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따라 상주 여행 .11] 상주향교, 고려 말 최자의 보한집 최초의 기록...창건은 훨씬 이전 추정

  • 류혜숙 작가·박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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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9-13   |  발행일 2021-09-13 제11면   |  수정 2021-09-13 08:05
함창향교 대성전에는 5성, 송조4현,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안
'배우고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유교의 근본 문헌인 논어의 첫 부분에 나오는 말이다. 여기서 배움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예(禮)다. 공자가 말하는 예는 주나라의 문물, 사상, 제도, 전통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이는 곧 문(文)이기도 하다. 공자는 출신 성분이나 사회적 지위에 상관없이 제자들을 받아들였다. 그는 가르침에는 차별이 없고, 배우고자 하는 이에게는 누구에게나 배움의 문을 열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보수와 혁신이 공존하는 이러한 유교의 가르침을 외적 질서로 드러낸 곳이 바로 오래된 학교, 향교다. 기교는 없다. 엄격한 질서의 체계는 지엄하나 경직되지 않았다. 질서란 지배적 위계가 아닌 예(禮)로 이루어진 위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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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향교 명륜당. 강학 공간으로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에 맞배지붕 건물이다. '명륜'은 인간사회의 윤리를 밝힌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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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향교의 제향 공간인 대성전은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서울 문묘 및 성균관 대성전 다음으로 큰 규모다.
상주향교
정면 5칸 대성전 국내 세번째 규모
조선 중기 건립 당시 원형 잘 간직

#1. 상주향교
은행나무와 소나무가 높고, 또한 남루가 높다. 정면 5칸, 측면 2칸에 2층 구조인 남루는 1층의 가운데 3칸이 누하문으로 상주향교의 외삼문 역할을 하고 있다. 저절로 허리를 굽혀 누하의 계단을 오르면 정면으로 천천히 명륜당이 떠오른다.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에 맞배지붕 건물이다. 양쪽에는 정면 5칸의 동재와 서재가 단정하고 고요하게 정좌해 있다. '명륜(明倫)'이란 인간사회의 윤리를 밝힌다는 뜻이다. 맹자의 등문공편에 '학교를 세워 교육을 행함은 모두 인륜을 밝히는 것이다'라고 한 데서 유래했다. 이곳에서 90명이나 되는 많은 학생들이 공부했다고 한다.

명륜당 뒤로 내삼문이 높이 서 있다. 담장으로 구분된 일곽 안에는 제향 공간인 대성전과 동무, 서무가 자리한다. 대성전은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서울 문묘 및 성균관 대성전 다음으로 큰 규모다. 돌을 다듬어 높은 기단을 쌓고 원형의 초석을 놓아 원주를 세웠다. 전면의 반 칸은 퇴칸으로 개방되어 있으며 가운데 어칸에는 쌍여닫이문, 좌우 협칸에는 외여닫이문을 내었다. 내부에는 5성(五聖), 송조4현(宋朝四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동무와 서무는 정면 10칸, 측면 1.5칸으로 서울 문묘와 경주향교 다음으로 큰 규모다. 기단과 처마도리를 경사지에 맞춰 건물 전체 높이는 같게 하고, 양쪽 끝에 처마도리를 받치는 보조기둥을 세웠다. 기둥과 인방재가 가로·세로로 이루어진 격자형의 골격에 회벽으로 마감한 벽면에 최소한의 창호를 두었다.

대성전과 동·서무는 조선중기에 중창된 뒤 위치의 변경이 없다. 몇 차례의 수리과정이 있었지만 규모와 구조, 형태는 조선 중기 건립 당시의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 상주향교의 대성전과 동·서무는 지난해 말 보물 제2096호로 지정됐다.

상주향교가 언제 처음 건립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고려 말 최자(崔滋)의 보한집(補閑集)에 상주향교 관련 기록이 최초로 나타나는데 창건은 훨씬 더 이전으로 추정된다. 상주는 고려와 조선시대 동안 상주목으로 경상도 지역의 행정, 사법, 군사의 중심지였다. 때문에 고려 성종 6년인 987년 12목에 향교를 설치할 때 창건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성종 11년인 992년에는 경학박사 전보인(全輔仁)을 교수로 임명하여 학문을 부흥케 했다는 기록도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세종 8년인 1426년에 판목(判牧) 조치(曺致)가 남루(南樓)를 세우고 홍여방이 기(記)를 썼다고 한다. 성종 15년인 1485년에는 목사(牧使) 강구손(姜龜孫)이 성전(聖殿)과 재(齋)와 루(樓)를 중수했다.

하지만 상주향교는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탔다. 전란 후 광해군 10년인 1618년에 목사 정호선(丁好善)이 정경세와 더불어 중수하고 이준(李埈)이 상량문을 지었다고 한다. 고종 29년인 1892년에 목사 유병주가 다시 중건했고 이후에도 여러 번의 중수와 보수가 있었다고 전한다.

