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정의 소소한 패션 히스토리] 복잡 다양한 1990년대, 힙합부터 젠스타일까지… 극과 극, 다양하게 공존

  • 한희정 계명대 패션디자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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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9-10   |  발행일 2021-09-10 제37면   |  수정 2021-09-10 08:42
낡은듯 찢어진 그런지룩, 반항이미지
환경문제 생각하며 미니멀리즘 대두세기말 임박하자 어둡고 불안한 느낌
크롭톱에 통넓은바지, 지금 다시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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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에서 영감받은 그런지 룩. 〈출처:COOL TM-WGSN.com〉

근래 여성패션에서 밀착된 짧은 길이의 티셔츠와 헐렁한 청바지, 그리고 반소매 재킷의 유행은 1990년대를 떠오르게 한다. 20~30년 전 신세대인 X세대의 패션스타일과 유사한 현재 MZ세대의 패션을 보면 아련한 추억과 시대적 감성 그리고 보다 세련되게 변신한 디자인에 대한 새로움, 시장의 흐름 등 다양한 생각이 든다. 이와 같이 현재 레트로 유행의 중심이 되고 있는 1990년대는 20세기에서 21세기로 향한 징검다리의 시대면서 PC의 일반화와 정보네트워크 확장으로 글로벌 사회, 문화, 패션의 근간이 이루어지는데 밑바탕이 된 시대라 할 수 있다.

1990년대 세계는 미국과 소련 중심의 정치 이데올로기는 퇴조하고 경제적 다극체제로 전환되는 양상을 보였다. 중국은 경제적으로 급성장하였고 북미 무역지대, 유럽 연합, 아시아 신흥 국가 등으로 다극화되면서 사회문화적 다각화와 교류의 움직임이 확장되었다. 패션 역시 이전에 1960년대, 70년대, 80년대의 약 10년 단위로 각 시대를 대표하는 패션스타일을 손꼽을 수 있었다면 1990년대는 유행스타일의 종류도 많아지고 유행시기도 더욱 빨라져 이 시대를 대표하는 스타일을 한두 가지로 꼽기가 어려워졌다. 그런지 룩, 힙합 스타일, 에스닉 룩, 젠 스타일, 미니멀리즘, 미래주의, 믹스 앤 매치 등 다양한 스타일과 함께 1950년대와 60년대의 레트로 룩도 인기를 끌어 더욱 복잡 다양한 패션으로 가득했다.

대표적인 1990년대 패션스타일을 살펴보면 우선 힙합패션을 들 수 있다. 1980년대에 시작된 힙합패션은 국내에서 1990년대 초반 서태지와 아이들의 인기를 통해 젊은 층에 대확산되었다. 몇 사이즈는 크게 보이는 티셔츠와 재킷, 간신히 골반에 걸쳐진 헐렁한 배기(baggy) 바지, 야구 모자가 인기를 끌었고 남성 힙합스타일에서는 골반 아래로 내려진 바지허리선으로 속옷이 보이게 되어 속옷 팬티의 허리 고무밴드에 커다란 브랜드 로고가 찍히는 등 겉옷에 이어 속옷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힙합스타일과 함께 1990년대는 기성세대의 상위 패션과 대치적인 젊은 층의 다양한 하위문화 패션이 유행하였다. 1980년대 여피족(Yuppie)으로 대표되는 엘리트 주의에 반해 나타난 것으로 낡아 헤진 듯하고 찢어진 의상으로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그런지(grunge) 룩은 현실에 다소 냉소적이고 반항적인 이미지를 연출하였다. 이에 새로운 감성의 패션디자이너들은 패션디자인의 원천으로 이들을 사용해 명품패션에서도 우아한 스타일 뿐 아니라 독특하게 해석된 젊은 세대의 하위문화 패션도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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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실루엣과 구조의 미니멀 스타일. 〈출처:Fashion East-WGSN.com〉

