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눈으로 보는 G2] 중국이 파이브 아이즈에 주목하는 이유

  • 이정태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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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9-29 16:43  |  수정 2021-11-02 08:58

중국 지도부와 전문가 그룹이 한국의 ‘파이브 아이즈(Five Eyes)’ 가입 여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며 강력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미 하원 군사위원회가 지난 9월1일 한국·일본·인도·독일 등을 파이브 아이즈에 추가하는 2022 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 개정안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파이브 아이즈는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첩보동맹으로, 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 영어권 5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기밀정보 동맹체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전후 세계’의 구상을 위해 마련된 대서양 헌장에 기원한다. 

 

냉전시기 옛 소련과 동구권의 통신을 도·감청하기 위해 에셜론(Echelon·세계 최대 규모의 통신정보감청시스템)을 개발하고, 이들 장비를 통해 전 세계의 사적 통신망 수십억 개를 감시하는 첩보시스템으로 발전했다. 파이브 아이즈는 2013년 미국 국가안보국(NSA) 요원이던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실상이 알려졌으며, 상대방 국가의 국민을 서로 감시하고 수집한 정보를 공유한 사실도 드러났다.

최근 미국이 국방수권법을 통해 파이브 아이즈에 한국·일본·인도·독일을 추가한 것은 결국 냉전 시기 소련 감시용 파이브 아이즈를 업그레이드해 중국 감시 및 견제를 위한 용도로 활용하겠다는 의미로 분석된다. 가입 국가의 확대와 기술보강이 이뤄지면 군사안보는 물론 기술·무역·이념 등 다방면에서 중국을 압박하는 수단이 될 것이 명백하다.

특히 인접 국가인 한국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에 이어 파이브 아이즈까지 수용하게 된다면 중국 입장에서는 전략적으로 심각한 위협요소가 된다. 

 

중국외교부장 왕이가 급히 한국을 찾은 날은 지난 9월15일이다. 당시 우리 정부 인사들은 유엔총회 참석을 앞두고 있었는데, 출국 직전 왕이가 방한한 것이다. 중국 정부가 얼마나 다급하게 움직였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왕이는 “파이브 아이즈가 완전히 냉전시대의 산물이고 이미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견제에 나섰다. 이유는 자명하다. 지난 5월 정상회담을 가진 한국과 미국이 △한국의 미사일 사거리 제한 철폐 △대만해협의 평화유지 △미국의 인도태평양구상 협력 등의 거래를 했다는 전례에 비춰 한국 정부가 이번 미국 방문에서 파이브 아이즈 가입을 수락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의심한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왕이의 한국방문 일자에 맞춰 북한이 ‘북한판 토마호크’라 불리는 장거리 순항미사일을 발사한 사실이다. 이를 두고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중국의 통제에서 벗어난 행위라고 평가했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왕이의 한국 압박을 지원하려는 의도로 보는 게 타당하다. 

 

결과적으로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뉴욕에서 중국의 대변인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긴박한 외교전쟁의 순간에 왕이가 타이밍을 맞춰 방한한 것을 보면 중국이 ‘망각의 시간’을 활용한 고도의 외교술책을 구사한 것이라 보여진다.

근대 시기에도 이와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 일본을 방문했던 김홍집에게 황준헌이 '조선책략'을 내밀며 친중국(親中國) 결일본(結日本) 연미국(聯美國)을 권했는데, 당시 조선 정부는 부지불식 간에 중국의 권유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 의도 이면에는 공동의 적으로 설정된 러시아가 있었다. 지금 중국 정부는 근대의 러시아나 냉전 시기의 소련처럼 고립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적절한 타이밍에 방한하고 북한의 공조까지 끌어내 한국정부를 압박한 것이다.

중국이 파이브 아이즈에 민감한 이유는 사드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미사일 방어망이나 첩보동맹 구축은 모두 정보전쟁과 관련된 민감한 전략사업인 동시에 미래산업이다. 지금까지 파이브 아이즈가 해저케이블을 비롯한 유·무선망을 도청하거나 감청해 정보를 수집했다면, 향후의 파이브 아이즈는 위성을 활용한 최첨단 기술과 장비를 동원할 것이다. 한국·일본·인도·독일이 선택된 것도 정보통신기술과 시장을 가진 국가이기 때문이다.

파이브 아이즈가 '나인 아이즈(Nine Eyes)'로 확대되면 중국을 감시하는 눈이 많아져 상대적으로 중국은 취약한 상황에 놓이게 되고, 동시에 중국의 정보통신 시장이 제약될 가능성이 커진다.

또 다른 측면은 첩보동맹 파이브 아이즈가 우주전쟁을 위한 위성동맹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미국의 GPS와 유럽의 갈릴레오가 결합해 기술과 성능 면에서 획기적인 개선을 도모하게 된다면 중국이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는 '베이더우(北斗·중국이 독자 개발한 위성항법 시스템)'의 상용화에 지장이 초래된다.

현재 위성항법장치는 차량·항공기·선박 등 교통수단뿐 아니라 스마트폰을 비롯한 모든 통신장비에 장착돼 정보 유통과 통제를 관장하고 있다. 앞으로 자율주행 차량이나 드론이 상용화한다면 더 확대되고 영향력이 커질 것이다. 그러면 정보시스템을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춘 국가만이 미래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때문에 한국은 파이브 아이즈 가입 문제를 철저하게 계산하고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만약 한국이 파이브 아이즈에 참여하게 된다면 한국산 자동차나 휴대폰에도 베이더우 사용이 제한된다. 역으로 베이더우가 장착된 중국산 자동차나 항공기, 선박은 물론 휴대폰을 비롯한 통신장비의 수출입도 제한될 수 있다.

결국 파이브 아이즈 가입 문제는 미중 패권경쟁, 기술경쟁의 핵심쟁점이다. 또한 인공위성의 운용과 연결된 정보전쟁이자 우주전쟁의 일환이다. 중국 정부가 신중국 외교원칙의 하나라고 강조하던 ‘독립자주원칙’을 무시하면서까지 한국에 대해 노골적인 내정간섭을 시도하는 것을 보면 파이브 아이즈 동맹이 그만큼 부담된다는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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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을 고려하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미국의 파이브 아이즈 가입 제안은 한국에게는 기회다. 중국과 미국을 두고 협상을 벌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미중 사이의 담벼락에서 선택을 강요받던 군사동맹과 달리 정보동맹은 나눔과 공유에서 실리를 취할 수 있다. 다양하고 풍부한 정보를 공유하고 활용하는 자가 이기는 게임이다. 더 지혜롭고 더 슬기롭게 세상을 볼 때다.

 

이정태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중국사회과학원 법학연구소 박사후 연구원(2003~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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