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눈으로 보는 G2] 백신 정치

  • 변영학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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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6-21 11:52  |  수정 2021-06-22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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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6년 영국 과학자 에드워드 제너가 세계 최초로 백신을 개발했지만 백신에 대한 불신과 거부감은 의외로 컸다. 1802년 제임스 길레이는 백신 접종자의 몸에서 소가 튀어 나오는 모습을 담은 만평을 내놓기도 했다. 출처: 위키피디아

세계 최초로 백신을 개발한 사람은 영국의 의사이자 과학자인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 1749~1823)다. 제너가 백신 실험에 성공한 때는 1796년으로, 당시 영국 시민은 우두 환자의 고름을 멀쩡한 사람의 몸에 주입한다는 것에 상당한 거부감을 가졌다. 백신 접종에 대한 불신과 저항도 컸다. 이 때문에 45년이 지난 1840년이 돼서야 영국 정부 차원에서 무료 접종을 실시하게 된다. 


그로부터 200년이 흐른 지금도 백신에 대한 불신감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지구촌은 코로나19 팬데믹을 이길 유일한 방법으로 백신을 갈구하고 있다. 아우어 월드 인 데이터(Our World In Data)에 따르면 6월18일 기준 미국인 2명 중 1명(52.6%)이 1회 이상 코로나 접종을 받았다. 이는 이스라엘(63.4%)을 제외하면 유럽(37.5%), 한국(26.9%), 일본(15.8%), 인도(14.9%)보다 높은 접종율이다.

화이자·모더나·얀센 등 첨단 백신 제약사를 보유한 미국이 코로나19 백신 개발 초기 수출을 제한하고 자국 내 공급에 몰두한 결과다. 이제 바이든 행정부는 넘쳐 나는 백신을 개발도상국에 원조할 계획이다.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백신을 창고 안에서 그냥 상하게 둘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어떤 방식으로 자국 내에서 백신을 배분하고 있을까. 첨단 기술패권을 가진 국가답게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이용하고 있다.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연방정부의 알고리즘은 주별 18세 이상 인구수를 기준으로 주정부에 백신을 배당한다. 주정부는 이를 다시 지방정부(시·카운티)와 병원에 배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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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7개월 동안 1회 이상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한 주요 국가 접종자 비율. 이스라엘이 가장 높은 접종률을 보였고 미국, 유럽, 한국, 일본, 인도, 러시아 순으로 나타났다. 출처: 아우어 월드 인 데이터(Our World in Data)

문제는 연방제 특성상 각급 정부와 보건당국이 다른 배분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의료윤리 문제나 정치적 고려 등이 다양하게 개입되는데, 한 마디로 미국인은 백신 접종에 관한 한 평등하지 않다는 것이다. 예컨대 오레곤주는 노인보다 교사가 우선 접종 대상이다. 반면 뉴저지주는 교사보다 흡연자를 대상으로 먼저 접종한다.

연방정부가 설계한 알고리즘은 미국 인구통계국(U.S. Census Bureau)의 서베이 데이터를 이용한다. 이 데이터는 불법 이민자나 빈곤층 등 특정한 집단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 소수 집단에 대한 방역과 접종이 충분하지 않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몇몇 주는 연방정부의 백신 배분이 특정 주에 과잉 공급되거나 종종 배분이 취소되는 경우도 있다고 불평한다.

주정부, 시 당국, 의료기관 역시 각자의 기준으로 알고리즘을 설계해 백신을 배분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우선 접종하는 노령층의 기준이 주별로 다르고, 접종대상에 따라 가중치를 달리 둔다. 종종 알고리즘이 사고를 내기도 한다. 작년 12월 캘리포니아 스탠포드병원이 설계한 알고리즘은 의사를 우선 접종대상에서 제외시키는 바람에 난리가 났다.

문제는 또 있다. 각급 주정부와 당국이 운용하는 알고리즘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인은 보건정책 결정자와 방역전문가, 그리고 IT기술자가 설계한 알고리즘이 어떻게 작동되고, 어떻게 데이터를 가공·분석하는지 모른다.

필자가 지난해 1년간 세계 각국의 코로나19 확진자 통계를 분석한 결과,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지방분권이 잘된 나라일수록 확진자 수가 많다는 점이다. 지방정부 권한이 강하면 중앙정부 차원에서 실행하는 방역조치가 지방 곳곳에 제대로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그렇다고 지방자치를 폐지하는 것이 대책이 될 수는 없다. 결국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에 손발이 잘 맞아야 한다. 협치 거버넌스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백신 배분을 둘러싼 우여곡절이 있기는 하지만, 현재 미국은 백신 접종에서 성공적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작년 내내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백신에 대한 불신과 저항을 키웠고 자신도 코로나에 걸렸다. 그러나 코로나 위기에 힘입어(?) 집권한 바이든 행정부는 백신 접종과 방역정책에 적극적이다. 

  

제약업계와 보험자본이 장악한 최악의 의료보험제도를 가진 미국이 백신 접종에서 성공한 이유는 간단하다. 정부가 의료보험 가입 여부와 관계없이 시민에게 백신접종 서비스를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은 다른 질병과 달리 코로나 예방접종을 받기 위해 보험사 직원에게 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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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개봉한 영화 ‘조커’에서 주인공 아서 플렉이 ‘광대’에서 ‘조커’로 변신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사실 어처구니없다. 예산 부족을 내세운 고담시 보건당국이 아서의 우울증 치료를 중단했기 때문이다. 시민 건강은 정치인과 정책결정자의 책임이다. 그걸 하라고 권력을 준 것이다. 

 

 

변영학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국 텍사스주립대(오스틴)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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