이전에도 마찬가지였지만 산업발달에 함께 따라오는 것은 환경문제다. 1990년대는 과학 기술 및 산업의 발달에 따른 환경 문제가 더욱 대두되어 환경보호 단체의 활동도 확장되었고 대중적으로도 에콜로지(ecology) 패션과 그린 마케팅이 이루어졌다. 베이지·브라운 등 자연적인 색감과 천연소재 등을 사용하고 편안한 실루엣의 에콜로지 패션은 자연이라는 주제어를 새기면서 환경오염에 대해 대중적으로 더욱 각인시켰다. 이러한 움직임은 패션에서뿐만 아니라 방향제도 숲속 향기가 나는 제품이 출시되는 등 생활 곳곳에서 나타났다.

이러한 에콜로지 패션과 함께 1990년대 중후반 패션, 인테리어, 라이프스타일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젠(禪, Zen) 스타일을 들 수 있다. 젠 스타일은 미니멀리즘과 어울려 더욱 유행하였고 그 패션과 인테리어는 당시 국내 영화인 '텔 미 썸딩'과 '정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젠스타일과 미니멀리즘의 복합적 스타일은 검정과 흰색, 회색, 갈색 톤의 중성적 색과 직선적인 실루엣으로 미니멀리즘의 정수를 보여주었고 단추마저도 감춘 속단추 여밈의 재킷이 인기를 끌었다. 젠스타일의 인테리어에서는 낮은 높이의 침대와 거실 테이블, 회색·갈색 등의 중성적 색의 수건, 특히 짙은 밤색과 흰색이 조합된 부엌 싱크대 등이 한동안 인기를 끌었다. 또한 뉴욕 등 세계적 패션도시에서도 젠스타일의 레스토랑이 유행의 아이콘으로 주목받았다.

1990년대 중후반은 20세기에서 21세기로 변하는 세기말로 공상과학영화의 하늘을 나는 자동차가 있는 새로운 희망적인 환상과 노스트라다무스의 지구멸망 예언 등 어둡고 불안한 분위기가 교차하는 시기였다. 영화도 '인디펜던스 데이' '매트릭스' '제5원소' '맨인블랙' 등 지구의 위기 및 멸망, 외계인과 관련된 주제가 많았고 국내 영화에서는 '세기말' '텔 미 썸딩' '해피엔드' 등 어두운 분위기의 영화가 다수 개봉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패션과 화장법에서도 영향을 주어 사이버 느낌의 미래주의적 패션과 어두운 느낌의 검정색 패션 그리고 그 시대 가수 이정현과 엄정화의 화장에서 볼 수 있듯이 짙은 색의 올라간 눈썹과 입술보다 크게 그린 검붉은 색의 립스틱에서 세기말적 분위기를 찾아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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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정 계명대 패션디자인과 교수

이렇듯 1990년대 패션은 세기말 분위기와 다양한 패션이 복합적으로 나타난 시대였다. 이전부터 지속된 포스트모더니즘의 해체주의와 절충주의적 양상, 이분법적 성역할에서 벗어난 젠더리스(genderless), 레트로와 미래주의의 병합 등은 패션과 맞물려 1990년대를 마감하고 21세기의 문을 열었다. 이전과 다른 1990년대의 시대적 환경으로 구찌·루이뷔통 등 글로벌 명품브랜드는 그간의 스타일에서 변화가 필요하게 되어 톰 포드, 마크 제이콥스 등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영입하였고 이후 2000년대 들어 또 다른 시대적 변화로 알렉산드로 미켈레와 버질 아블로 등을 영입하여 브랜드 스타일을 교체한 것을 보면 급변하는 사회에서 디자이너가 시대적 감성을 읽고 그것을 디자인으로 풀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느껴진다. 그런지 룩이 올가을·겨울 유행의 한 스타일로 온다고 한다. 작년에 입었던 청바지와 셔츠의 올을 풀고 헐렁하게 겹쳐 입는 나만의 그런지 스타일로 꾸며보는 것도 나름 재미있을 것 같다.
한희정 계명대 패션디자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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