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충북 보은 말티재, 꿈틀꿈틀 용틀임하듯…20m 전망대 서면 1.5㎞ 고갯길 한눈에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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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1-26   |  발행일 2021-11-26 제13면   |  수정 2021-11-26 08:02
왕건·이성계·세조도 넘었던 길
1924년 박중양이 신작로 만들어
터널 뚫리자 한동안 발길 뜸해
전망대 세운후 다시 관광명소로
고갯마루엔 '속리산 관문' 우뚝
109굽이 '꼬부랑길' 전망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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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20m의 말티재 전망대에 서면 정상으로 오르는 구불구불한 길이 한눈에 보인다. 날씨가 궂은 날에는 전망대 출입을 막아 비경을 놓칠 수도 있다. 취재 당일 눈 소식이 전해져 결국 전망대에 오르지 못하고 아쉬움만 남긴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가엽게 헐벗은 벚나무들 사이로 몇 그루 핏빛 단풍이 점점 검어지고 있다. 잠시 나타난 파란 하늘에 기대를 품어 보지만 내심 가을은 이제 너무 늦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수양 버드나무의 늘어진 가지 사이로 저수지의 표면이 아름답게 반짝이는 것도 잠시, 말티재 자연휴양림 입구를 지나자마자 기창(旗槍)과 같은 위엄으로 솟구친 침엽수림의 차가운 그늘에 잠긴다. 잠잠히 달리다 뒤늦게 휴양림 입구에 서있던 말을 탄 임금의 동상이 생각나 피식 웃음이 눈꼬리에 맺힌다. 왕건일까 세조일까. 곧 '말티재 여기부터'라는 푯말이 나타난다. 자, 단단히 준비해! 라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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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티재 입구에는 세조가 고개를 넘기 전 하룻밤 묵었던 행궁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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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티재 입구에서 해발 430m인 정상까지 약 1.5㎞를 180도로 꺾어지는 굽잇길이 이어진다.

#1. 속리산의 관문, 말티재

말티재는 백두대간이 속리산으로 연결되는 한남금북정맥이 쉬어간다는 곳이다. 신라 진흥왕 14년인 553년, 인도에 다녀온 의신조사가 법주사를 세우기 위해 흰 노새에 불경을 싣고 이 고개를 넘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수많은 이들이 고갯길을 거쳐 법주사로 향했다. 그래서 말티재는 속리산의 관문이라 불린다. 고갯마루는 해발 430m로 그리 높지는 않다. 그러나 180도로 꺾어지는 S자 굽잇길을 약 1.5㎞나 올라야 한다. 높다는 의미의 '마루'와 고개를 의미하는 '티'가 합해져 말티재다. 지그재그로 드러나 있는 연둣빛 가드 레일이 길의 형상을 가늠케 한다. 길이 굽을 때마다 끙 소리가 난다. 1천 년 전에는 더 힘들었겠지.

고려 태조 왕건은 속리산에서 은거하다 생을 마감한 조부 작제건을 찾아 가면서 이 고개를 넘었다고 한다. 그때 박석을 깔아 길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보은현의 동쪽 6㎞에 있고, 고개 위 3·4리에 걸쳐 얇은 돌을 포장하였다. 고려 태조 왕건이 속리산 행차 때 임금이 다니는 길이라서 길을 닦았다'는 기록이 중종 26년인 1532년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에 전한다. 그래서 말티재는 박석재라고도 불린다.

조선시대에는 세조가 한양에서 청주를 거쳐 속리산으로 향하면서 말티재를 넘었다. 단종을 폐하고 왕위에 오른 뒤 몸과 마음의 병을 앓았던 세조가 속리산을 찾은 것은 피부병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복천암에 머물던 신미대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세종을 도와 한글 창제에 기여한 신미대사는 세조가 수양대군 시절부터 스승으로 삼았던 인물이다. 세조는 고개 아래 장재리 대궐터 마을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타고 온 가마 대신 말을 타고 말티재를 올랐다. 말티재 초입에 세조가 머물렀던 행궁터가 있다. 세조의 행차를 위해 왕건 때 포장한 박석길을 고쳤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그 많았을 박석들은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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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티재 마루의 백두대간 속리산 관문. 터널 형태로 2층에는 카페와 전시장 등이 있다.

