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눈으로 보는 G2] 朝中조약 60년…덫에 걸린 北

  • 이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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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7-19 12:59  |  수정 2021-07-19 14:27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우호조약 체결 60년이 된 북·중 관계는 여전히 변함없이 굳건한가.

지난 11일 북한과 중국은 ‘조중 우호 및 상호원조 조약(中朝友好合作互助条约)’ 체결 60주년을 맞아 친서를 주고받았다. 양측은 코로나19 상황을 이유로 고위급 인사나 물자의 교류 없이 친서를 주고받는 수준에서 기념행사를 정리했다.

60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중국 내에서는 조약 연장 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있었지만 중국 외교부 대변인 왕원빈(汪文斌)은 ‘쌍방이 해당 조약을 수정 또는 폐기할 것에 합의하지 않는 한 계속 유효하다’는 조약 제7조를 근거로 내세우며 "자동 연장된다"고 발표했다. 중국 내에서 비등하던 북중 관계에 대한 회의론을 공개적으로 잠재운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60주년을 기념해 교환한 양측의 친서를 보면 상당한 온도차가 느껴진다. 먼저 중국 측은 "지난 60년간 쌍방은 조약의 정신에 따라 굳건히 지지하고 어깨 걸고 투쟁하면서 형제적인 친선을 강화해 왔다"며 다소 원론적인 메시지를 보냈다. 보기에 따라서는 느긋하기까지 하다.

 

반면 북측은 “조약은 적대세력들의 도전과 방해 책동이 보다 악랄해지고 있는 오늘, 두 나라의 사회주의 위업을 수호하고 추동하는 데서 더욱 강한 생활력이 있다”면서 중국에 대한 절대적 지지와 혈맹관계를 강조했다.

북한이 저자세를 취하며 드러낸 이러한 ‘다급함’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국경봉쇄, 미국의 경제제재, 자연재해 등 3중고를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조약 제3조에 “쌍방은 상대방을 반대하는 어떠한 동맹도 체결하지 않으며 상대방을 반대하는 어떠한 집단과도 어떠한 행동을 하거나 조치에 참가하지 않는다”는 규정을 모른 척한 것은 자존심을 넘어 자학의 수준이다.

겉으로는 자주와 주체를 내세우고 스스로 국경봉쇄까지 감행했다지만 중국 앞에만 서면 너무나 초라한 모습이다. 돌이켜보면 중국의 북한 무시는 한두 번 나온 일도 아니다.

1971년 북한이 전 인민을 동원해 미제타도를 외치며 군사훈련에 매진할 때 중국은 슬그머니 만리장성을 열고 미국 탁구선수 15명을 불러 핑퐁외교를 펼쳤다. 1972년에는 닉슨을 초청해 마오타이주를 먹이며 데탕트를 추구했다. 당시 '친구의 적은 적'이라던 피아와 동지 구분의 공식을 무시한 이 같은 중국의 처사에 김일성의 분노가 하늘을 찌를 듯했지만 중국은 완전히 무시했다.

한술 더 떠 중국은 한국의 북방외교에 호응해 86서울아시안게임 때 20개 종목에 520명의 선수단을 파견했으며, 이어 88서울올림픽에도 참가해 금5, 은11, 동12개를 획득했다. 급기야 냉전이 해체된 1992년에는 한국과 수교까지 단행했다.

이 같은 일련의 ‘중국 변심’에 김일성은 분을 못 이기고 결국 사망(1994년)에 이르게 됐지만, 개혁개방의 조타수인 덩샤오핑은 냉정했다. 김일성 사망 후 1997년까지 최악의 ‘고난의 행군’을 겪던 김정일의 북한을 덩샤오핑은 모른 척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불편하고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핵을 개발한다고 고집 피우는 김정일이나 아사 직전에 놓인 북한주민을 동맹이나 형제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 정치인에게 북중 우호조약 제7조는 그냥 조문의 한 줄일 뿐이다. 중국이 말하는 피로 맺은 혈맹외교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덩샤오핑의 ‘실사구시(實事求是)’ ‘흑묘백묘(黑猫白猫)’를 보면 된다. 철저히 계산적이고 실리를 추구하는 것이 중국의 외교이고 중국의 동맹관리 방법이다. 북한이 미국을 향해 미사일을 쏘고 핵무기를 준비할 때는 기특한 우방이고 혈맹이지만, 미국과 직접 거래하고 미국모델을 따르면 배신자이고 폐기물이 되는 것이다.

체결 60주년을 맞은 ‘조중우호 및 상호원조 조약’을 원점에서 복기해 보자. 이 조약은 1961년 7월11일 김일성과 저우언라이의 서명으로 발효된 북중 관계의 법적 근원이다. 핵심조항인 조약 제2조를 보면 “일방이 무력침공을 당하거나 개전 상태에 놓이면 상대방도 지체 없이 군사 및 기타원조를 제공한다”고 명시돼 있다.

과연 실현 가능한 내용일까. 북한과 중국 간에 상호 군사파견이 가능할까. 북한 유사사태 때는 당연히 중국이 자동개입할 수 있겠지만 중국 유사사태 때도 북한이 중국 땅에 군대를 보낼 수 있을까. 또 미국과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교전을 벌이면 북한은 자동개입 조항에 따라 잠수함이나 전함을 남중국해에 파견할 수 있을까. 아니면 한반도 남부지역의 미군기지라도 타격해야 할까. 

 

결국 북중 우호조약의 실체는 북한에 대한 중국의 권리를 보장한 서약서에 불과하고 북한지역을 선점할 명분을 주는 종속계약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의 북한은 중국에 대해 일편단심 구애로 일관하고 있다. 이유는 여러 가지일 수 있다. 신의주경제특구를 계획하다가 실패한 아버지 김정일의 경험을 학습한 때문일 수도 있고, 진짜 시진핑이 두려워서일 수도 있다. 중국의 도움이 유일한 희망이고 돌파구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중국의 의심을 피하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 그리고 당장 배고픈 주민을 생각해 면종복배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가 그렇듯 외교와 국가관계도 역발상이 필요할 때가 있다. 이왕 코로나로 북중 국경이 막힌 상황이라면 금단의 열매를 따서 에덴동산의 멍에를 벗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김정은의 북한은 이미 세 차례에 걸쳐 트럼프의 미국과 만남을 가졌다. 바이든과의 만남도 김정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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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태 교수

북한은 중국의 ‘혹’이나 ‘계륵’이 되지 말고 과감히 ‘조중 우호조약 60년’의 굴레에서 벗어나길 권한다. ‘동상이몽’보다는 ‘적과의 동침’에서 생존의 길이 열릴 수도 있다.  

 

 

이정태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중국사회과학원 법학연구소 박사후 연구원(2003~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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