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눈으로 보는 G2] 중국이 서쪽으로 가는 까닭

  • 이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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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8-03 13:43  |  수정 2021-08-11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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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파키스탄을 연결하는 '중파철로' 노선도. 중국이 이 철로를 통해 파키스탄의 과다르항(중국어 표기로는 瓜達爾港)을 확보하게 된다면 미국이 설사 말라카해협(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사이 위치)을 봉쇄하더라도 인도양과 아프리카대륙 접근이 가능하게 된다.

탈레반의 공동설립자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가 지난 7월28일 중국 톈진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을 만났다. 바이든정부의 등장과 동시에 추진된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군이 8월31일로 완료될 예정인 가운데 탈레반 지도자가 중국을 찾은 것이다. 탈레반은 왜 중국에 갔을까. 

 

예정대로 미군과 나토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완전히 철수하고 나면 그 자리의 주인이 누가 될지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현재 아프가니스탄 집권세력은 국가안보군이지만 탈레반이 빠른 속도로 세력확장에 나서고 있다. 지금 추세라면 탈레반이 국가안보군을 밀어내고 아프가니스탄 전역을 장악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물론 호락호락하지는 않은 듯하다.  
 

미국은 9·11테러 발생 직후인 2001년 10월7일부터 17년 동안 아프칸전쟁의 진흙탕에 빠졌다. 2천400명을 희생하고 2억 달러 이상의 전비를 소모했다. 지난해 탈레반과 평화협정에 합의하고 철군을 결정했다고 하지만 본전 생각이 간절할 것인데 순순히 물러날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실제 철군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미군과 나토군은 전략폭격기를 동원해 탈레반을 압박했다. 미국이 아프칸정부에 위임한 권리를 무시하고 언제든지 복귀할 수 있다는 경고성 메세지로 읽힌다. 
 

국제여론도 탈레반에 부정적이다. 탈레반이 행한 전례를 비춰보면 탈레반의 등장은 아프가니스탄은 물론 인근 지역을 혼란스럽게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인접한 중국도 부담되기는 마찬가지다. 탈레반이나 테러리스트들이 중국과의 접경지역인 신장으로 잠입하게 되면 아프가니스탄의 혼돈이 중국으로 전이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중국은 실제적인 힘과 권력을 가진 탈레반을 대화 파트너로 인정할지, 아니면 미국·나토와 더불어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을 지원할지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이 중차대한 선택의 시간에 탈레반 지도자가 중국을 찾은 것이다.
 

중국 지도부는 탈레반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는 듯하다. 앞서 왕이 외교부장과 타지키스탄 외무장관은 지난 7월13일 회동을 갖고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의 주요 군사력으로서 국가에 대한 책임을 깨닫고 모든 테러세력과 결별하고 아프칸 정치의 주류로 돌아갈 것'과 '모든 테러리즘과 극단주의 이념에 단호히 맞설 것'을 촉구했다. 조건이 맞으면 탈레반을 아프가니스탄의 대표적인 권력기구로 인정할 수도 있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탈레반이 공인된 정부가 되든 아니든 현재 아프칸의 핵심세력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중국은 탈레반을 통해 다른 테러조직을 통제할 수 있다면 불편할 것이 없다. 특히 탈레반이 중국의 동투르크 문제나 신장위구르지역의 독립문제와 연계되지 않는다면 이이제이(以夷制夷)라는 전략 면에서 오히려 반미(反美) 노선을 취하는 탈레반이 좋다. 

