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카미노 데 산티아고

  • 윤여창 봉산문화회관 기획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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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1-25   |  발행일 2021-11-25 제16면   |  수정 2021-11-25 07:44

윤여창
윤여창〈봉산문화회관 기획PD〉

2018년 국립예술단체 재직 시절 참여한 평창올림픽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평창올림픽 개막 1년 전 G-1 페스티벌부터 시작된 업무는 올림픽이 끝난 후에도 계속되었다. 올림픽 시작 한 달 전부터 시시각각 달라지는 조직위와 IOC의 조건 때문에 수십 통의 메일을 교환했다. 메일 하나로 급변하는 상황 속, 믿고 따라와 주는 수백 명의 출연진과 제작진들을 이끌어 가기 위해 책임자로서 끊임없이 협의하며 노력했다.

그렇게 휴일도 반납한 채 일에 매달리다 보니 어느새 내 안에 있었던 현대무용과 국가에 대한 사명감은 옅어지고 업무 스트레스만 남았다. 그렇게 30대 중반 번아웃 증후군을 겪으며 처음으로 일에 대해 회의감이 들었다.

번 아웃 상태에서 기획·제작업무를 반복했던 어느 날 5년간 함께 작업했던 무대 감독님이 카미노 데 산티아고 이야기를 들려줬다. 오롯이 걸음에 집중하며 인생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는 말에 나는 그해 10월 정규직 자리를 박차고 카미노(순례자)로서 30일간의 순례길을 떠났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는 프랑스 생장 피드포르에서 시작해 성 야곱의 무덤이 있는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800㎞의 순례길을 말한다. 나는 프랑스 생장 피드포르에서 순례자의 상징인 크레덴시알(순례여권)을 받자마자 800㎞, 30일간의 여정을 친구와 함께 걷기 시작했다.

오전 6시부터 오후 4시까지 하루 20㎞ 넘게 걸으며 피레네산맥의 운무를 보았고, 길가에 있는 카페에 들러 카페라테와 머핀으로 여유로운 아침을 맞이했다. 눈길을 헤치고 도착한 알베르게에서 난롯불에 따뜻하게 데워진 와인으로 몸을 녹였고, 함께 걸었던 네덜란드 부부와 담소를 나누며, 이국적이고 황홀한 풍경들 속 퉁퉁 부은 발로 종착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했다. 도착 후 받은 완주 증명서가 지금까지의 고생을 잊게 했고, 산티아고 대성당의 향로미사를 끝으로 함께 걸었던 사람들과 환호했다.

신자도 아닌 내가 산티아고로 떠난 것은 지금까지 쉼 없이 기획·제작자로서 살아온 삶에 대해 다시 한번 물어보고 싶어서였다. 적성과 숙련도를 떠나서 가슴이 뛰는 일인지를 스스로 물었고, 그 결과 나는 지금 대구의 지역 예술과 공연문화를 위한 기획자로서 새로운 길 위에 서 있다.
윤여창〈봉산문화회관 기획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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