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눈으로 보는 G2] 안심과 괘심 사이...한미 정상회담을 보는 중국의 눈

  • 이정태 경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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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5-31 13:30  |  수정 2021-09-29 16:57

“한국이 루비콘강을 건넜다. 파부침주(破釜沉舟)의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했다. 무조건 미국의 귀책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 책임을 져야 한다.”

 

지난 5월21일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서가 발표된 직후 중국 당국의 반응이다. 중국은 이에 덧붙여 “앞선 4월16일에 있었던 미·일 정상회담 연합성명의 중국에 대한 날 선 비평과 달리 중국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결론적으로는 한국이 미국의 중국견제행동에 평소와 다른 특별한(不寻常) 행보를 디뎠다. 지금까지 강 건너 불구경하던 한국이 중국의 남해와 대만 등 고도로 민감한 문제에 대해 대화하는 수준까지 승급했는데 반드시 이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의 반응을 감성적 수준에서 평가해보면 ‘안심’과 ‘괘심’이 혼재하는 모양새다. 우선 북한에 대한 미국의 직접적 군사행동이 유보될 수 있다는 신호에 안심하는 듯하다. 

 

미국 외교가의 평가처럼 한국은 미국 쪽으로 한걸음 다가간 조건으로 미국으로부터 '판문점 선언 및 싱가포르 합의를 존중한다는 표현'과 '남북 간 대화·협력에 대한 지지' 등을 받아냈다. 

 

이는 오바마정부 시기 '참수작전'이나 클린턴정부 시절 '대북 핵공격 계획' 등 이전 미 민주당 정권의 스탠스와는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다. 중국으로선 북한문제를 외교로 풀겠다는 바이든정부의 입장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안심이다. 

 

만약 미군의 대북 군사행동이 현실화한다면 중국은 순망치한(脣亡齒寒) 역할을 하는 혈맹국 북한을 방관할 수 없을 것이고, 부득불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 입장에서 이런 상황은 최악이다. 만약 한반도에서 군사충돌이 발생하면 시진핑정부가 총력을 기울여 추진하는 '일대일로 사업'과 '인류운명공동체'의 꿈이 좌초될 수밖에 없다. 

 

인접 지역에서 분쟁이 발생하면 자본의 이탈과 시장의 단절뿐 아니라 난민문제라는 직접적인 부담도 떠안게 된다. 특히 핵과 생화학무기를 가진 북한이 분쟁 당사국이 된다면 중국도 무사할 수 없다. 

 

인류 역사를 보면 큰 전쟁을 겪은 후에는 반드시 작은 전쟁이나 분쟁이 연생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전쟁으로 피폐해진 사회·경제 문제를 무마하기 위해 각국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약탈과 침략을 자행하게 된다는 의미다. 

 

지금의 지구촌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전쟁을 치르느라 피로도가 임계점에 달한 상태이고,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천문학적 액수의 통화를 발행해 임시처방을 하고 있지만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 

 

때문에 현실주의자들의 논리처럼 코로나전쟁에서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고 피해를 입은 미국이 복구를 위해 또 다른 전쟁을 위한 희생양을 찾을 가능성이 크다. 만약 그렇다면 가장 민감하고 폭발력 있는 화약고인 북한이 가장 먼저 대상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문제를 외교적 수단으로 풀겠다는 미국의 입장 표명은 중국으로선 다행스럽고 안심되는 신호인 것이다. 또한 외교를 통해 북핵문제를 다루게 되면 중국이 주도했던 6자회담체제가 재가동될 수도 있기 때문에 중국은 자연스럽게 미국과 대화·공조할 수 있는 기제를 마련하게 된다.


반면, 바이든정부가 '남북한 간 대화·협상'을 북핵문제 해결의 단일경로로 활용할 경우 중국은 한반도게임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이 우려하는 지점이다. 트럼프정부는 시진핑정부에 북핵문제의 책임을 분담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이는 북한관리의 권한을 중국에 위임한 것이다. 하지만 바이든정부는 '남북한 간 협력'에 지지를 표명하면서 북한관리의 권한이 중국이 아닌 한국정부에 있음을 사실상 천명했다. 

