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눈으로 보는 G2] 후흑(厚黑)의 대가, 마오쩌둥

  • 이정태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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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0-21 17:49  |  수정 2021-11-02 08:57

오곡이 일렁거리는 황금빛 들판에 먹거리가 넘친다. 참으로 풍성한 계절이다. 오뉴월 땡볕을 견딘 농부님들의 땀방울이 응축된 것이라 더 귀하고 소중하다. 덕분에 추운 겨울을 배부르고 따뜻하게 지낼 수 있게 되어 좋다.

 

코로나의 습격과 유난히 잦았던 가뭄, 홍수, 태풍의 방해를 견디고 풍성한 가을을 수확한 대한민국은 복 받은 나라이다. 이제 남은 몫은 남 탓하지 않고, 남의 것 빼앗지 않고, 골고루 나누어 먹고, 제 맡은 역할에 충실하며 겨울을 나는 것이다. 그러면 곧 봄을 맞을 수 있다. 

 

괜히 허장성세를 부릴 필요도 없다. 과유불급이라 했다. 조금 부족해도 욕심내지 않고 솔직하고 정직하게 사는 것이 최선이다. 먹고 남는 것이 있으면 이웃들과 나누고 그래도 남는 것이 있으면 참새들이나 다람쥐에게도 나누고 내년 봄에 올 제비를 위해서도 한 줌 알곡을 남겨두는 것이 인정이다.


가을, 알곡 그리고 참새가 연상되면 기억나는 인물이 있다. 마오쩌둥 중국주석이다. 그가 벌였던 참새 전쟁, 돌아보면 지도자의 과대망상과 허무맹랑함 그리고 뻔뻔함과 음흉함이 사람들을 얼마나 어렵게 하는지 알게 된다. 가을날 참새들의 재롱을 탓하는 한 농부의 탄원을 핑계로 마오쩌둥은 참새를 “양식을 빼앗는 적”으로 규정하고 전쟁을 선포한다. 1958년 한 해만 참새 2억1천만 마리가 도살되었다. 

 

참새와 더불어 쥐, 파리, 모기를 적으로 삼아 제사해(除四害)운동을 시작했다. 사무지방(四無之邦), 즉 쥐도, 파리도, 모기도, 참새도 없는 나라를 건설하자는 허황된 꿈을 제시하고 적폐몰이를 시작한 것이다. 그것이 대약진운동(1958-1962)의 시작이었다. 

 

참으로 재미난 것은 참새 전쟁을 치른 이듬해 가을이 되자 천적이 사라진 들판은 벌레판이 되어 사람 먹을 알곡이 몽땅 사라졌다. 농사를 망치면 먹거리가 없어지고 민심이 흉흉해져 정권이 위험해지기 마련이다. 천안문 망루에서 열린 신중국 개국 선포식에서 따뜻한 쌀밥에 고깃국을 실컷 먹여주겠다고 큰소리쳤던 마오가 수 억의 중국인을 몽땅 아사시킬 위기로 몰고간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사회주의 신중국을 시작한 중국공산당이 나라 살림을 맡고 보니 곡간이 텅 비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근대 이후 서방제국과 일제의 약탈, 군벌과 비적들의 노략질로 남은 것이 있을 턱이 없었다. 일상을 꾸리기도 힘든 상황에서 미군을 상대로 항미원조(6.25전쟁)까지 치루었다. 곡간을 채우는 것은 고사하고 그나마 남은 살림까지 긁어 엉뚱한 데 쏟아부은 것이다. 국민들의 실망과 분노는 불을 보듯 뻔한 것이었고, 정권은 위기에 직면했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마오는 뻔뻔하게도 굶주림과 배고픔의 책임을 사해(四害), 즉 파리, 모기, 쥐, 참새에게로 돌렸다. 참새 전쟁을 발동하고 대약진운동을 시작했다. 결국 잘못된 노선선택과 정책실패의 책임을 엉뚱한 데 전가하는 바람에 4천5백만의 사람들이 굶어 죽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정치지도자의 후안무치(厚顔無恥)와 뻔뻔함이 만든 결과였다. 

 

문제는 후안(厚顔), 즉 면후(面厚)는 심흑(心黑)과 한 쌍이라는 점이다. 뻔뻔함과 음흉함은 함께 한다. 면후를 갖춘 마오는 심흑까지 갖추었다. 대약진의 실패로 궁지에 몰린 마오가 백가쟁명, 백화제방을 부르짖으며 반성하고 솔직한 척했지만(면박심백面薄心白), 뒤로는 홍위병을 동원하여 문화대혁명을 발동했다. 많은 사람이 죽고 상했다. 

 

덩샤오핑이 문화대혁명을 공칠과삼이라 평하며 오류를 덮었지만, 아직도 다친 다리를 절룩거리며 아픈 상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린 중고생을 동원하여 자기의 부모를 고발하고 스승을 때리게 한 흉계가 음흉함으로 치면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 

 

청나라 말기에서 중화민국 초기를 살다간 이종오(李宗吾)라는 자가 설파한 '후흑학'에 따르면 마오쩌둥은 분명 후흑의 대가다. 지도자는 모름지기 면후심흑(面厚心黑)해야 한다는 그의 말이 맞다. 후흑의 극치는 사람들로 하여금 “철면피도 아니고 흑심도 없다(不厚不黑)”고 느끼게 하는 경지라 한다. 

 

문제는 후흑의 궁극적인 목적이 구국(救國)이라지만 선(善), 악(惡)을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는 점이다. 후흑은 예리한 양날의 검과 같아서 역적에게 사용하면 선이 되고, 양민학살에 사용되면 악이 된다. 따라서 후흑을 선하게 사용하면 그 자는 선인이요, 악하게 사용하면 악인이 된다. 

 

마오쩌둥처럼 후흑에 능한 자가 권력을 차지할 가능성은 크지만 후흑을 갖춘 자가 반드시 좋은 지도자라고 할 수는 없다. 특히 후흑에다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빠져나가고 뱀처럼 수시로 허물을 벗는 능력까지 갖춘 인물이 등장한다면 구국이 아니라 나라를 통째 구워먹는 꼴을 보게 될 수도 있다. 중국인들이 마오쩌둥을 영원한 주석으로 섬기는 것을 보면 마오는 분명 성인의 반열에 오른 후흑의 대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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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는 제대로 된 후흑의 대가가 있을까? 선거철, 기인이사들이 경연을 펼치고 있다. 마키아벨리가 말한 사자의 용맹과 여우의 꾀를 갖춘 인물이 누구인지, 누가 면후심흑(面厚心黑), 면후심백(面厚心白), 면박심흑(面薄心黑), 면박심백(面薄心白)한지를 잘 살피면 관전과 참전의 재미가 배가 되리라.

 

 

이정태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중국사회과학원 법학연구소 박사후 연구원(2003~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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