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복·이춘호 '한식 삼천리'] 조선조 땐 밥 종류만 34가지…韓食의 원형, 어디로 갔을까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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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2-03   |  발행일 2021-12-03 제35면   |  수정 2021-12-03 09:19
삼면 바다·사계절 뚜렷해 식재료 다양…말리고 삭히는 저장법 발달
몽골 영향받은 탕국문화, 곰국·몸국·설렁탕·국밥·해장국 등 무한변신
전쟁과 외침 영향 정체성 훼손…배합과 숙성의 절묘한 미학도 사라져
김영복·이춘호, 팔도음식연구가들과 한식의 원형 탐구·복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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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서 가장 다양한 소고깃국을 가진 대구의 명물 따로국밥. 육개장 베이스에 사골육수, 그리고 선지를 섞은 게 특징이다.
세상의 음식이 무차별적으로 한식을 폭격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 한식은 회복이 힘들 정도로 크게 왜곡된다. 그리고 1980년대 후반부터 맹위를 떨치기 시작한 일식·중식·양식이 다시 한식의 본질을 크게 뒤흔들어 버렸다. 이명박 정권 때 한식세계화를 선언했지만 그건 본질의 한식이 아니라 퓨전 한식 알리기에 머물렀다. 한식이 너무 비틀려버려 사람들은 '이제 한국에는 한식(韓食)이 없다' 고 탄식할 정도다. 변형에 변형을 거듭한 결과 한식은 그 정체성을 잃어버렸다. '한식의 종언'이랄 수 있다.

각국으로부터 무차별로 수입되는 식재료, 퓨전요리 신드롬, 다국적 패스트 푸드의 맹위…. 이런 흐름은 결국 한민족의 유전자를 형성하는데 기여했던 한식의 법통을 수시로 변질시키고 있다. 누군 그 변질을 한식의 진화, 한식의 발전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요즘 새내기 셰프들은 한식의 원류·본질에 관심이 없다. '세계음식이 곧 한식'이라 여길 정도다. 그들은 되레 성공적인 마케팅, 창업 등에 혈안이 돼 있다. '잘 팔리는 메뉴'만 갈구한다. 그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한식이라는 게 일식·중식·양식의 변형태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음식 관련 학과 교수들조차 한식에 대한 인식이 극도로 박약하다. 위기의 한식문화, 그걸 안타깝게 주시하고 있는 식생활문화연구가 김영복(75), 그리고 경상도 음식의 원류를 추적하고 있는 이춘호 기자, 두 사람이 월 1회 한식을 주제로 나눈 대담 내용을 '한식 삼천리'란 주제로 연재하게 된다. 김씨는 한식 따라 전국을 주유하다 최근 대구에 안착, 남구 이천동에 문화사랑방 격인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에 머물며 원형에 입각한 진주냉면 전문점을 오픈할 예정이며 향후 원형의 한식 레시피를 전수하기 위해 셰프와 음식해설사 등을 위한 'K-푸카데미(한국푸드아카데미)'도 개설할 예정이다. 한식의 원형에 관심이 있는 지역의 외식업자, 그리고 독자제현의 폭넓은 관심과 제언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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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명물 몸국. 모자반에 돼지 사골이 어우러져 있다.
◆한식이란.

한식은 한국의 삼면이 바다라는 지형적인 여건과 사계절이 뚜렷한 계절적인 조건을 가지고 궁중요리, 반가음식, 사찰음식, 두레음식, 장터음식 등 사회 계층적 기반과 '향토음식'이라는 지역적 특수성을 가지고 태어났다. 이후 반만 년을 뛰어넘는 검증과정을 거쳐 면면이 이어져 온 우리만의 역사성을 가진 음식을 말한다.

원시 수렵사회 및 어로 문화와 불의 발견으로 한 화식(火食) 문화는 구이(炙)문화를 낳는다. 그리고 구석기 시대의 무문토기, 신석기 시대의 원시 민무늬·빗살무늬토기를 중심으로 설치된 시루 및 부뚜막 등, 그리고 가야로부터 삼국시대 이후 철기문화의 영향을 받은 가마솥 문화는 찌고 삶는 '증숙(蒸熟) 문화'를 통해 한식 조리의 다양성을 가져오게 되었다.

증숙(蒸熟)문화는 도기 문화와 수저 문화의 발달을 가져오게 되었다. 수저 문화는 고려 시대 탕반(湯飯) 문화 태생의 기반이 된다. 특히 사계절이 뚜렷한 계절적 영향은 다양한 산물이 생산되는 장점과 함께 계절이 바뀌어도 장기간 보관할 수 있는 저장법, 이를테면 삼국시대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말리고(脯), 삭히고(醬·醯), 다양한 저장법이 발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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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식 육개장을 닮은 대구발 조선육개장.

