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해킹 취약 '지능형 홈 네트워크'…당신의 집은 안전합니까

  • 김형엽
  • |
  • 입력 2021-07-27 07:20  |  수정 2021-07-27 07:40  |  발행일 2021-07-27 제13면
대구 3년 내 지어진 아파트 대부분 설치
예비전원·게이트웨이 쏙 뺀 부실시공 지적 제기
설비설치 등 법적 기준 있지만
인허가·준공심사때 확인 안해
일부지역 주민 하자심사 신청
재산권 침해 인정받는 사례도
부산·경남선 전수조사 등 진행
대구시는 "신고되면 확인" 뒷짐

#2년 전 지어진 아파트에 입주한 A씨는 최근 황당한 일을 겪었다. 갑작스럽게 아파트 전체가 정전되자 입주민들이 현관문을 열지도, 닫지도 못했던 것. 문제는 세대별로 설치된 '지능형 홈 네트워크' 시스템에 예비전원장치가 시공되지 않아 정전이 발생할 경우 제어할 방법이 없었던 것.

#한여름 에어컨을 틀어 놓고 시간을 보내던 B씨는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에어컨이 자꾸만 꺼지는 것을 발견했다. 단순히 에어컨 시스템 오류로만 여겨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B씨는 놀라운 소식을 전해들었다. 누군가 자신의 집에 시공된 '지능형 홈 네트워크' 시스템에 접속해 자유자재로 전등 및 냉난방 시스템, 심지어 연동된 카메라까지 조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최근 3년 내 지어진 대구지역 대부분의 아파트 세대 안에 시공된 '지능형 홈 네트워크'(이하 홈 네트워크) 설비가 부실하게 시공됐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위의 두 가상 사례와 같은 일들이 실제로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내 및 실외에서 현관문·조명·냉난방 등을 제어하는 홈 네트워크는 사실상 필수적으로 시공되는 설비지만 설치 기준을 따르지 않아 정전이나 해킹에 취약하거나 심지어 사생활 침해까지 발생할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일부 지역 입주민들은 국토교통부에 직접 하자심사를 신청해 '미시공으로 인한 재산권 침해'를 인정받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 같은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다.

26일 통신설계 업계에 따르면 홈 네트워크는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 제32조의 2(지능형 홈네트워크 설비)' 등 관련 법에 규정된 설비 설치 및 기술기준을 따라 설치돼야 한다. 거실 벽에 부착돼 집안 기기를 조작할 수 있는 모니터 화면인 '월패드'가 대표적이다. 정부는 2009년 설비 설치와 기술기준을 최초로 고시했고, 홈 네트워크를 설치하는 30세대 이상 아파트는 반드시 법적 기준에 따라 정전에 대비한 '예비전원장치' 및 해킹 방지를 위한 '홈 게이트웨이'를 갖춰야 한다.

이러한 기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시공 과정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예비전원장치가 없어 정전이 발생했을 때 통제력을 잃는 곳이 있는가 하면, 홈 게이트웨이가 없어 세대끼리 연결된 인터넷망을 통해 손쉽게 시스템 해킹이 가능하다.

이 같은 문제를 키우고 있는 것은 허술한 건축 인허가 및 감리 결과 검토, 준공 심사 등 때문이었다. 관련 문제에 정통한 통신설계 관계자는 "아파트를 지으면서 검토되는 대부분 서류 과정에서 홈 네트워크는 쏙 빠져있다"며 "입주민에게는 홈 네트워크가 건설사에서 선심 쓰듯 제공하는 일종의 서비스로 알려져있지만 법적 기준에 맞게 설치돼야 하는 법적 구조물이며, 해당 설비에 하자가 있다면 입주민은 재산권을 침해당한 셈"이라고 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부산과 경남에서는 전수조사를 진행하는가 하면 지역구 국회의원까지 나서 국정감사 등을 통해 바로잡으려고 하고 있지만 대구시는 현황 파악도 제대로 못 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구시 관계자는 "확인 결과 지난 19일 국토부에서 홈 네트워크 설비 설치와 관련한 공문이 내려와 관련 내용을 각 구청과 공유한 바 있다"며 "문제가 있는 아파트를 알려준다면 직접 나가서 확인할 것이지만, 대구시가 나서서 전수조사를 할 수는 없다"고 했다.
김형엽기자 khy@yeongnam.com

기자 이미지

김형엽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경제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