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눈으로 보는 G2] 美 제국과 아프간 난민, 그리고 K-미라클

  • 변영학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군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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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8-30 14:36  |  수정 2021-11-02 08:59

지난 8월15일 탈레반 반군의 수도 카불 탈환 이후 아프가니스탄이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수많은 아프간인이 미국 군용기의 날개와 바퀴에 매달리다 떨어져 죽는 장면이 전 세계에 타전되면서 아프간은 하나의 비극적 스펙터클이 되었다.

8월31일 철수 시한을 앞두고 미군이 허둥지둥하는 와중에 또 다른 극단주의 단체인 이슬람국가 호라산(IS-K)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카불에서 폭탄테러를 자행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철수와 함께 이들에 대한 보복을 다짐했고 실제 두 차례에 걸쳐 군사 공격이 이뤄졌다.

사실상 미국이 20년전쟁에서 탈레반에 패퇴했다. 과거 영국이 그랬듯, 옛 소련이 그랬듯 아프간은 미국에게도 '제국의 무덤'이 됐다. 험준한 산악지형, 가혹한 기후, 무장세력의 끈질긴 저항은 제 아무리 미국이라도 넘을 수 없는 장벽으로 각인됐다.

미군 점령을 도왔던 현지 아프간인은 공포에 휩싸였다. 1989년 소련군을 격퇴시키고 1996년 정부를 수립했던 탈레반이 당시 펼쳤던 무자비한 야만적 공포정치를 부활시킬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탈레반 정부 입장에서 보면 미군과 한국군을 도왔던 아프간 협력자는 제국주의의 부역자이자 민족의 배신자다. 때문에 이들이 느끼는 공포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바이든 행정부의 철군 방식에 비판적인 미국인조차도 아프간 난민 문제에 관한 한 대체로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81%가 아프간 협력자의 지원에 동의했다. 민주당 지지자의 90%와 공화당 지지자의 76%가 동의할 정도니 사실상 난민 수용을 미국인 대부분이 지지한 셈이다.

BBC에 따르면 8월26일 기준 영국이 아프간 난민 약 1만 3천명을, 독일이 약 5천2백명을 수용했으며 8만2천명의 난민이 미국에 입국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고 미국 정부가 모든 난민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상당히 '선택적'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미국 정부는 아프간 점령에 협력한 현지 조력자만 받아들이고 있다.

이런 조건부 입국은 미국의 세계 지배에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전략적'이기도 하다. 철수하더라도 미국에 협력한 사람은 끝까지 책임진다는 제국의 환상을 심어주고, 그 결과로 그들의 충성심을 끌어내거나 유지하게 하려는 의도다.

미국이 세계에 뻗은 '제국의 촉수'는 상상을 초월한다. 약 20만명의 미군이 177개 국가에 주둔해 약 800개의 군사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운영 비용은 무려 1천억 달러(한화 약 120조 원)에 달한다. 미군은 주로 동아시아(한국·일본), 유럽(독일·이탈리아·영국), 중동(사우디·이라크·터키)에 집중돼 있는데 기본적으로 소련과 중국의 남하를 막는 '봉쇄벨트' 기능이 있는 지역이다. 

 

하지만 안정적인 동아시아·유럽과 달리 중동은 미국의 기대처럼 효과적인 지배가 어렵다. 독특한 이슬람운동, 반서구주의, 종교분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번 20년전쟁에서 미국이 패배한 이유이기도 하다.

'세계의 제국' 미국이 정작 난민 문제에 관한 한 자유로운 편이란 점은 미국에게 큰 행운이다. 대서양과 태평양으로 격리된 섬 대륙에 위치해 있어서다. 난민이 많이 발생하는 구대륙에서 전쟁을 피해 비행기나 배를 타고 신대륙인 미국으로 건너가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난민은 기본적으로 인근 국가로 걸어서 이동하거나 조그만 보트를 타고 소규모 바다만 건널 수 있다. 전쟁이 발발한 자신의 나라 옆의 또 다른 불안한 나라로 갈 수밖에 없다. 실제 난민의 88%가 가난한 이웃 개도국으로 간다. 시리아 난민은 이웃 터키로, 베네수엘라 난민은 콜롬비아로, 아프간 난민은 파키스탄으로, 남수단과 콩고민주공화국의 난민은 이웃 우간다로 간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가. 2018년 제주도에 500명이 넘는 예멘인이 갑작스레 무비자로 입국했을 때 한국사회는 크게 당황했다. 2010년 12월 유엔난민기구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 성인의 53%가 난민 수용에 대해 반대했다. 찬성은 33%에 그쳤다. 하지만 한국이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면서 국제사회에 대한 책임도 커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최근 아프간에서 성공적으로 수행한 작전명 'K-미라클'은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끌고 있다. 한 명의 낙오자 없이 390명 전원 국내로 수송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들은 모두 한국에 협력했던 현지 아프간인과 그 가족이다. 미국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한국군의 현지 조력자를 선별해서 받아들였다. 일본 언론은 한 명도 수송하지 못한 자국의 전략 부재와 비교하며 한국의 작전 성공을 부러워했다.

국내적으로도 이번엔 비교적 차분하고 호의적으로 난민 문제에 대처했다. 충북 진천 군민은 인재개발원에 입소한 아프간 ‘특별기여자’를 위해 환영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보수언론 역시 이를 수긍하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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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학 교수

미국과 마찬가지로 한국은 난민의 대량 유입으로부터 자유로운 나라다. 기본적으로 육로나 해로로 대량 입국이 사실상 불가능한 지리적, 혹은 정치지리적 특성을 갖고 있다. 더구나 우리 정부의 난민 인정률은 인색하기로 유명하다. 1994년부터 2021년까지 고작 1.5%에 그치고 있다. 한국이 무작정 수많은 난민을 받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감내할 정도는 수용하는 것이 어떨지, 또 수용 범위와 기준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변영학<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군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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