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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재임중 검경수사권 조정을 하라고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을 법무부 장관으로 보냈다. 윤석열 검찰총장과 서로 힘을 합쳐 검찰개혁을 완수하길 원했다. 그러나 검찰이 표창장 위조 등과 관련해 조 장관 가족을 대상으로 수사를 벌였고, 2019년 10월 취임 35일 만에 낙마했다. 문 대통령은 이듬해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조 전 장관이 임명된 뒤 고초를 겪었다. 그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토로했다. 개인적으로 안타까움이야 없었을까만은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직 대통령이 개인적인 소회는 밝힐 수 있다. 역량이 모자라는 인사를 장관으로 쓰려고 했다는 게 드러났는데도 이런 말을 한 것은 참 잘못됐다. 마음의 빚이야 개인적으로 갚으면 된다. 조국 사태로 나라가 얼마나 시끄러웠는가. 국민에게 사과 대신 오직 조국 일병 구하기에 골몰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도 궤를 같이한다. 윤 당선인이 검찰총장 재직 시 정권으로부터 핍박을 당했던 검사가 있었다. 윤 당선인의 측근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가 바로 한동훈 법무부 장관 내정자다.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그를 '애국지사'라고 치켜세웠다. 애틋할 정도였다. 그리고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했다. 애국지사란 발언이 생선가시처럼 목에 걸렸다. 목숨 바쳐 독립운동을 했던 수많은 애국지사와 가족·후손들을 모독하는 발언이다. 그가 목숨을 버릴만한 일을 했는가. 검찰 공무원으로서 업무를 수행했을 뿐이다. 하다못해 퇴직 후 로펌에 가면 수십억원을 거머쥔다. 국가 최고지도자가 이런 식으로 측근을 챙겨서는 안 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어떤가. 국정농단으로 옥살이를 하는 동안 모두 외면했다. 유영하 변호사가 곁을 지켰다. 무료변론을 도맡았고, 석방 후 머물 사저까지 챙겼다. 박 전 대통령 개인적으로야 고마움을 말로 다 할 수 있겠는가. 거기까지였으면 좋았다. 두고두고 회자될 만한 사례다. 그런데 오염되고 말았다.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에 출마한 유 변호사를 도왔기 때문이다. 대구시장 후보경선에 지자 유 변호사는 대구 수성구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나섰다. 대구시민을 뭐로 보고 하는 처사인가.
21세기 전현직 대한민국 최고지도자들의 정신세계가 이 지경에 이르렀다. 입으로만 '공정과 상식'을 외칠 뿐 정작 의식과 행동은 19세기에 머무른다. 공직을 개인 소유물쯤으로 여기고 있다. 또 재임 중에 사면권 행사를 자제하겠다고 공언했다. 입 발린 소리였다. 여론을 들먹이며 사면권을 남발했다. 필요할 때 마구 갖다 쓰는 전가의 보도가 여론이다. 치졸하다.
최근에 정유라가 깜짝 등장했다. 딴 뜻이 없다. 모친인 최서원씨를 사면해달라는 거다. 박 전 대통령과 경제적 공동체로 엮인 공범인데, 사면에서 제외된 것에 대한 항의다. 일리가 있다. 법은 국민 모두에게 같은 잣대로 적용돼야 한다. 사면권이 대통령 자신의 입맛에 따라 휘둘려서는 안 된다. 최씨를 사면하는 게 맞다. 그러면 사면권자의 진정성이 의심받지 않을 테니.
전현직 대통령들은 국민에게 마음의 빚을 졌다. 늦었지만 사과해야 한다. 그런데 일언반구조차 없다. 국민을 무지렁이로 아는 건지. 이는 국민에 대한 정서적 학대다. 심지어 검수완박을 두고 관련 법과 제도를 탓하며 서로 으르렁댄다. 현행 법과 제도는 나무랄 데 없다. 운용하는 사람이 문제다. 정치검사가 왜 생겼겠나. 수요가 있었기 때문이다.장용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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