1949년 9월 1일, 상주향교는 '상주고등공민학교'가 됐다. 1950년 제1회 입학식을 치렀고, 이듬해 '남산중학교' 설립 인가를 받아 수업을 시작했다. 명륜당은 교무실로 쓰였고 규모가 큰 동무와 서무는 교실로 사용됐다. 그러던 중 1961년 화재로 잿더미가 되었는데 그 후 1989년 내삼문 신축, 1991년 명륜당 복원, 1992년에 서재 복원, 1994년 고직사 이건, 1995년 외삼문 신축 등이 이루어져 어느 정도 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향교의 규모는 대개 고을의 크기와 비례하는데 건물이 지어진 형식과 규모에 따라 대설위(大設位), 중설위, 소설위의 3등급으로 나누어진다. 상주향교는 대설위 향교다. 또한 경사가 심한 대지를 4단으로 조성한 입면구성에 전학후묘(前學後廟)의 정형화되고 엄격한 배치구성이 돋보인다.

외삼문에서 대성전에 이르는 위계의 질서는 스스로를 다잡는 긴장을 낳는다. 질서 속에 정좌한 평안한 긴장이다. 대성전 앞에 서면 시선은 마당의 텅 빈 공간을 가로질러 내삼문과 명륜당의 지붕 위로 펼쳐지는 세계와 마주한다. 가슴이 시원하다. 상주향교는 지금도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대성전에서는 매년 봄과 가을에 공자를 비롯한 옛 성현들의 학덕을 추모하는 석전대제(釋奠大祭)를 봉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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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함창읍 교촌리의 경사진 언덕에 자리한 함창향교. 길 옆 고목은 평온한 그늘을 만들고 계단 위 외삼문은 높다. 함창향교는 1398년(태조 7) 객관이 있던 구향리 언덕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지만 정확한 기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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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창향교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툇간을 설치하고 내부는 장마루를 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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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창향교 내부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명륜당이 보인다. 누각형식의 전면이 당당하다.

함창향교
1417년 조선 태종때 현위치 이건
임란 겪으며 소실 여러차례 중수
3단 대지에 '전학후묘' 건물 배치

#2. 함창 향교
상주의 북동부에 위치한 함창읍(咸昌邑)은 아주 옛날 고령가야국(古寧伽耶國)이었다. 신라 시대에는 고동람군, 고령군 등으로 불리다가 고려 현종 때 상주목에 귀속되어 함창이라 했다. 고려 명종 2년인 1172년에는 따로 감무를 두었고 조선시대에는 현령이 파견되는 독자적인 지역이 됐다.

함창읍 교촌리의 경사진 언덕에 함창향교가 자리한다. 초입의 도로가에 함창향교 표지석이 서 있는데 뒷면에는 극기복례(克己復禮)라고 새겨져 있다. 이는 논어에 나오는 말로 자신의 사욕과 욕망을 극복하고 예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민가들을 지나 가파르게 굽어 올라가는 길 가에 외삼문이 높다. 계단 위 솟을대문이라 더욱 높게 느껴진다. 함창향교는 조선 태조 7년인 1398년에 객관이 있던 구향리 언덕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지만 정확한 기록은 없고 태종 17년인 1417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건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없어진 것을 광해군 9년인 1617년에 다시 구향리로 옮겨지었는데, 인조 14년인 1636년에 지금의 위치로 다시 한 번 옮겼다고 한다. 1907년에 현감 이종호(李鍾浩)가 명륜당을 중수했고, 1972년부터 1987년까지 동재와 서재 및 명륜당을 크게 수리했다.

내부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명륜당이 자리한다. 경사진 땅을 3단으로 조성하고 남북 축선을 기준으로 남쪽에 명륜당, 북쪽에 대성전을 배치한 전학후묘 형식이다.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가운데 세 칸은 대청, 양쪽 끝에는 온돌방을 두었다. 전면은 누각 형식으로 당당하고 대성전과 마주하는 후면은 단층으로 경사지를 이용한 겸양이 드러나 있다. 대성전 영역은 아주 높다. 내삼문의 맞배지붕 위로 대성전의 맞배지붕이 크고 가지런하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툇간을 설치하고 내부는 장마루를 깔았다. 어칸은 넓은 편으로 두리기둥을 세웠다. 대성전에는 5성, 송조4현,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명륜당과 대성전 사이에 동재와 서재가 양쪽으로 자리해 사각의 안마당을 형성하는데 흔하지 않은 구성이다. 동재와 서재는 석축을 높이 쌓고 정면 2칸, 측면 2칸의 건물을 올렸다. 강당에 비해 매우 작은 편이지만 두 칸의 방에 각기 다른 크기의 문을 달아 조형미가 돋보인다. 외삼문 밖에서 담벼락을 따라 위로 올라가면 향교 관리를 위한 건물과 전사청이 있고 전사청 옆으로는 안마당과 대성전 영역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는 협문이 있다. 현재 상주 함창 향교는 경북도 유형문화재 제46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봄과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한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참고=문화재청 누리집.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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