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혁신 엿보기] 투자와 투기, 그리고 기술혁신의 단상

  • 오종욱 CEO·웨이브릿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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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5-27 17:49  |  수정 2021-06-01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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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타 조지고 올게."

잊을만 하면 온라인에 한 번씩 올라오는 표현이다. 주식시장에서 많은 개인 투자자들이 ‘단타’성 거래를 한다. 단타란 짧은 시간에 가격의 상승과 하락을 예측하고, 하루에도 주식을 여러 번 사고팔아 시세차익을 보는 행위를 뜻한다. 

 

왜 사람들은 단타 거래를 할까. 
표면적인 이유는 '용돈을 벌기 위해서'다.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에서 사람들은 주식의 매수·매도를 통해 쉽게 돈을 벌고 싶어 한다. 문제는 신뢰하는 지인 또는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믿음의 영역'에서 묻지마 투자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행위를 ‘투자’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런 단타 거래는 게임과 비슷한 속성이 있다. 실시간으로 수익과 손실을 숫자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주식으로 돈을 벌게 되면 뇌에 즉각적인 보상을 주기 때문에 뇌에 강력한 자극으로 인식된다. 이때 쾌락 호르몬인 도파민이 과다하게 분비되면서 뇌는 점점 더 그러한 보상을 원하는 단타 거래에 중독된다.

 

하지만 ‘손실의 위험’에 대해서는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필자도 예외는 아니다. 필자는 2007년부터 펀드매니저로 활동하며 하루에도 수천억 원이 넘는 주식과 채권을 거래했다. 

 

당시 필자에게 ‘거래’는 ‘업무’였다. 1원이라도 틀리면 안 되는 정확도를 필요로 했기 때문에 돈은 그저 숫자였고, 0이 8개면 ‘억’이요, 12개면 ‘조’ 였다. 

 

이렇게 돈을 숫자로 볼 수 있었던 것은 ‘펀드의 투자설명서’라는 원칙에 따라 룰 베이스로 운용했기 때문이다. 주관적인 판단이나 수익에 대한 욕심을 최대한 배제하고 업무로만 거래했던 것이다.

 

하지만 2019년 개인 계좌로 처음 외환·채권 ‘선물’을 거래하면서 필자는 심각한 도파민 중독을 경험했다. 파생상품을 잘 아는 전문가라고 스스로 생각했고, 거시경제 지표나 시장의 매크로 흐름을 잘 본다는 자신감이 충만했다. 

 

그때 3천만 원의 초기 투자금으로 하루에 적게는 수십억, 많게는 수백억의 거래를 하면서 하루하루 내 전략이 꾸준히 돈을 벌 것이라는 확신에 차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5개월 내내 매일 거래하면서 80% 이상의 확률로, 월 10% 이상씩 돈을 벌었으니 말이다. 하루에 몇백만 원은 기본이고, 많이 벌때는 1천만 원씩도 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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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당시 거래하던 계좌의 손익.

 

“곤경에 빠지는 건 뭔가를 몰라서가 아니다. 뭔가를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 ‘빅쇼트’는 마크 트웨인의 이 명언으로 시작된다.

필자는 이후 하루에 –30%, 억 단위 손실을 경험했다. 불안과 초조함이 온몸을 지배하고, 뇌가 느끼는 공포로 일상을 영위할 수가 없었다. 이러한 손실이 왜 발생했는지 복귀해 보니 처음 거래하던 전략의 룰을 어기고, 스스로의 확신으로 시장에 도전한 것이 화근이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나도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구나.”

그때 스스로 반성하며 든 생각이다. ‘Mr. Market’이라는 단어가 있다. 시장을 사람으로, 살아있는 생명체로 비유하는 단어다. 시장의 추세는 순응해야 할 대상이지, 내 생각대로 정복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예측보다 대응’이라는 주식시장의 격언은 어떠한 격변의 시장 상황에서도 손절·익절 등 잘 대응해야 한다는 의미다. 매수보다 매도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더 개발 실력이 있었다면 ‘모든 전략이나 거래를 기계에 맡기고 자동화했을 텐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그래서 더 핀테크 기술에 몰두하며 사업을 하는 게 아닌가 가끔 생각이 든다.

최근 가장자산 시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엄청나게 높은 가격 변동은 단타 거래를 통해 얻는 수익으로 만족감(성취감)을 뇌에 보상해주다가 확신에 찰 때 큰 손실을 보는 사람이 많아질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가상자산을 단타성으로 거래한다면 거래의 최대 위험을 통제하고, 반복 가능한 전략을 만들어 조심스럽게 거래해야 한다.

2016년 알파고가 등장한 이후 5년이 지났다. 머신러닝 기술이 세상 모든 것을 자동화시켜 줄 대단한 컴퓨팅 파워라고 생각하지만, ‘로보어드바이저’라는 핀테크 기술로도 개인이 원하는 전략·거래를 아이디어부터 체결까지 자동화해 주지 못한다.

AI 기술은 금융시장에 어떻게 적용돼 개인들의 투자 생활을 자유롭게 해줄 수 있을까. 다음 칼럼에서는 금융시장에서 AI 기술이 적용된 사례와 해외 사례를 비교해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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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욱 CEO·웨이브릿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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