 
왕이 외교부장이 제시한 ‘테러리즘과 극단주의의 배격’이라는 조건은 중국·러시아와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참여하는 상하이협력기구의 정신에 명기된 내용이기도 하다. 결국 중국이 탈레반을 상하이협력기구의 틀 속에서 관리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중국은 8월 중순 반미공조와 아프가니스탄 대응강화를 목적으로 중국 영내에서 러시아와 대규모 연합훈련을 진행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중국의 탈레반에 대한 집착은 미국을 상대할 파트너라는 이유도 있지만, 아프가니스탄의 지정학적 위치와 전략적 가치도 한몫한다. 중국과 이란의 중간지대에 위치한 아프가니스탄은 동·서아시아를 잇는 회랑 역할을 한다. 2001년 9·11테러로 인해 아프가니스탄 통로가 단절되기 직전까지 중국은 아프가니스탄을 경유해 이란-유럽으로 가는 도로를 건설 중이었다. 브레진스키가 가정한 미국을 위협하는 시나리오 중 하나인 러시아-중국-이란의 결합이 목전에 이른 상황이었다. 이에 미국은 9·11테러를 핑계로 아프가니스탄전쟁을 일으키면서 중국의 서진 통로를 봉쇄한 것이다.


2013년 시진핑 중국정부는 '일대일로' 사업을 추진하면서 실크로드 경제벨트전략을 복원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유라시아 대륙을 주축으로 하는 북선(北線, 베이징-러시아-독일-북유럽) △석유천연가스와 송유관을 중심으로 하는 중선(中線, 베이징-시안-우루무치-아프가니스탄-헝가리-파리) △초국가 고속도로를 중심으로 하는 남로(南路, 베이징-중국신장 남부-파키스탄-이란-터키-이탈리아-스페인) 등 세 가지 노선을 구상했다. 
 

아프가니스탄은 바로 중선의 핵심지역이면서 남로의 중심지역인 파키스탄과 접해 있다. 특히 파키스탄의 과다르항은 중국 신장의 카스와 '중파철도'로 연결돼 3통(三通), 즉 통로(通路), 통항(通航), 통상(通商)의 중심거점이다. 중국은 과다르항을 차항출해(借港出海), 차항입륙(借港入陸)을 위한 거점으로 확보하려 한다. 


만약 중국이 과다르항을 확보하면 미국이 말라카해협을 봉쇄하더라도 인도양과 아프리카대륙 접근이 가능하게 되는 것은 물론,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 범위를 벗어나 안전한 수송로를 확보하게 된다. 때문에 중국이 과다르항을 확보하고 말레이반도에 크라운하 건설을 완성하게 된다면 미국의 말라카해협 봉쇄는 무용하게 된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을 궁지에 몰아넣은 것과 같은 해상봉쇄는 어려워진다는 의미다. 


미국의 해상전력으로 오만해역과 말라카해협을 동시에 봉쇄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남중국해와 페르시아만 양쪽에서 상황이 발생하면 미국은 태평양과 인도양 양쪽에 전선을 구축해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생긴다. 역으로 중국은 태평양과 인도양을 분리하고, 해상전력과 육상전력을 동시에 투입하는 상황을 만들면 미국을 궁지로 몰 수 있다.

 
중국이 노리는 것도 바로 이 점이다. 유사시 해상수송로 확보도 중요하지만 미국의 전력을 분산시켜야 대만과 동아시아를 취할 수 있다. 특히 중국-파키스탄 노선은 파키스탄의 주요 도시, 고속도로와 연계돼 건설되기 때문에 교통인프라 건설이 완료되면 자연스럽게 주요 도시와 항만을 중심으로 페르시아만 연안국가와 호르무즈해협 주변의 이란, 이프카니스탄, 인도의 도시들이 상호 연결되고 시장이 통합된다. 
 

지역 내 경제적 상호관계가 활성화하고 협력의 필요성이 강해지면 상권 보호를 위한 공동의 노력이 진행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미군 등 위협요인에 대한 거부 또는 배척의 공조 의식도 형성될 것이다. 이것이 중국이 기대하는 바다. 해양거점 확보 과정에서 인접지역과 연계하고 중국 주도의 공조체제를 구축해 나가는 것, 중국이 서진(西進)해 아프가니스탄으로 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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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태 교수

이정태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중국사회과학원 법학연구소 박사후 연구원(2003~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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