내륙의 장(醬)문화의 발달과 함께 해안지방의 삭히는 문화는 서해에서 남해의 전남 광양까지 젓갈 문화와 동해에서 남해의 경남 하동까지 식해 문화로 극명하게 갈린다.

고려 시대 초기는 불교의 영향과 개성 중심의 채식문화와 국수 문화, 고려 시대 후기 13세기는 대원제국(몽골제국)의 영향을 받은 탕(湯)문화가 삼국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수저 문화와 함께 탕국문화를 가져 온다. 이 탕국문화는 고려 개경(개성), 안동, 탐라(제주) 등 몽골군의 주둔지를 중심으로 곰국, 몸국, 설렁탕, 국밥, 해장국 등으로 놀라운 변신을 하면서 발전하게 된다.
5이문설렁탕
전국에서 가장 오래 된 노포 중 하나인 서울 이문설렁탕.
한편 이 지역에서 태어난 개성 소주와 메밀국수, 안동 소주와 메밀만두, 제주 고소리술과 메밀 빙떡 등은 몽골의 영향을 부인할 수 없는 음식이다. 반면에 원나라 수도에서는 '고려양(高麗樣)'이 번진다. 대표적인 것이 우리의 유밀과인 '고려병(高麗餠)'과 소불고기인 '고려육(高麗肉)', 돼지불고기인 '고려저(高麗猪)'이다.
4조기간국
젓갈의 바다랄 수 있는 서해안의 대표적 별미 국인 우럭젓국.
고려 후기 1296년(충렬왕 22) 원나라 세자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그곳을 방문한 충렬왕이 유밀과를 내놓아 격찬을 받은 뒤 크게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 후기 사행 기록의 하나인 '계산기정'에 따르면, '고려보(高麗堡)에서 판매하는 송병(松餠) 혹은 속절병(粟切餠)이 조선의 떡을 본떠서 만들었다고 하여 고려병이라 부른다'고 했다. 이 중 속절병은 우리의 인절미와 같은 떡이다. 야오닝성(遼寧省) 고려보(高麗堡)에서 고려병을 판매하는 장사꾼은 조선 사람들이 이를 많이 사먹자 경쟁적으로 길을 막으며 먼저 팔려고 했다고 한다.

중국에 고구려 시대의 '맥적(貊炙)'이 있었는데, 여기서 맥(貊)은 중국의 동북지방인 고구려를 지칭하고, 적(炙)이란 고기를 미리 조미한 후 꼬챙이에 끼워 직화에 굽는 것을 말한다. 즉, 중국의 고려육(高麗肉)이나 고려저(高麗猪)는'맥적(貊炙)'에 그 뿌리를 둘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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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하게 왜곡된 한식의 원형을 팔도 음식연구가들의 증언 등을 통해 복원키로 다짐하며 대담연재 '한식 삼천리'를 진행하게 될 김영복(왼쪽)씨와 이춘호 음식전문기자.
◆조선조 밥 종류만 34가지

조선 시대에 와서는 영·정조 시기에 음식문화가 절정기를 이루게 된다. 1400~1700년대 고문헌 50권에 나오는 밥의 종류만 34가지. 고조리서에 수록된 조리법 중 향신료가 사용된 조리법은 총 238개였다. 사용된 향신료는 겨자, 계피, 고추, 마늘, 천초, 생강, 정향, 참깨, 후추, 회향 등 모두 10종이었다.

그러나 임진왜란과 일본 제국시대에 이르기까지 전쟁과 식민시대 풍속의 쇠퇴기와 외세의 영향으로 한식의 정체성이 훼손되기 시작한다. 오죽하면 구한말 이왕직 선무실주임 조동원씨가 1921년 4월4일자 동아일보 기사에 개탄어린 쓴소리를 기고했다. 그 지적은 자못 심각하다. 이미 한 세기 전부터 한식의 원형이 크게 손상되고 있음을 암시한 섬뜩한 지적이다.

