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문경 폐가에 8만명이 몰린 까닭

  • 백승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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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6-02   |  발행일 2021-06-02 제26면   |  수정 2021-06-02 07:14
시골 폐가, 카페로 만들어
소멸 위기 마을 기사회생
청년들의 아이디어 활용
농촌을 주거 공간이 아닌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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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운 사회부 특임기자 겸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팀장

'문경 양파밭 폐가에 8만명 몰렸다…90년대생 5인의 기적'.

제목부터 눈길을 끌었다. '8만명이 몰린 폐가?' 궁금증을 가지고 찬찬히 기사를 읽었다. 기사에 소개된 이야기는 씨줄과 날줄이 만나듯 촘촘했다. 기승전결의 구조를 가진 극본처럼 드라마틱하기도 했다. 8만명을 끌어들인 인물들의 이야기는 마치 '영웅의 서사'를 소환한 듯했다.

폐가는 다름 아닌 카페였다. 무너지기 직전인 집을 리모델링해 카페를 열었고, 입소문이 나면서 전국에서 손님들이 찾는다고 한다. 카페가 자리한 곳은 문경 산양면 현리. 고작 40명의 주민이 사는 농촌이다. 문경에서도 아주 외진 시골 동네였다.

카페는 원래 한옥이었다. 인천 채씨 집성촌인 마을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 이름은 화수헌. 1790년에 지어진 집으로 올해로 230년 된 고택이었다. 하지만 집주인은 떠났고, 사람 살지 않는 집은 불 보듯 뻔했다.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20년 넘게 방치되면서 마을의 골칫거리로 전락했다.

그러던 중 집을 해체해 옛 자재를 파는 고재상이 덤벼들었다. 골칫거리였지만 마을의 정체성이 깃든 고택을 '업자'에게 넘길 수는 없었다. 주민들은 문경시에 '집을 매입해 줄 것'을 요청했다.

엄원식 문경시 문화예술과장이 나섰다. 엄 과장은 예전부터 인천 채씨 집성촌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그에게 폐가가 된 고택은 지역의 정체성이 깃든 보물로 보였다. 다행히 폐가는 문경시가 매입하면서 새롭게 거듭났다. 리모델링 후 옛 모습을 되찾았다. 하지만 다른 문제가 있었다.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였다.

때마침 도원우(29)·김이린(31)씨 부부가 새로운 일자리와 정착할 곳을 찾았다. 부부는 경북도의 '도시 청년 시골 파견제'에 도전했다. 청년 다섯이 한 팀을 이뤄 경북도에 정착해 사업을 하면 1인당 1천만원의 생활비와 2천만원의 사업비를 1년 간(연장하면 최대 2년) 지원해주는 제도였다. 부부는 지인들을 모아 팀 '리플레이스'를 꾸렸고, 첫 90년대생 사업자가 됐다. 이후 리플레이스 팀의 눈에 들어온 곳이 바로 문경의 고택 화수헌이었다. 상권도 없는 외진 시골이었지만 자신 있었다. 공간기획 전문가, 프랜차이즈 사업가 등의 자문을 받아 카페를 차렸다. 농산물과 특산물을 직접 가공해 식음료를 만들고, 스토리텔링 했다. 흔한 재료에 청년의 감각을 입혔다. 홍보는 SNS를 활용했다.

한옥 카페는 입소문을 서서히 타기 시작했다. 평일에는 50~100명, 주말에는 최대 800명까지 방문하는 명소가 됐다. 방문객의 30% 이상이 서울·경기에서 찾을 만큼 전국구로 거듭났다.

농촌마다 빈집이 늘고 있다. 현장에서는 '빈집 수준을 넘어 빈 마을이 생기는 지경'이라고 한다. 우려되는 지방 소멸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소멸은 단순히 마을과 도시 하나가 사라지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정체성과 역사가 통째로 사라지는 것과 같다. 지자체마다 인구 늘리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승률은 낮아 보인다.

다른 해법을 찾아야 한다. 이제 농촌을 '주거와 정착의 공간'으로 고집할 때가 아니다. '복합문화 공간'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공간은 유지되고 사람이 드나들면서 되살아 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청년들의 열정과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고리타분한 정책으로는 한계가 있다. 새로운 시각과 관점이 절실하다. 그런 능력을 가진 이들이 바로 청년들이다. 농촌의 유무형 자원에 청년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더해지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만들어 질 수 있다. 서두에 '폐가 기사'를 장황하게 소개한 이유다.


백승운 사회부 특임기자 겸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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