 

미국이 한국에 '미사일 사거리 800km 제한'을 해제해 준 것도 중국의 심기를 건드렸다. 한국의 지정학적·전략적 역할을 기존 사회주의 방어를 위한 ‘방패’에서 중국 공격을 위한 ‘창’으로 전환시킨 셈이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 정부는 이를 대놓고 드러내지 않았고, 한국정부 역시 우주개발에 방점을 찍는 방식으로 살짝 비켜가는 영리함을 보였다.   

 

앞서 문재인정부는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미군의 주문대로 경북 성주 사드기지에 장비 및 물자보강에 협력했고, 시기와 상관없이 조건이 충족될 때 전작권을 전환한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팔레스타인 로켓포 공격의 90%를 막아낸 이스라엘의 아이언돔을 10년 내로 배치한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정상회담 직전 한국정부가 취한 이 같은 일련의 조치를 보면, 한국이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MD)의 한 축이 되는 것은 물론 미국이 추진하는 사드-패트리어트 통합추진 계획에 공조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따라서 미국 MD의 잠재적인 적이 중국이고, 사드의 잠재적 표적 역시 중국임이 분명하다고 보면 사실상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미국의 중국견제 전략에 한국이 동참한다는 서약의 자리나 다름없다. 이번 회담을 ‘한미동맹의 복원’이라고 평가하는 이유이고, 중국이 미사일 사거리 제한 철폐, 즉 미사일 지침 종료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다.


중국 입장에서는 괘심할 수밖에 없다. 중국봉쇄망을 구축하려는 것을 비롯해 애써 공들인 북한을 가로채려는 것이나 대만·남중국해 문제를 언급한 것도 불쾌하다. 

 

중국의 원래 계획은 일대일로의 한반도노선을 건설하면서 자연스럽게 6.25전쟁을 매듭짓고, 미국 주도의 동아시아질서인 샌프란시스코체제를 종식시키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야 신중국 탄생 100주년을 맞는 2049년에 소득수준 5만 달러에 달하는 세계 최강의 국가가 되거나 최소한 동아시아의 규칙제정자로 거듭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 그 계획에 차질이 빚어졌다. 바이든정부가 동맹강화 전략을 구사하면서 한국을 중국공격의 전위대로 역할 전환시킨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사족을 달 여지가 없다. 국경이 장벽으로 가로막힌 멕시코가 중국의 만리장성을 넘어 백신을 구하려는 것이나 사드보복을 당한 한국이 태평양 건너 미국을 찾는 것은 같은 이치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책임을 강조했지만 보복할 수단이 마땅치 않은 것도 중국의 고민이다. 사드 때와 달리 한국이 반도체와 전기차배터리 공급사슬의 중심축으로 자리매김했고, 미국은 이러한 한국을 위한 고산흘산(靠山吃山)의 든든한 뒷배가 될 것임을 자처한 상황이다. 

 

더욱이 바이든 정부는 한미관계를 단순 방위동맹에서 지역과 세계문제의 핵심축(linchpin)이 되는 '세계동맹'으로 승급시키겠다고 공언까지 했다. 

중국은 '미국 일변도(一邊倒)'로 급변하는 듯한 문재인정부의 행보에도 아쉬워하고 있다. 마오의 홍위병과 혁명노선에 대한 맹목적 추종과 몽상을 가졌던 한국 좌파가 중국에 크게 실망하면서 결국 이번 한미 정상회담 결과로 이어지게 됐다는 판단을 중국정부가 하고 있는 듯하다. 나아가 중국식 발전모델에 대한 불신의 표시이고, 이는 결국 한국발전을 지켜보는 세계의 많은 개발도상국가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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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처한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면 한미관계가 돈독해진 것만큼 한중관계도 협력할 여지가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정부도 이왕 루비콘강을 건넌 김에 생사결단의 각오로 미래를 향해 36계 줄행랑치는 것이 최고의 묘수다.

 

 

이정태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중국사회과학원 법학연구소 박사후 연구원(2003~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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