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나는 캥거루~

  • 원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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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2-06   |  발행일 2021-12-06 제27면   |  수정 2021-12-06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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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도혁 논설위원

오스트레일리아의 대표 동물 '캥거루'의 어원에 관한 이야기다. 1770년 영국의 항해왕 '제임스 쿠크'(만화영화에 나오는 쿡 선장)가 오스트레일리아(호주) 대륙을 탐험하던 중 광활한 평원을 질주하는 낯선 동물을 목도하게 됐다. 궁금하던 참에 마침 인근에 창을 든 원주민이 서 있어 "저게 뭐라는 짐승이냐"고 물었다. 쿠크 선장의 이 질문에 원주민이 "캥거루(나는 모른다)"라고 답하면서 이 동물은 이때부터 '캥거루'가 됐다. 역사적인 사건이다.

사실 우리는 모르는 게 너무 많다. 생명의 첫발도 모르고, 우주의 첫날도 모른다. 우리 인간의 존재 이유도 잘 모른다. 하늘의 경계가 어디쯤인지, 하늘의 도가 공평한 것인지 알지 못한다. 1천500년도 훨씬 전에 철학자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물었다고 한다. '하나님, 당신은 천지창조 이전에 무엇을 하고 계셨습니까?' '당신에게 무슨 가치가 있기에 천지를 창조하셨습니까?' '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영혼이 죄를 범합니까?' '왜 하나님은 처음부터 선(善)만을 창조하지 않았습니까?'라고. 그가 쓴 '고백록'에 나온다.

우리는 모른다. 얼마만큼 사람을 믿고 얼마만큼 불신해야 하는지를. 얼마만큼 관용하고 얼마만큼 엄격해야 하는지를. 얼마만큼 분노하고 얼마만큼 참아야 하는지를. 우리는 또 모른다. 얼마만큼 깨끗해야 하고 얼마만큼 때 묻어야 하는지를. 얼마만큼 꼿꼿해야 하고 얼마만큼 굽혀야 하는지를. 원수를 원수로 갚을 것인지 은혜로 갚을 것인지를. 인간의 행복은 부에 의한 것인지 덕에 의한 것인지. 지금 우리는 모른다. 앞으로도 모를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아는가. 철학자 몽테뉴의 자계명은 '나는 무엇을 아는가'였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알아야 할 것이 엄청 많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이상적인 인간형'에 관한 것이다. 선각자들의 조언이다. 그러면 이상적인 인간이란 어떤 스타일인가. 옛날에는 '군자(君子)'를 이상적인 인간형으로 꼽았다. 고전 논어에 군자라는 말이 100곳 이상 나온다고 한다. '인의(仁義)에 충실하고 지덕(知德)을 겸비한 사람'을 군자라고 보았다. 순자는 이 군자에 대해 "빈궁해도 뜻은 넓으며, 부귀해도 몸은 공손하다. 너그럽되 나태하지 않으며, 강직하되 모나지 아니한다. 변론하되 다투지 아니하며 명철하되 남의 비위를 맞추지 아니한다. 꼿꼿하되 남을 꺾으려 들지 아니하며 부드럽되 휩쓸리지 아니한다. 공손하되 비겁하지 아니하며 공경하되 겁내지 아니한다"고 표현했다. 매월당 김시습의 군자론은 약간 다르다. 그는 "군자는 의리에 밝기 때문에 곤궁함을 견디어 내며, 마음이 늘 조용하고 태연하기 때문에 엄숙하여 다투지 아니하며, 여러 사람과 화합하고 파당을 짓지 않으며, 공평하여 편벽하지 않으며, 편안하여 교만스럽지 않다"라고 규정했다. 동서양에서 공통으로 지(知)·인(仁)·용(勇)을 진인간의 자격으로 꼽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영어 '젠틀맨'이 군자인 셈이다.

이상적인 인간형이 어떤 자격인지 잘 알고, 그런 스타일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 전인적으로 그 모든 장점을 다 갖추기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선각자들이 규정한 이상적인 인간의 여러 요건을 본받기 위해 각자 노력한다면 사회는 더욱 유익해지고 풍요로워질 것이다. '캥거루'가 원래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어로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좋다.
원도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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