#2. 말티재 전망대

고갯마루에 '백두대간 속리산 관문'이 우뚝 서 있다. 터널 형태로 성문을 닮았다. 터널 위는 꽤나 넓은 건물로 카페와 전시장 등이 들어서 있다. 건물의 지붕은 생태 통로로 흙을 쌓고 소나무 등 자생식물을 심어 야생동물이 오갈 수 있도록 했다. 이 건물을 통과하면 지난해 2월에 개장한 20m 높이의 말티재 전망대가 나온다. 구렁이 같은 말티재 길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다.

입구가 폐쇄되어 있다. 취재 전날 눈이 조금 내렸고, 전망대로 오르는 램프에 살얼음이 앉았다. 눈앞에 두고 갈 수 없으니 속이 탄다. 전망대 입구 벽에 붙어서 길을 내다본다. 굽이는 보이지 않지만 급하게 하강하는 산세는 느낄 수 있다.

신라 혜공왕 때 진표율사는 법주사에 '금동미륵대불'을 세우려고 이 고개를 넘었다. 고려 공민왕은 국운 상승을 기원하려고, 조선 태조 이성계는 왕이 되기 전 100일 기도를 하려고, 조선 태종은 심신을 다스리려고 이 고개를 넘었다. 임진왜란 때 승병들은 이 고개를 넘어 법주사에 집결했고, 사명대사는 불에 탄 법주사를 재건하려고 이 고개를 넘었다. 구한말 당백전에 쓰기 위해 '금동미륵대불'을 훼철하러 가던 사람들도 모두 이 말티재를 넘어갔다. 그러다 일제강점기인 1924년 당시 충북지사 박중양이 신작로를 냈다. 길이 개설되면서 말티재 마루금이 끊겼다.

'백두대간 속리산 관문'은 단절된 말티재 생태축을 복원하기 위해 2017년에 세웠다. 93년 만이다. 이제는 말티재를 넘지 않고도 터널이라는 지름길로 편하게 속리산으로 갈 수 있다. 사람의 걸음이 뜸했던 말티재는 전망대를 세우면서 다시 관광명소가 됐다. 전망대 입구 벽에 붙어 서서 두 시간여를 기다리는 동안, 햇빛이 비쳤다가 어두워졌다가 바람이 불어 어제의 눈인지 서리인지 하는 것들이 날리다가 잠잠해졌다가 한다.

#3. 말티재 꼬부랑길

말티재 주차장 옆 농산물 판매소 뒤쪽으로 길이 나 있다. '말티재 꼬부랑길'이다. 말티재 동편의 산자락을 따라 이어지는 구불구불 '109 굽이'의 10㎞ 비포장 길로 원점 회귀한다. 평균 해발고도가 400m를 웃도는 고지여서 전망이 좋고 구간의 평균 고도차가 30m 내외여서 걷는 동안 관절에 무리가 없다. 길이 넓다. 2018년에는 이곳에서 산악 마라톤 대회가 열렸다고 한다. 한 점 그늘이 없는 길바닥에 단풍나무 낙엽들이 촘촘하게 펼쳐져 있다. 단풍나무가 많은 모양이다. 맞다. 말티재는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멀리 꼬부랑길이 휘어지는 모서리에 서 있는 집 라인 타워가 보인다. 스릴을 만끽하며 말티재와 속리산의 풍광을 즐길 수 있는 '속리산 집라인'이다. 꼬부랑길을 따라 8코스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체 거리는 1.7㎞ 정도 된다고 한다. 꼬부랑길 1천m 지점 아래쪽에 8코스 출발점이 있다. 말티재 길의 상공을 횡단하는 445m의 라인이다.

몇 계단을 내려가 보니 집 라인도 오늘은 조용하다. 길을 따라 백팔번뇌를 새긴 바윗돌이 놓여 있다. 1은 '탐욕'이다. 더 좋은 것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하지 마라. 2는 '성냄'이다. 분노하는 것으로 자신과 타인에게 해가 된다. 3은 '어리석음'이다. 객관적인 판단을 방해하는 마음이다. 이쯤에서 돌아선다. 몇 그루 단풍과 빛나는 물빛과 아주 멀리 부드럽게 누운 푸른빛의 능선들을 보았으니 좋았다. 흐린 날씨는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저 너무 늦게 붙잡으려 한 가을이었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 Tip

경부고속도로 대전방향으로 가다 김천 분기점에서 45번 중부내륙고속도로 충주방향, 낙동 분기점에서 30번 당진영덕 고속도로 청주 방향으로 가다 속리산IC로 나간다. 톨게이트에서 나와 좌회전해 25번 국도를 타고 가다 구인삼거리에서 우회전해 가면 말티재다. 주차비는 무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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