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사람책'

  • 김언동 경북대 사범대 부설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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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0-18 07:58  |  수정 2021-10-18 07:58  |  발행일 2021-10-18 제12면

김언동
김언동 〈경북대 사범대 부설고 교사〉

요즘 저는 '공존, 공감, 공생'을 주제로 독서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차별이나 편견에 맞서 새로운 삶을 찾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의 삶을 다룬 책과 매체자료를 찾아 같이 읽고 있습니다. 학생들과 함께 다루었던 많은 자료 중에서 특히 반응이 좋았던 EBS 다큐프라임 '시민의 탄생 4부-당신은 누구세요?'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 합니다. '당신은 누구세요?'는 종교적 박해로 난민이 된 이란 출신 고등학생 '김민혁'과 거리 노숙 생활을 청산하고 인문학 대학 '성프란시스 대학'의 학생이 된 '최영호(가명)'가 '사람책'이 되어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또 이 두 사람이 낯설고 두려운 존재에서 우리와 함께 사는 이웃이 될 수 있도록 해준 민혁의 중학교 친구들과 국내 유일의 노숙인 인문학 대학 '성프란시스 대학' 사람들의 모습도 함께 등장합니다.

'사람책'이라는 말을 낯설게 느끼는 분도 계실 겁니다. 덴마크에서 처음 시작된 프로젝트로 '휴먼 라이브러리'라고도 합니다. 아주 불편한 책입니다. 빌린 책을 집에 가져갈 수도 없고, 예약하지 않으면 읽을 수도 없으며 대출 시간은 1시간도 채 되지 않으니까요. 책을 빌리고 읽는 것과 똑같이 살아있는 사람에 대해 열람을 신청하면, 그 '사람책'과 정해진 장소·시간에 만나 그의 삶과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대화가 곧 독서가 되는 귀한 경험을 할 수 있지요. 덴마크 출신 사회운동가이자 저널리스트인 론니 에버겔이 대화를 통해 편견과 고정관념을 없애고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계기를 만들고자 시작한 활동입니다.

앞서 '당신은 누구세요?'에서 살펴본 것처럼 휴먼 라이브러리에서 발간하는 책들은 장애인, 성소수자, 노숙자 등 직업이나 정체성, 생활방식 등의 이유로 오해와 차별에 노출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때문에 책을 빌려보는 독자들은 책 제목 뒤에 숨겨진, 평소에는 절대 대화하지 않던 사람들을 발견하고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만나서 이야기하고 궁금한 것에 대해 질문하면서 편견에 넘어서는 대화를 만들어 나가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또 사회에서 금기시되는 주제들을 비난받지 않고 대화할 수 있는 안전한 장을 만들어줍니다. 이 특별한 독서를 통해 사회의 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이해, 공감이 커질 수도 있겠죠. 김수정의 책 '나는 런던에서 사람책을 읽는다'는 국내에 발간된 거의 유일한 '사람책' 관련 도서입니다. PD였던 저자가 영국에서 '사람책'을 빌려본 경험을 들려줍니다. 무신론자 휴머니스트, 사회적 편견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한 성소수자, 가장 엄격한 채식주의자 비건, 여든 살에 시인이 된 할머니 등 다양한 인간군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다큐멘터리를 보고 난 뒤에는 학생들이 빌려보고 싶은 '사람책'을 찾아보도록 했습니다. 태국의 10대 환경 운동가인 레일린 릴리 사타나나산, 뇌성마비 장애인으로 '굴러라구르님'이라는 이름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김지우, 고등학생 조직인 '학민사조'의 리더로 홍콩의 우산혁명을 이끈 조슈아 웡 등이 그 '사람책'들입니다. 한 학생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내 곁에 있는 모두가 사람책이 될 수 있다'는 말이었는데요. 그 말을 들으면서 미셸 푸코의 '어떤 것의 실체를 보다 쉽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때로 반대편에서 그것을 바라보는 방법이 효과적'이라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어쩌면 지금 학교의 대화법이란 참 단조롭습니다. 그 사람의 다른 모습을 담을 수 있는 생각의 그릇이 부족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대화의 방법과 재료가 달라지면 한 사람의 힘으로 완성된 한 세계를 만날 수 있습니다. 내 곁에 있는 '사람책'을 통해서지요.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사람책'이 될 수 있음을 잊지 마세요.
김언동〈경북대 사범대 부설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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