그리하여 돌을 깎아 부처를 드러내는 일이 그의 필생의 도업(道業)이 된 것이다.
 

아아, 스승의 지극한 제자 사랑! 그는 몇 번이나 스승 앞에 엎드려 머리를 땅에 찧으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를 불문에 귀의케 한 이도 스승이었다. 어머니의 병이 깊어져 절망하고 있는 그에게 스승은 어머니를 영원히 살리는 문이 있다며 머리를 깎기를 권했다. 승려가 되고 난 후에도 어머니가 병이 깊어지자 그걸 치유하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하여 약을 짓고, 약초를 캐러 중악을 샅샅이 뒤졌다. 그 지극함을 스승은 말없이 지켜볼 뿐이었다. 결국 어머니는 유명을 달리했다. 슬픔에 빠진 그에게 스승은 중악으로 돌아가 어머니를 평생 가슴에 모실 일을 하게 한 것이다.
 

서라벌을 떠난 그는 중악의 동쪽 끝자락, 바위가 많은 봉우리를 찾았다. 약초를 캐러 산을 헤매면서 특별한 기운이 있음을 알고 점 찍어둔 자리였다. 바위 아래 우묵한 곳에 임시 거처로 움막을 지었다. 그런 다음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위해 제 몸을 바치기를 그 바위 앞에서 서원했다. 몇 달 동안 그렇게 했다. 길 가에 있는 뼈를 보고 예배하면서 그 뼈의 무거움과 가벼움을 들어 남녀를 구별하는 대목부터 시작하는 ‘불설대보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을 뼈에 사무치도록 염송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 뼈가) 여자라면 세상에 살아있을 때에 아들딸을 낳고 키움에 있어 한번 아이를 낳을 때마다 서 말 서 되나 되는 엉킨 피를 흘리며, 자식에게 여덟 섬 너 말이나 되는 젖을 먹여야 한다. 그런 까닭으로 뼈가 검고 가벼우니라.” 아난이 이 말씀을 듣고 어머님 생각에 마음이 마치 칼로 베이는 것처럼 아팠다. 그래서 슬프게 눈물을 흘리며 부처님께 여쭙기를, “부처님이시여, 어머니의 은덕을 어떻게 갚아야 되겠습니까?>
 

염송할수록 절실하게 다가오는 어머니의 생각. 그리하여 부처님의 제자 목건련이 어머니 사후 그랬던 것처럼, 그 은혜를 갚아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이루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사무쳤다.
그리하여 마음이 정해지자 마침내 정으로 돌을 쪼기 시작했다. 부처님의 형상은 이미 돌 앞에 섰을 때부터 마음에 뚜렷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그는 돌 안에 부처님이 있어서 그 형상의 겉을 때내기만 하면 그 안의 부처가 본모습 그대로 드러나리라는 믿음으로 망치질을 했다. 고된 일이었다. 언제 끝날 지 알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나무 둥치를 얽어 짜서 작업대를 만들고, 그 위에서 하는 일은 위험했다.
 

선본사 스님들이 이따금 올라와 독려를 했다. 바위에 부처를 새기는 승려가 있다는 소문이 인근에 퍼져 사람들이 올라와 그에게 공양을 하기도 했다. 학이 날아와 더우면 그늘을 지어주고, 추우면 깃으로 덮어준다는 소문이 나면서 사람들은 더욱 그를 공경했다.
 

그렇게 20년이 흘러 드디어 바위 속 부처가 온전히 드러난 듯했다.
 

그는 망치질을 멈추고는 부처를 우러러보았다. 바위들이 중첩해 있는 그 위에 세워진 거대한 석불의 뒤로는 광배처럼 큰 바위가 둘러쳐져 있었다. 불상의 머리 위에는 넓적한 돌을 얹어 비를 막게 했다. 작업대를 뜯어내고 주위를 정비했다. 그런 다음 절벽 아래에서 아득히 올려다 보이는 불상에 절을 했다. 불상은 그윽한 미소를 지었다. 눈부신 미소였다. 그는 절을 하고 또 절을 했다. 어머니가 떠올랐다. 스승의 모습도 떠올랐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너무나 큰일을 마쳐서일까? 한꺼번에 피로가 몰려오면서 바위 아래 절을 하는 자세로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불상 주위로 오색구름이 덮이고, 학이 나는 게 보였다. 불상은 방광하는 상서로운 빛에 싸여 환하게 우뚝했다. 그리고 옷자락을 날리면서 온갖 악기를 연주하는 비천의 무리들에 싸여 극락으로 올라가는 어머니가 보였다. 그의 온 몸도 온통 빛에 싸여 있음이 느껴졌다.
 