'음식은 개량보다 부흥'이 필요하다는 제목 하에 "조선요리를 전문으로 한다는 각 요리점에서는 이익에만 눈을 뜨고 다시는 조선요리의 본질과 조선요리의 특색을 보존하여서 조선요리의 맛을 이어가려는 생각은 못하는 결과 점점 조선요리가 서양그릇에 담기고, 조선 신선로 그릇에 얼토당토 아니한 일본요리 재료가 오르는 것은 실로 아는 사람의 안목에는 도저히 그것을 순전히 조선요리라고는 할 수 없는 애석한 지경에 이르렀오. 그러할 뿐만 아니라 전유어 한 점, 찌개 한 그릇에도 다 각기 상에 오르기까지에 상당히 차이와 규모가 있어서 너무 차도 못 쓰고, 너무 더워도 못 쓰고, 너무 짜거나 싱거워도 못쓰는데, 도무지 일반요리점에서는 요리법이라고는 그대로 덮어 놓고 오직 어떻게 하든지 이익이나 보자하는 무서운 영업방침을 가지고 장사를 하는 모양이니 만일 외국손님이 조선에 와서 조선요리를 맛보겠다고 조선요리 집에 가면 되는대로 울긋불긋이 차려 내일 터이니 참으로 생각을 하면 부끄러울 일이다."

◆100년 전 한식 비판의 소리

한편 조선 양념이 사라지거나 변한 것에 대해 이왕직(李王職) 전선과(典膳課)에 근무하는 이익환도 개탄해 마지 않는다. 역시 당시 조선요리 양념에 대한 개량보다 원상회복을 주장하는 내용의 기사가 1923년 1월2일자 동아일보 기사에 실린다.

우리 것을 지키고 그 가치를 보존하면서 외국의 문물을 받아들여야 함에도 우리 것을 간과하고 편의성을 따져 단순화시켜 온 우리 식생활 문화에 대한 회의적 내용의 기사들이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통해 한식은 많은 부분 사라지거나 잃어버리고 주로 서민들이 즐겨 먹던 향토음식이나 장터음식, 두레음식 등이 한식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특히 개화기에 한식을 표준화 및 계량화한다며 일본, 미국, 영국 등에서 공부를 한 영양학자들이 한식의 조리법을 개량 컵 같은 레시피로 만든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처사였다. 서양음식이나 일본음식의 조리법처럼 시종일관 '재료 1, 2, 3, 4, 5~만드는 법 1, 2, 3, 4, 5' 패턴으로 단순화시켰다. 자연 한식은 그 고유한 맛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게 된다. 이렇게 단순화된 조리법을 기초로 한 요리책은 50년 이상 이어오며 수많은 요리책을 양산하게 되었다. 시집가는 여성들에게 선물로 안겨진 그런 책이 한식의 전범처럼 전해질 수밖에 없었다.

◆양념과 배합과 숙성의 미학

한식의 맛은 양념과 배합과 숙성에서 나온다. 그런데 각종 요리책의 조리법에는 이러한 부분이 대부분 생략되었다. 음악으로 말하자면 음(音)과 음 사이의 울림을 알아야 하는데 현재 우리의 요리법은 음밖에 모르는 것 같다. 마치 수초가 사라진 잘 정리된 강줄기의 물에서 진정한 산하의 울림을 공감하기 힘든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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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칫 날 끓여 먹던 경상도식 가마솥 소고기국밥 스타일인 경산 온천골 소고깃국.

한편 영양학·조리학·가공학 등은 있으나 식생활 문화를 체계적인 학문으로 하는 전공자는 눈을 닦고 찾아봐도 없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한식의 정체성이나 스토리를 잃어버리게 되는 건 불을 보듯 뻔하다. 한식이 중국이나 일본에서 자국의 음식으로 둔갑해도 이에 대한 대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위클리포유는 이번 주부터 전국 한식의 현장은 물론 인근 중국과 일본을 뛰어다니면서 문헌자료와 구전 등을 자료화해 오면서 한국 식생활 문화의 신지평을 열어 온 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가와 이춘호 음식전문기자가 함께 꾸며나가는 대담연재 '한식 삼천리'란 기획물을 싣는다. 두 사람은 동행취재를 하면서 대구·경북을 시작으로 팔도 한식에 대한 현장 점검과 특정 한식 메뉴 원형 복원 등을 통해 22세기를 대비한 한식의 본류를 탐험한다. 이와 관련, 한국음식포럼 정회원인 제주도 출신 양용진, 부산경남 출신 최원준, 통영 출신 이상희,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위원 김준, '음식강산' 저자 박정배, 한식연구가 황광해, 음식 원류 연구가 윤덕로 등과도 '크로스 체크 식 정보 공유망'을 형성할 작정이다.

▨대담=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가·이춘호 음식전문기자

▨정리=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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