그는 꿈을 깼다. 주위가 들떠있는 듯해서 돌아보니 언제 올라왔는지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절을 하고 있었다. “참으로 잘 생긴 미륵부처님이야!” “아니, 약사불이야!” 사람들이 저마다 떠들고 있었다. 그는 다시 한 번 부처를 올려다보았다. 그래, 부처님의 이름이야 공경하는 사람들에 따라 달리 불리어질 수도 있는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갓바위 부처님’이란 말도 나왔다. 그게 가장 그럴 듯하다고 여겨지기도 했다.

의현이 지극한 효도의 마음을 모아 기도와 서원으로 갓바위를 이루어낸 이후 이곳은 큰 기도처로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 사람들은 말한다. “세상 이치가 다 그렇듯 지극하면 뭐든 통한다”고. 기도야말로 가장 그러한 것이다. “아, 갓바위 갔다 온 이야기 들어보면 알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 불상이 지극한 효심으로 빚어낸 것이니, 기도가 잘 통할 수밖에 더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 세상 어떤 것보다도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이 가장 지극한 게야. 어린애가 배고플 때 어머니의 젖을 그리는 그 간절함이 이 세상에서 가장 절실한 기도의 마음인 게야. 그런 마음이 평생 동안 지어올린 것이니 영험이 없을 수 없지.”
 

그래서 갓바위 오르는 길은 그리움의 길이며, 지극한 기도의 길이며, 영험의 길이라 말해진다. 그래서 그럴까,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갓바위 기도의 영험을 이야기하는 이들이 많다.
 

갓바위 가는 길에서 잠시 만난 한 사람의 이야기. 간이 좋지 않아 사형선고를 받은 상태에서 꿈에 갓바위 부처를 만났다는 게야. 그게 무슨 서광 비치는 징조인 것만 같아서, 그 후 매일 새벽이면 과체중으로 무거운 몸을 헉헉대며 갓바위에 올라 “기왕 죽을 목숨, 부처님 앞에서 죽자”하고 절을 했는데, 어라, 석달이 지나면서 현저하게 체중이 줄더니 자신도 모르게 간이 나아 있더라나. 그래, 그래, 지극하고 지극한 기도가 살린 게지.
 

그런 얘기들이 갓바위에 가면 자주 들린다. 한 아주머니가 선본사가 펴낸 갓바위 관련 책에서 영험에 대해 밝힌 이야기도 그렇다. 뭐 이런 얘기다. 남편이 의처증 환자였는데, 감시와 의심에다 욕설과 함께 두들겨 패는 통에 남 보기 미안한 것은 물론 견디기 어려운 게 매일 매일이 지옥 같았단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이웃 아주머니가 갓바위에서 빌면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주신다며, 얼른 가보라고 했다. 그 말에 귀가 번쩍 뜨여, 막무가내로 남편 손을 잡고 갓바위에 올라 절을 하는데, 어라, 남편이 부처님 앞에 엎드려 한없이 울어대는 게 아닌가. 그렇게 포악하던 남편의 어느 구석에 그런 눈물이 남아있었는지 참 신기했다. 부부는 함께 울었다. 이상하게도 어떤 올가미에서 빠져 나온 듯한 기분이 들면서, 그날 이후 남편의 마음도 행동도 바뀌어져갔다. 그리하여 십년을 갓바위 기도를 하면서 부부간의 금슬도 좋아졌다는 게다.
 

시아버지의 병세를 기도로 낳게 됐다는 얘기는 또 얼마나 지극한지. 기도로 아들의 병을 낳게 하고,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게 됐다는 건 흔한 얘기에 속한다. 위험한 일을 갓바위 부처님이 꿈에서 미리 알려주어서 무사히 피했다는 얘기도 솔깃하게 들린다. 그런 얘기들은 언제나 ‘지극한 기도’라는 전제가 붙어서 나온다. 세상 사람들이 부지기수니, 맺힌 마음도 부지기수여서 그걸 기도로 풀려는 이들로 갓바위에는 눈이오나 비가 오나 늘 붐빈다. 팔공산 관봉 오르는 돌계단은 지극한 기도의 발길들로 닳고 닳아 반질반질하다.
이하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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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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